육담(肉談). 남가일몽(南柯一夢)
어느 고을에 착한 아내가 있는데도 외도가 심한 선비가 있었다. 이 선비는 일찍부터 과거를 여러 차례 보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볼 때마다 낙방이었다. 그 해에도 과거에 응시했으나 이번 역시 미끄러지니. 선비는 당나귀에 몸을 의지하여 너덜 너덜거리며 돌아가는데 그 마음이 여간 서글픈 것이 아니었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산담'
이렇게 한숨을 쉬다가 무심코 눈을 드니 산언덕에 온갖 기화요초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선비의 눈을 자극하는 것은 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이는 한 여인의 자태였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인이 꽃을 꺾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이 선녀인가? 인간인가?‘
선비는 불같은 욕심을 누르며 여인에게 수작을 걸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말고삐를 조심스럽게 당기며 여인에게로 가서는 '에햄.'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해보았으나 여인은 끄떡도 안했다. 선비가 말채찍을 떨어뜨려 보았으나, 여인은 주워 주기는 커녕 그 자리를 떠버리는 것이었다.
'저런 계집은 처음인 걸.‘
선비의 기분은 과거에 낙방할 때보다 더 쓰렸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선비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근처여인숙에 투숙하였다. 밤은 깊어 몸은 피곤하였지만 생각나는 것은 꽃 꺾던 여인의 뒷모습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품에 한번 안아본다? 도대체 어느 집에 사는 계집인고?
이렇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웬 나그네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을 건냈다.
“미안합니다. 심심하실지 모르니 벗이 되는 것이 어떻겠소.”
선비가 그 나그네를 살펴보니 횐 수염이 길게 늘어졌는데도 그 얼굴은 마치 소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이었다.
“고명하신 도사(道士)같으신데 어쩌다 이렇게 늦게 드셨습니까?”
"도사랄 게 있소.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보고 그렇게들 말합니다만, 어렵게 생각마시오.“
“제가 잘 보았군요. 이거 참 우연히 큰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을 보니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니 별로.......”
“숨길 것 없소이다. 힘은 없지만 내가 흑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어디 말이나 해보오.”
선비는 잠시 생각했다
'도사라니 무슨 수가 있을지도 모르지. 밑져야 본전이다.'
그는 자기의 괴로움을 애기하였다.
“그 여인을 안아보고 싶어서 이토록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도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셨군. 능히 도와드릴 수 있소이다.그런데 보아하니 처자가 있으실 듯한데.......”
“처는 있으나 어찌 무심히 돌아설 수 있겠습니까.다른 걱정은 일체 마시고 저를 도와 꼭 그 여인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그 여인을 당신에게 데려다 주겠소 ”
잠시 후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나 선비가 방문을 열어보니 낮에 보았던 그 여인이 도사와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자. 그럼 젊은이 소원을 풀고 잘 지내시구려. 나는 바로 옆방에서 잘 터이니.”
그는 황흘한 마음으로 여인의 손을 이끌어 방으로 안내했는데 여인은 낮과는 반대로 다소곳하게 응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인을 끌어안고 그립던 정염을 마음껏 풀었다. 쾌락을 즐긴 선비는 도사에게 인사를 할 생각으로 도사의 방문 앞에 서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안에서 다정히 속삭이는 남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여자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마누라 목소리였다.
“글쎄. 제 남편은 계속 낙방만 하고, 치마만 두르면 군침을 삼키지요. 정말 볼품없는 인간이에요. 그런데 도사님 같은 훌륭한 어른을 만나 뵈었으니 제 일생을 바쳐도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교태가 뚝뚝 떨어지는 말소리였다. 선비의 머리로 뜨거운 피가 확 올라갔다.
“이 년”
그는 방문을 와락 열어젖히고 달려들며 소리쳤다.
“이 연놈들. 죽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선비를 바라보는 도사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없이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선비의 아내 역시 부끄러운 기색없이 당당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씩씩거리자 도사가 입을 열었다.
“남의 것을 탐내면서 남이 자기 것을 탐낸다고 욕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더니 도사는 밖을 향해 말했다.
“게 누구 없느냐? 어서 이 짐승 같은 놈을 혼내 주어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슴에 털이 수북한 사내가 큰 쇠몽둥이를 높이 치켜들더니 선비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선비는 너무 놀라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니 꿈이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지난 일을 생각한 선비는 자신이 지나친 호색으로 약해졌고, 또 그 때문에 과거에도 매번 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 길로 여인숙을 나와 단숨에 집에 이르러 아내를 힘껏 얼싸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