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담(肉談). 딸이란 게
한 시골 선비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몹시 애지중지하며 길렀다. 딸이 자라자 몇십 리나 떨어진 건너 마을로 시집을 보내고는 아비는 딸을 잊지 못해 종종 걸어서 딸에게 찾아갔다. 그런데 딸네의 살림살이는 제법 가멸졌으나 몇십 리를 땀 흘리며 걸어온 늙은 아비를 맞고서도 쓴 술 한 잔과 찬밥 한 그릇도 차려주지 않은 채 그대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내가 저를 얼마나 귀여워하고 사랑했는데 멀리서 딸을 보고자 찾아온 아비에게 물 한 모금도 대접하지 않다니 어찌 이렇게 무정하단 말이냐. 내가 일부러 죽었다고 부고를 보내면 과연 와서 슬퍼하는가 하지 않은가를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와 그 일을 약속하고 부고를 보낸 후에 홑이불을 덮고 죽은 사람 시늉을 했다. 그러자 과연 딸이 달려와서 시체를 얼싸안으면서 통곡을 했다.
"아이고 아버님. 이게 웬일이시오. 아버지가 그저께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내가 쌀밥에 쇠고기 국을 끓여드리고 좋은 술과 안주를 대접했더니 맛있게 자시고 가시더니 갑자기 이게 웬일입니까?"
딸은 또 숨도 쉬지 않고 계속 통곡을 했다.
"아버지께서 목화밭과 벼논을 내게 주시려고 하셨는데 이제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이오."
딸은 제 아비가 죽은 줄만 알고 어머니에게 이 말을 듣도록 해서 밭과 논을 챙기려는 수작을 부린 것이다. 그때 아비가 더 참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눈을 부릅뜨며 꾸짖는 것이 아닌가.
"이년, 이 무상한 딸년이 내가 죽은 줄로 알고 와서 이러느냐? 내 그저께 네 집을 찾아간 일도 없으려니와 그동안 몇 번 갔을 때 네년이 내게 물 한 모금 준 적이 있느냐? 또 언제 네게 전답을 준다 했단 말이냐. 간악한 딸년이 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딸은 눈물을 씻은 후 야릇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비의 손목을 잡았다.
"아버님의 죽음이 어찌 진짜 죽음이며 소녀의 울음이 어찌 진짜곡입니까?"
그러자 아비는
'내가 너에게 졌다'
하며 딸을 말없이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