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진퇴진퇴진퇴‥
임기종
2025. 4. 2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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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아이가 있었는데 모든 일을 서당에서 배운 대로만 행했다.
서당에서 남녀칠세부동석을 배운 뒤부터는 여자애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자라서 장가 간 첫날밤에도 벽만 쳐다보고 신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날이 새자 신부는 참지 못하고 친정어머니에게 달려가 병신에게 시집보냈다고 울면서 보챈다. 이 광경을 본 오라비가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 때문인 것을 눈치 채고 한 가지 꾀를 낸다.
아침을 먹은 후 신부 오라비가 신랑신부를 안방에 불러 놓고 다시 행례(行禮)를 하겠다며 윗목에 정화수를 떠놓고 아랫목에 이부자리를 폈다. 신부 오라비는 신랑신부를 방에 남겨 두고 밖으로 나와 홀기(笏記)를 읽을 테니 그대로 하라고 한다.
"먼저 옷을 벗고 신부는 요 위에 눕고, 신랑은 신부 양다리 사이에 가서 꿇어 앉을 것. 그리고 신랑은 신부 배 위에 엎드려라."
그러자 신랑이 홀기에 따라 그대로 행한다. 그러자 다시 신부 오라비가 홀기를 읽었다.
"나아갈 진(進)자를 부를 테니 나아가고, 물러날 퇴(退)자 부르면 물러나라."
그리고는 "진, 퇴, 진, 퇴, 진, 퇴,......" 하고 천천히 부른다.
한참을 그러는데 너무 느려 성미에 안 찼던지 다급했던 신부가 직접
"진퇴진퇴진퇴......"
하고 홀기를 빠르게 부르더라나
*홀기 :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