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을 즐김
임백호(林白湖) 제(悌)는 기개가 호방하여 예법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어 장차 죽게 되자 여러 아들들이 슬피 부르짖으니 그가 말하기를
"사해(四海) 안의 모든 나라가 황제라 일컫지 않는 자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 만이 예부터 그렇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누방(陋邦)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느냐?"
하며, 명하여 곡(哭)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또 항상 희롱조로 하는 말이
"내가 만약 오대(五代)나 육조(六朝)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돌려가면서 하는 천자(天子)쯤은 의당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한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했었다.
임진(壬辰)의 변란에 이르러, 한음(漢陰) 이정승(李政丞)이 명(明) 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반접(伴接)하자, 그는 한음의 인물을 대단히 추앙하여 심지어는 감히 말하지 못할 말까지 하는 것이어서, 일은 비록 진정이 아닐지라도 역시 스스로 편안하지 못했다.
이백사(李白沙)는 회해( 諧)를 잘하는데 어느날 야대(夜對)가 있어 시골 구석의 누한 습속까지도 기탄없이 다 아뢰는 것을 즐겁게 여겼으며 마침내 임백호의 일에까지 미치자 주상은 듣고서 웃음을 터트렸다. 백사는 또 아뢰기를
"근세에 또 웃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니 주상이
"누구인가?"
고 묻자, 대하기를
"이덕형(李德馨)이 왕의 물망에 올랐답니다."
하여, 상은 크게 웃었다. 백사는 이어 아뢰기를
"성상의 큰 덕량이 아니시라면 제놈이 어찌 감히 천지의 사이에 용납되오리까?"
하자, 상은
"내 어찌 가슴 속에 두겠느냐?"
하고 드디어 빨리 불러오게 하여 술을 내려 주며 실컷 즐기고 파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희학(戱謔)을 잘하도다.’하였는데 백사가 그 재주를 지녔다 하겠다. -성호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