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기자헌이 임진왜란 피난시에 여염집에 살았다. 오성 이항복이 그를 찾았을 때 기자헌이 말하기를,
"사는 집이 매우 좁아 아내와 첩이 같은 방에 사니 매우 구차하다."
고 하였다.
이에 오성이 한 수의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는데, 그 시에서 왈(曰)
덥지도 춥지도 않은 2월의 날씨에(不熱不寒二月天)
아내하나 첩하나, 정녕 사랑스러움을 이기기 어렵겠구나 (一妻一妾正堪憐)
원앙 베개 위에는 세 개의 머리가 나란하고 (鴛鴦枕上三頭幷)
비취 이불 속에서는 여섯 개의 팔이 이어 있고 (翡翠衾中六譬連)
입을 열어 웃을 때는 서로 섞이어 품(品)자와 비슷하고 (開口笑時渾似品)
* 주 ; 세 사람의 입이 3개이므로 品자와 같다는 말임
몸을 기울여 누운 곳은 흡사 내천(川)자와 같고 (側身臥處恰如川)
겨우 동쪽 변방(처)의 일을 홀연히 끝내고 나면 (然忽破東邊事)
또 서변(첩)을 쳐서 일격을 가해야 하겠구나. (又被西邊打一擊)
------
※ 기자헌(奇自獻)(1562-1624) : 조선 선조 때 등용되었으며, 광해군을 즉위시키는데 공헌하여 영의정이 되었으나 이괄의 난 때 반란군과 내응할 우려가 있다하여 사사(賜死)됨. 후에 이원익 등의 상소로 복권 됨.
※ 오성 이항복(.鰲城 李恒福) (1556-1618) : 호는 백사(白沙), 오성부원군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로 잘 호송한 공로로 봉군(封君)이 되었으며 임진란 뒤의 수습에도 큰 공을 세웠음. 5번의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영의정에 이름.
'해학과 재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농속에 갇힌 목사 (籠禁牧使) (1) | 2026.01.09 |
|---|---|
| 그 글은 책 어디에 있습니까 ? (厥書何在) (0) | 2026.01.08 |
| 저걸 깔아뭉갤까 (美女轢戱) (0) | 2026.01.06 |
| 짧은 손가락을 자책, 심한 건망증을 책망하다.(指短自責 忘甚責望) (1) | 2026.01.05 |
| 나 또 방귀 뀌었는데… (吾又放氣) (0) | 2026.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