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처첩이 한방에 살다. (妻妾同房)

임기종 2026. 1. 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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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헌이 임진왜란 피난시에 여염집에 살았다. 오성 이항복이 그를 찾았을 때 기자헌이 말하기를,

"사는 집이 매우 좁아 아내와 첩이 같은 방에 사니 매우 구차하다."

고 하였다.

이에 오성이 한 수의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는데, 그 시에서 왈()

 

덥지도 춥지도 않은 2월의 날씨에(不熱不寒二月天)

아내하나 첩하나, 정녕 사랑스러움을 이기기 어렵겠구나 (一妻一妾正堪憐)

원앙 베개 위에는 세 개의 머리가 나란하고 (鴛鴦枕上三頭幷)

비취 이불 속에서는 여섯 개의 팔이 이어 있고 (翡翠衾中六譬連)

입을 열어 웃을 때는 서로 섞이어 품()자와 비슷하고 (開口笑時渾似品)

 

* ; 세 사람의 입이 3개이므로 자와 같다는 말임

몸을 기울여 누운 곳은 흡사 내천()자와 같고 (側身臥處恰如川)

겨우 동쪽 변방()의 일을 홀연히 끝내고 나면 (然忽破東邊事)

또 서변()을 쳐서 일격을 가해야 하겠구나. (又被西邊打一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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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헌(奇自獻)(1562-1624) : 조선 선조 때 등용되었으며, 광해군을 즉위시키는데 공헌하여 영의정이 되었으나 이괄의 난 때 반란군과 내응할 우려가 있다하여 사사(賜死). 후에 이원익 등의 상소로 복권 됨.

오성 이항복(.鰲城 李恒福) (1556-1618) : 호는 백사(白沙), 오성부원군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로 잘 호송한 공로로 봉군(封君)이 되었으며 임진란 뒤의 수습에도 큰 공을 세웠음. 5번의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영의정에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