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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임기종 2014. 4. 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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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개성(開城)에 천마산(天磨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아 있기 때문에 천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다. 그 산 속에 용추(龍湫)가 있는데 그 이름은 박연(朴淵)이다. 박연의 둘레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 깊이는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 없으며, 거기에서 넘친 물이 백여 길이나 되는 폭포를 이루고 있다.

경치가 맑고 아름다워서 구경꾼들은 반드시 이곳에 와 보았으며, 옛날부터 여기에는 용신(龍神)이 있다는 전설이 역사에 실려 있다. 또 국가에서도 세시(歲時)를 당하면 소 한 마리를 잡아서 용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이 예(例)가 되었었다.

고려 때 개성에 살고 있던 한생(韓生)은 일찍부터 문장에 능해서 문명(文名)이 조정에까지 들렸다.

어느 날 한생이 홀로 집에 앉아 있노라니 갑자기 푸른 옷을 입고 수건을 머리에 접어 쓴 사람 둘이 공중에서 내려와 뜰 밑에 엎드려 말했다.

"저희들은 박연에 계신 용왕(龍王)님의 분부를 받고 선생님을 맞으러 왔습니다."

한생은 깜짝 놀라 낯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인간과 신국(神國)의 길이 다른데 어찌 서로 통할 수가 있겠소? 더구나 물길이 멀고 풍파가 사나운데 어찌 갈 수가 있겠소?"

푸른 옷을 입은 동자들은 말했다.

"문밖에 이미 준마(駿馬)를 대령했사오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그들이 한생의 소매를 잡고 문을 나서니 과연 준마 한 필이 있는데, 금으로 만든 안장과 옥으로 꾸민 굴레가 훌륭하고,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붉은 수건을 썼으며, 비단으로 만든 바지를 입은 사람이 십여 명 있었다.

그들은 한생을 부축하여 말 위에 앉힌 뒤에 일산(日傘)을 앞세우고 기악(妓樂)을 뒤따르게 했다. 청의(靑衣)의 두 사람도 홀(笏)을 들고 따라 왔다.

말이 공중을 향해 나니 네 발굽 아래엔 구름만 보일 뿐 땅은 보이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들 일행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용궁 문 앞에 도착하여 말에서 내렸다. 문지기는 모두 방게, 새우, 자라의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삼연(森然)하게 늘어서 있는데, 눈이 길게 째졌으나 한생을 보더니 모두 경례하고 의자를 권했다. 이때 그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보고하니 얼마 안되어 청의 동자 둘이 나와서 한생을 안내했다.

한생이 조심스럽게 나가다가 궁문(宮門)을 쳐다보니 현판에 함인지문(含仁之門)이라 씌어 있었다.

한생이 문에 당도하자 용왕은 절운관(切雲冠)을 쓰고 칼을 차고 홀을 들고서 뜰 아래에 내려와 맞으며 대궐 위에 올라가 의자에 앉기를 청하는데 이것이 곧 수정궁(水晶宮) 안의 백옥상(白玉牀)이었다.

한생은 자리를 사양하면서 말했다.

"하토(下土)의 어리석은 백성은 초목과 같은 처지이온데 어찌 위엄을 헤아리지 않고 외람되이 사랑을 받겠습니까?"

그러자 용왕이 말했다.

"오랫동안 선생의 성화(聲華)를 들었습니다만 높으신 얼굴을 이제야 뵈오니 의아히 생각지 마시오."

용왕은 마침내 손을 내밀어 앉기를 청했다. 한생이 세 번 사양한 뒤에 자리에 오르자, 용왕은 남향(南向)으로 칠보상(七寶牀)에 앉고 한생은 서향(西向)으로 앉으려 하는데 문지기가 말했다.

"손님 몇 분이 또 오십니다."

용왕은 곧 문밖으로 나가서 그들을 맞았다. 세 손님은 붉은 도포를 입고 채색 수레를 탔는데 그 위의(威儀)와 시중 드는 사람들로 보아 임금의 행차 같았다.그때 한생은 들창 밑에 몸을 숨겼다가 자리를 정한 뒤에 인사를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용왕은 그들 세 손님을 동향(東向)으로 앉게 한 뒤에 말했다.

"마침 양계(陽界)에 계신 문사(文士) 한 분을 맞았으니 그대들은 의아해하지 마시오."

용왕은 좌우 사람에게 명하여 한생을 들어오게 했다.

한생은 들어왔으나 윗자리에 앉기를 사양하며 말했다.

"여러분은 귀중하신 몸이옵고 저는 빈한한 선빈데 어찌 높은 자리에 오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말했다.

"아니오. 우리와 선생은 음양(陰陽)의 길이 달라서 서로 통제할 권리도 없거니와 또한 용왕님은 인격이 높고 감상(鑑賞)하심이 밝으시니, 선생은 반드시 양계(陽界)의 문학의 대가(大家)이실 것입니다. 그러니 용왕님이 명하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용왕은 각기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이에 세 사람은 일시에 자리에 앉고 한생은 끝까지 겸양의 태도로 말석에 앉았다. 좌정하고 나서 찻잔을 한 바퀴 돌린 뒤에 용왕은 한생에게 말했다.

"내 일찍이 자식을 두지 못했고, 다만 한 딸을 길러 이미 결혼할 시기가 되었소. 미구에 예를 치르려 하나 집이 누추해서 화촉을 밝힐 만한 방도 없기로 이제 별당 한 채를 세워 가회각(嘉會閣)이라 이름지었소. 남은 준비는 다 되었으나 다만 상량문(上樑文)이 마련되지 못했소이다. 내 들으니 선생은 이름이 삼한(三韓)에 떨치고 재주가 백가(百家)에 우뚝하다 하여 특별히 초대한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상량문 한 편을 지어주시는 것이 어떻겠소?"

말이 끝나자 두 아이가 푸른 옥벼루와 소상(瀟湘) 반죽(斑竹)으로 만든 붓, 그리고 이름난 비단 한 폭을 받들고 와 앞에 꿇어앉았다.한생이 곧 일어나 붓을 잡고 즉석에서 글을 쓰는데, 그 글씨는 마치 구름과 내가 서로 얽히는 듯했다. 그 글은 이러하다.

"삼가 말씀드리건대, 이 누리 안에서는 용신(龍神)이 가장 성스럽고, 인물(人物) 사이에서는 배필이 지극히 소중하다. 이미 만물에 윤택한 공로가 있으니 어찌 복받을 터전이 없으리요. 그런 까닭에 우는 징경이를 <<시경(詩經)>>에서 읊었고 나는 용을 <<주역(周易)>>에서 말했다. 이에 새로이 집을 세우고 아름다운 이름을 높이 붙여 자라를 불러 힘을 내고 조개를 모아 재목을 삼으니 수정과 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용골(龍骨)과 낭간(琅 )으로 들보를 걸었는데 주렴을 걷으면 산 빛이 푸르고 구슬 창을 열면 골짜기의 구름이 둘려 있다. 부부가 화락하여 복록(福祿)을 백년간 누리고 금슬(琴瑟)을 고르어 금지(金枝)를 만세(萬世)에 뻗게 해다오. 풍운의 변화를 돕고 조화의 공덕을 나타내어 높은 하늘에 오를 때나 깊은 못에 내릴 때나 상제(上帝)의 어진 마음을 돕고 인민의 목마름을 구제하라. 위풍(威風)이 천지에 높고 공덕이 원근에 흡족하여 검은 거북과 붉은 잉어는 뛰면서 소리치고 나무 귀신과 산의 도깨비도 모두 치하하리. 마땅히 찬양하는 노래 두어 장(章)을 불러 들보를 들어 보리라.

들보 동쪽에 떡을 던지니

높고 높은 푸른 산이 저 공중에 솟았구나

하루 저녁 우렛소리 시냇가에 들려올 제

만 길이나 푸른 벼랑 구슬빛이 영롱하네.

들보 서쪽에 떡을 던지니

높은 바위 그윽한 길 산새들이 우짖는다

깊고 깊은 저 용추는 몇 길이나 되겠는가

푸른 유리 한 이랑이 봄빛 짙어 어리네.

들보 남쪽에 떡을 던지니

푸른 산 십리 사이 송림들만 비껴 있네

굉장한 저 신궁(神宮)을 그 누가 알아주랴

유리처럼 맑은 모양 그림자만 잠겨 있네.

들보 북쪽에 떡을 던지니

아침 햇살 처음 오를 제 거울처럼 밝은 용추

삼백길 흰 산 자취 저 공중에 비꼈으니

하늘 위의 은하수는 이곳으로 떨어지네.

들보 위에 떡을 던지니

창공에 흰 무지개 손 뻗어 어루만지네

동해의 부상(扶桑)은 멀고멀어 천만 리라

인간 세상 굽어보니 손바닥과 똑같네.

들보 아래에 떡을 던지니

어여뻐라 봄의 밭이랑 아지랑이 껴 있네

성스러운 물 한 줄기 이곳에서 길어다가

온 누리에 비와 같이 뿌려보면 어떠리.

원컨대 이 집을 이룩한 뒤에 화촉의 밤을 맞아서 만복이 함께 하고 온갖 상서로운 것이 모두 모여들어 요궁(瑤宮)와 옥전(玉殿)에 구름이 찬란하여 원앙 이불과 봉황 베개에 즐거움이 한없으리라."

한생은 글쓰기를 마치자 곧 용왕에게 바쳤다.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세 손님에게 그 글을 보이니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용왕은 한생을 위하여 윤필연(潤筆宴)을 열었다. 한생이 물었다.

"저 많은 신(神)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높으신 성명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용왕은 말했다.

"선생은 양계(陽界)의 사람이라 응당 모르실 것입니다. 저 세 분 중 첫째 분은 조강신(祖江神)이요, 둘째 분은 낙하신(洛河神)이요, 셋째 분은 벽란신(碧瀾神)인데 선생과 같이 노시게 하기 위하여 초대한 것이오."

곧 술을 올리고 풍악을 울리며 미녀 십여 명이 푸른 소매를 떨치고 꽃을 머리에 꽂고 춤을 추면서 벽담곡(碧潭曲) 한 곡조를 불렀다.

푸른 산은 창창하고 푸른 못은 출렁이네

나는 폭포 우렁차게 은하수에 닿았네

저 가운데에 계신 님이시여! 환패(環佩) 소리 쟁쟁하네

빛나는 위풍이요 갸륵한 얼굴이네

좋은 때 길한 날에 봉황새 울음 울 제

나는 듯한 이 집 지어 온갖 상서 다 모이네

문사를 모셔다가 글을 지으니

높은 덕 노래하여 긴 들보를 올렸네

술잔을 날리고 향기로운 술을 부어

가벼운 제비처럼 봄볕 향해 뛰노네

화로엔 매운 향기 냄비엔 옥장(瓊漿)을 끓이네

어고(魚鼓)는 소리내고 용적(龍笛)으로 행진곡 울리네

얌전하다 하지 않으랴 높이 앉은 님이시여!

갸륵하신 덕이시라 어깨 치며 껄껄 웃네

옥항아리 치는 소리 마음껏 마시소서

맑은 흥이 흡족하자 슬픈 마음 절로 나네.

춤이 끝나자 다시 총각 십여 명이 왼손에는 피리를 들고 오른손에는 일산을 들고 서로 돌아보면서 회풍곡(回風曲)을 불렀는데, 그 노래는 이러했다.

산기슭에 사람이 있으니 덩굴 풀로 옷을 입었네

해가 장차 저무는데 맑은 물결 일어 가느다란 무늬가 비단 같네

나부끼는 바람 앞에 귀밑머리 헝클어지고

뭉클뭉클 구름 일어 옷자락은 너울너울

빙빙 돌면서 꼬불거리니 예쁜 웃음으로 서로 마주치네

내가 입은 홑옷은 여울 위에 던지고

내가 꼈던 가락지는 찬 모래에 내버려두네

뜰 잔디에 이슬이 젖고 높은 산에는 연기가 끼네

마치 강 위의 푸른 소라 같네

이따금 치는 징소리에 비틀비틀 취해 춤추네

물처럼 많은 술이요, 산같이 쌓인 고길세

손님은 이미 취해서 얼굴이 일그러지니 새 곡조 지어 노래부르세

몸을 서로 부축하고 서로 끌며 서로 손뼉 치고 웃기도 하네

옥 술병 치면서 한없이 마셨으니

맑은 흥취 무르익자 슬픈 마음 많아지네.

용왕은 기뻐하여 다시 술을 부어 권하면서 스스로 옥룡적(玉龍笛)을 불어 수룡음(水龍吟) 한 곡조를 노래하여 그 기쁜 흥치를 도왔다.

풍류 소리 그 가운데 또 한 잔 가득 부어

기린 그린 항아리에선 이름난 술 흘러내리네

처량한 저 옥저를 비껴 쥐고 한 번 불어

하늘 위의 푸른 구름 쓸어본들 어떠하리

물결을 충동하여 좋은 풍월 새 곡조여

경개는 한가한데 이 인생 늙는구나

애달 퍼라 빠른 광음 풍류조차 꿈이런가

기쁨도 간데 없으니 이 시름 어이하리

서산에 낀 저 연기는 이 저녁에 녹아 없어지고

동쪽 봉우리 둥근 달이 기쁘게도 돋아오네

술잔을 높이 들어 물어보자 저기 저 달

진세의 온갖 태도 몇 번이나 겪어왔나

금술잔에 술을 두고 님은 이미 취해 있네

옥산(玉山)이 무너진들 그 뉘라서 자빠뜨려

아름다운 님이시여! 십 년 진토 근심 잊고

푸른 하늘 높은 곳에 유쾌하게 놀아보세.

용왕은 노래를 마친 뒤에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우리나라의 놀이는 인간 속세와 같지 않으니 그대들은 귀하신 손님을 위하여 각기 재주를 다 보이는 것이 어떠한가?"

이때 한 사람이 자칭 곽개사(郭介士)라 하고 발굽을 들고 비스듬한 걸음으로 나와서 말했다.

"저는 산 속에 숨어사는 선비요, 바위틈에 사는 한가한 사람입니다. 팔월에 가을 바람이 맑으면 동햇가에 도망(稻芒)을 운반하고, 높은 하늘에 구름이 흩어질 때면 남정(南井) 곁에서 빛을 토했습니다. 속은 누렇고 밖은 둥글며 굳은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창을 가졌습니다. 재미와 풍류는 장사(壯士)의 낯을 기쁘게 해주고 곽삭(郭索)한 꼴은 부인들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내 마땅히 다리를 들고 춤을 추어보겠습니다."

곽개사는 곧 그 앞에서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서 침을 흘리며 눈을 부릅뜬 채 사지를 흔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났다 하며 팔풍무(八風舞)를 추는데 그의 동류가 수십 명이요 춤추는 태도는 모두 법도에 맞았다. 이때 곽개사는 노래 한 곡조를 불렀다.

강해(江海)를 의지하여 비록 구멍 속에 살고 있을망정

기운을 토하려면 범과도 싸우리라

이 몸이 구척이라 상감 앞에 진상하고

겨레는 열 갈래니 이름 못다 말하리

님이시여! 기쁜 잔치 발굽 들고 비스듬한 걸음

깊이 잠겨 있었더니 강나루의 등불에 놀라

은혜를 갚으려고 구슬 눈물 흘리는 것인가

원수를 무찌르려고 날쌘 창을 뽑았던가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웃지 마오 쌓인 덕이 군자라네

온 사지에 사무쳐서 다리가 옥같이 볼통하다

오늘밤이 어떤 밤인가 요지(瑤池)의 잔치에 내가 왔네

님께서 노래하자 손님도 취해 설렁이네

황금전(黃金殿) 위 백옥상에 한잔 드세 풍류 지어

퉁소 소리 쉴 새 없이 이름난 술 취해보세

산귀(山鬼) 와서 춤을 추고 물고기들도 뛰노누나

산의 개암과 들의 복령(茯笭) 님 생각이 절로 나네.

그 춤추는 모습을 본 만좌의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때 또 한사람이 자칭 현선생(玄先生)이라 하고 꼬리를 끌면서 목을 늘이고 눈을 부릅뜨고 나와서 말했다.

"저는 시초(蓍草) 그늘에 숨어사는 자요, 연잎에 노는 사람입니다. 낙수(洛水)에서 등에 글을 지고 나와 성스러운 하우(夏禹)의 공로를 나타냈으며, 맑은 강에서 그물에 걸려 송원군(宋元君)의 꾀를 성공시켰습니다. 신기한 점(占)은 세상의 보배가 되고, 삼엄한 무기는 장사의 기상입니다. 노오(盧敖)는 바다 위에서 나를 걸터앉았고, 모보(毛寶)는 나를 강물에 놓아주었습니다. 살아서는 보배요 죽어서도 신령이니 내 마땅히 노래 한 곡조를 불러 천년에 쌓인 회포를 풀어보겠습니다."

그는 목을 움츠렸다 뽑았다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구공(九功)의 춤을 추는데, 홀로 나아갔다가 물러섰다 하면서 노래 한 곡조를 부른다.

산택(山澤)에 의지하여 호흡으로 길이 살았네

천년에 열 꼬리 모르는 것 없으리라

내 비록 긴 꼬리를 진흙 속에 끌더라도

묘당(廟堂)에 간직함은 내 소원이 아니어라

약 없어도 오래 살고 배운 것 없어도 통령(通靈)하네

성스러운 님을 만나 온갖 상서로움 나타내며

수족(水族)의 어른 되어 숨은 이치 연구하고

문자 그려 등에 지고 길흉사를 가르쳐주네

슬기가 많다 해도 곤액(困厄)에는 할 수 없네

재능을 믿지 마라 못 미칠 일 있으리라

죽음을 면하려니 물고기를 벗삼네

발 들고 목을 뽑아 높은 잔치에 내 왔노라

님의 조화 축하하려 힘차게도 붓을 뽑아

술 드리자 풍류 일어 즐겁기도 끝이 없네

북을 치고 퉁소 부니 도롱뇽이 춤을 추네

산도깨비 물신령들 빠짐없이 다 모였네

뜰 앞에서 서로 맞아 춤도 추고 뛰놀았네

손목 잡고 재미있게 웃어 즐겁기 그지없네

해 저물고 바람 불어 고기 뛰고 물결 일 제

좋은 때를 항상 얻으랴 내 마음이 슬프구나.

곡조가 끝났으나 황홀한 그 춤들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이에 만좌의 사람들은 모두 기쁨을 참지 못했다.

그 뒤를 이어 숲속의 도깨비와 산에 사는 괴물들이 각기 그 재주를 자랑하여 휘파람을 불고 노래도 부르며 피리도 불고 글도 외우는데, 모양은 서로 같지 않으나 그들의 소리는 한가지였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깊은 물에 계신 님은 때때로 날아 하늘 위에 있네

오오, 님이시여! 기나긴 복 천년 만년 누리소서

귀한 손님맞이하니 얌전할샤 신선이네

새 곡조를 노래하니 구슬처럼 구르누나

옥석에 깊이 새겨 길이길이 전하리라

님께서 돌아갈 제 이 잔치를 벌였구나

채련곡(採蓮曲)을 불러보세 예쁜 춤을 나풀나풀

쇠북 소리 둥덩거리는데 거문고로 화답하네

배 저어라 한 소리에 고래처럼 숨을 쉬네

예식들도 갖췄건만 즐거움이 끝이 없네.

그 다음에는 강하(江河)의 군장(君長)인 세 손님도 꿇어앉아 각기 시 한 수씩을 지어 올렸다.

첫째 조강신은 이렇게 읊었다.

푸른 바다 조종(朝宗)이라 장한 기세 쉼이 없어

힘차게 이는 물결 가벼운 배 띄웠구나

구름이 흩어진 뒤라 밝은 달이 물에 잠겨

밀물이 일려 할 제 건들바람 섬에 가득하네

따가운 햇빛에 물고기들은 뜰락말락하건마는

맑은 물결 해오라기 오며 가며 놀고 있네

사나운 파도 속에 시달리던 이 몸인데

기쁘도다 오늘 저녁 온갖 근심 다 녹았네.

둘째 낙하신은 이렇게 읊었다.

아롱아롱 오색 꽃은 그림자조차 가렸고

대그릇과 악기들은 질서 있게 늘어서 있네

운모 휘장 두른 곳에서 노랫소리 흘러나오고

수정 주렴 드리운 속에서는 나풀나풀 춤을 추네

성스러운 용왕님은 항상 이곳에 잠기실까

아름답다 귀한 문사 자리 위의 보밸세

어찌하여 긴 끈 얻어 지는 해를 잡아매리

한 봄이라 거듭 취해 놀고 간들 어떠하리

셋째 벽란신은 이렇게 읊었다.

님은 취하시어 높은 상에 기대어 있네

부슬부슬 산에 비가 내려 해는 이미 석양일세

고운 춤을 나풀나풀 비단 소매 날리네

맑은 노래 가늘어서 새긴 들보 안고 도네

외로운 회포 몇 해런가 그윽한 저 섬 속에

오늘에야 기쁘게도 백옥잔 잡고 있네

광음이 흐르고 흘러 그 뉘라서 아오리까

예나 지금 세상일이 속절없이 바쁘기만 하네.

용왕은 그들의 시를 차례로 읊고 나서 한생에게 주었다. 한생은 이 글들을 받아 꿇어앉아 읽은 뒤에 곧 장편시(長篇詩) 한 수를 지어 갸륵한 일을 찬미했다.

천마산은 높고 높아 나는 폭포 멀리 뿌려

바로 솟아 숲을 뚫고 급히 흘러 시내가 되네

물 가운데 달 잠기고 그 밑에는 용궁이라

신기 변화의 자취를 두고 높이 올라 공을 세워

가는 내에는 향기가 일고 상서로운 바람이 부네

상제에게 명령받아 푸른 섬을 보살필 제

구름 탄 채 조회하고 말을 달려 비 내리네

금궐(金闕)위에 잔치 열고 옥계(玉階) 앞에 풍류 지어

이름난 술잔에 운기(雲氣)뜨고 붉은 이슬 연잎에 맺네

위의(威儀)도 무겁지만 예법은 더욱 높네

의관은 찬란하고 환패 소리 쟁쟁하네

자라가 축수하고 물신령도 모여 있네

조화가 얼마나 황홀한가 숨은 덕이 더욱 깊네

북을 치니 꽃이 피고 술잔 속엔 무지개이네

천녀(天女)는 옥저를 불고 서왕모는 거문고 타네

술 한 잔 또 부어라 만세 삼창하리로다

얼음 같은 과실이요 반 위에는 수정괄세

온갖 진미에 배부르고 깊은 은혜가 뼈에 스며

바닷물을 마신 듯이 봉래산에 구경 온 듯

즐거운 뒤 이별이라 풍류조차 꿈이로다.

이 시를 들은 사람 중 탄복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용왕은 한생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나서 말했다.

"마땅히 이 시를 금석(金石)에 새겨 영원히 보배로 삼을 것이오."

이에 한생은 사례한 뒤에 용왕에게 청했다.

"용궁의 좋은 일들은 잘 보았습니다만 도시의 장한 형세와 건설의 번화함도 자유로이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용왕은 말했다.

"그렇게 하시오."

이에 한생은 용왕의 허가를 얻어 문밖에 나오니 다만 오색 구름이 주위에 둘려 있어 동서를 분간할 수 없었다.

용왕이 부하에게 명하여 그 구름을 걷히게 하매 한 사람이 뜰에 서서 입을 찌푸리고 공중을 향하여 한 번 불어버리니 천지가 갑자기 명랑해지며 산과 바위들은 간 데 없고 다만 한 넓은 세계에 온갖 화초가 벌여 있고, 평탄한 모래 주위에 금성(金城)을 쌓았는데 그 가운데에 푸른 유리 벽돌을 펴두어 빛이 찬란하였다.

용왕이 두 사람에게 일러 한생을 인도하여 다니다가 한곳에 이르니 높은 누각 하나가 있는데 그 이름은 조원지루(朝元之樓)라 하였다. 이 누각은 전체가 파려(  )로 되어 있고 구슬과 옥으로 꾸민 뒤에 금벽(金碧)을 칠한 것이었다.

그 위에 올라가니 마치 공중을 밟는 것과 같고 층계는 열 개인데 한생이 여덟 번째 층계에 오르려 하자 사자가 말했다.

"여기서 멈추십시오. 여기는 다만 상감께서 신력(神力)으로 오르시는 곳입니다. 저희들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 누각의 위층은 구름 위에 솟아 있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이었다. 한생은 할 수없이 그만 내려와 또 다른 곳에 이르니, 이곳은 곧 능허지각(凌虛之閣)이었다. 한생은 물었다.

"이 집은 무엇 하는 곳인가요?"

사자가 대답했다.

"이곳은 상감께서 하늘에 조회할 때 모든 행장과 의관을 차리시는 곳입니다."

한생은 다시 그 기구를 구경시켜달라고 청했다. 사자가 인도한 곳에 이르니 어떤 물건이 있는데 그 모양은 둥근 거울과 같고 빛이 번득여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한생은 물었다.

"이것은 무엇이오?"

사자는 대답했다.

"번개를 맡은 전모(電母)의 거울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마치 북처럼 생겼으므로 한생이 한번 쳐보려 하자 사자는 말했다.

"치지 마십시오. 만일 이 북을 한 번 치면 백가지 물건이 진동하게 되니, 이것은 천둥을 맡은 뇌공(雷公)의 북입니다."

또 한 곳에는 목탁과 같은 물건이 있으므로 한생이 이것을 흔들어보려 하자 사자는 말했다.

"이것은 바람을 불게 하는 목탁입니다. 만일 이것을 한 번 흔들면 산의 바위가 무너지고 큰 나무가 뽑힙니다."

또 한 물건이 있는데 모양이 비( )와 같고 그 옆에는 물을 길어놓은 항아리가 있었다. 한생이 비를 들어 그 물을 뿌려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사자가 말했다.

"이 비를 한 번 뿌리면 홍수가 나서 천지가 물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에 한생이 물었다.

"그러면 어찌해서 여기에는 구름을 불어내는 기구는 비치하지 않았소?"

사자는 말했다.

"구름이야 상감의 신력(神力)으로 되는 것이지 기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천둥, 번개, 비 같은 것을 맡은 분은 어디 계시오?"

하고 한생이 또 묻자 사자가 대답했다.

"옥황상제님께서 그들을 가두어두었다가 우리 상감께서 나오시면 집합시킵니다."

그 외의 기구도 많았지만 무엇이 무엇인지 일일이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길이가 긴 건물 하나가 둘려 있는데 문에는 튼튼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한생은 물었다.

"이것은 무엇이오?"

사자가 말했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곳은 상감께서 칠보(七寶)를 간직해두신 곳이라고 합니다."

이에 한생은 얼마 동안 구경했으나 다 볼 수가 없기에 그만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우람한 문들이 하도 많아 나갈 곳을 알 수가 없어 부득이 사자에게 길을 인도해 달라고 청한 뒤에야 비로소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와 용왕께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왕의 높으신 은덕으로 속세에서 보지 못하던 선경(仙境)을 구경했습니다."

한생은 곧 두 번 절하고 작별의 인사를 올렸다. 이에 용왕은 산호반(珊瑚盤) 위에 깨끗한 구슬 두 알과 빙초(氷 ) 두 필을 담아서 노자에 쓰라고 준 뒤에 문밖까지 나와서 환송했다. 이때 그 세 손님도 함께 하직하고 떠났다.

용왕은 다시 두 사자를 시켜 산을 뚫고 물을 헤치는 기구를 가지고 한생을 인도하게 했다. 이때 사자 한 사람이 한생에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제 등에 업혀 잠시 눈을 감으십시오."

한생은 그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사자 한 사람은 기계를 들고 앞길을 인도하는데 마치 몸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같고 다만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끊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 소리가 그쳐 한생이 눈을 떠보니 자기는 자기 집 방에 누워 있었다.

한생은 놀라 문밖으로 나가 보니 하늘에는 별이 드물고 닭은 세홰나 울어 밤이 이미 오경(五更)이나 되었다. 이에 급히 자기 품속에 손을 넣어보니 용왕이 준 구슬과 빙초가 들어 있었다. 한생은 이것을 대나무 상자에 깊이 간직하고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그 뒤에 한생은 세상의 명리(名利)를 마음에 두지 않고 명산(明山)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작자 : 김시습

연대 : 세조 때

갈래 : 고대 단편 소설, 몽유소설

성격 : 전기적(傳奇的), 번안소설의 성격을 띰

주제 : 화려한 용궁 체험과 삶의 무상감

출전 : 금오신화

기타 : 중국 明나라 瞿佑(구우)가 쓴 '전등신화(剪燈神話)'의 영향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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