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내가 쓴 글( 상말 가루지기전)

임기종 2011. 7.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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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말 가루지기 전

1. 시작하면서 1

이가원(李家源 전 단국대교수)은 가루지기타령의 근원설화(根源說話)로 구부총(九夫塚)을 꼽고 있다.

경남 사천 북쪽 두량리에 옥녀라는 한 여자가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열여섯에 시집을 갔는데 억샌 팔자 때문에 남편만 얻으면 한해도 못가 죽었다. 결국 사별한 남편이 아홉이나 됐는데 그때마다 시체를 갖다 묻은 곳이 사천읍 두량리 추동 실티골 동쪽 아홉 살(煞) 골짜기였다.

아홉 남편이 죽어 나가도록 기막힌 삶을 살아가던 옥녀가 춘석관이라는 곳에서 어떤 남자를 만난다. 두사람은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데 어느 날 남편이 땔감으로 장승을 짊어지고 오자 그걸 쪼개서 군불을 땐다. 그랬더니 남자는 동티가 나 장승처럼 뻣뻣하게 선채로 죽어 버린다. 혼자 남은 옥녀가 시체를 치워주는 사람과 살겠다고 공표하자, 중, 초라니, 풍각쟁이 등 여덟 사람이 덤벼들었으나 모두 죽는다. 마지막으로 각설이패와 마종이 송장 여덟을 나눠지고 북망산으로 찾아 들어가 모두 땅에 묻는다. 하지만 마종 떱뚝이는 남편과 초라니의 시체를 가로진 채 장승이 돼 버렸다. 그 후 열번째 남자가 찾아와 같이 살자고 하지만 이젠 시체 치우기도 싫증났는지 거절하고 단봇짐을 싸서 정처없이 길을 떠난다. 그때 넘은 고개가 실티(싫다)고개라 불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가루지기타령은 동리 신재효(申在孝)가 구전돼 온 판소리 6마당(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가루지기타령) 중 하나를 다시 쓴 것이다.

가루지기란 시체를 거적으로 둘둘 말아 지고가서 초상을 치루는 것을 말한다. 가루지기 타령은 다른 말로 횡부가(橫負歌), 송장가, 변강쇠 전, 변강쇠타령 등으로도 불린다.

매우 음탕한 북쪽 서도(西道) 계집 옹녀(雍女)와 남도(南道) 사내 변강쇠가 있었다. 이들은 살던 동네에서 지나치게 문란한 성행위로 인해 남녀를 불문하고 줄초상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결국 마을에서 쫓겨난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변강쇠는 북쪽으로 올라가고 옹녀는 남쪽으로 정처없이 내려간다. 개성(開城) 청석관(靑石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사람은 개성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얼마동안 그곳에서 살다가 더 이상 먹고살기가 어려워지자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산중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하루는 강쇠가 땔나무를 하러 산으로 갔으나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날은 저물고 화목을 구할 수가 없다. 빈손으로 집에 가면 마누라 잔소리가 분명할 것이라 걱정하던 차에 길 가에 서있는 장승을 보게 된다. 강쇠는 옳다구나 하고 장승을 뽑아 지고 내려와 쪼개 군불을 때 버린다. 그러자 강쇠에게 억지 죽음을 당한 장승이 한 맺힌 귀신이 돼 허공을 떠돌다가 그들의 우두머리인 대방장승에게 모든 사실을 일러바친다. 보고를 받은 대방장승은 전국에 산재한 장승들에게 파발을 돌려 전국 장승회의를 소집했는데 그 자리에 모인 팔도 장승들이 강쇠의 소행을 듣고 비분강개한다.

2. 시작하면서 2

전국 장승 회의에서 장승들이 한가지 씩 강쇠에게 저주를 내려 병을 주기로 결정하고 즉각 행동에 옮긴다. 저주를 받은 강쇠는 동티가 나 마치 장승처럼 뻣뻣이 서서 죽는다. 강쇠가 죽자 첩첩산중에 혼자가 된 옹녀 혼자서는 도저히 장례를 치룰 수가 없다. 그래서 장례만 치러 주면 누구를 불문하고 같이 살아 주겠다고 말한다. 소문이 나자, 길 가던 중과 초라니, 풍각쟁이들이 서로 덤벼들지만 강쇠 귀신의 저주를 받아 모두 죽는다. 그 후 각설이패와 말부리는 종놈 뎁득이가 와서 송장 여덟을 나눠지고 북망산으로 가는 도중 송장이 짐꾼들 등에 붙어버린다. 천신만고 노력 끝에 다른 송장들은 다 떨어지지만 마종 뎁득이가 지고 가던 변강쇠와 초라니 송장은 떨어지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송장을 떼 낸 뎁득이는 그 길로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 이야기에서 강쇠는 섹스만 밝히는 비생산적 건달이면서 가부장적 권위의식을 갖고 있는 부정적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권위적 풍채의 장승에 무식하게 도전함으로써 당시 권위적 사대부 계급에 대항하지 못하던 서민들의 반항 심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강쇠와 옹녀의 삶은 막무가내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계획 없는 삶에서 얻어지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옹녀는 여성 천시의 유교사회의 악습에 반발하는 여성으로 은근히 나타나 있다. 청상살(靑孀煞)이 겹겹이 끼어 남편의 계속되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개가해 새 삶을 찾아가는 신여성이었던 것이다. 개가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당시에는 지극히 금기시 되는 행위였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에서 옹녀는 색을 밝히고 남편이 죽자마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는 음란한 여성으로 비춰지는데 사실 그녀는 억눌린 성에서 이탈해 현실의 삶을 억척스럽게 꾸려가는 개방된 여성이었던 것이다. 또 중, 초라니, 풍각쟁이, 마종패, 각설이, 사당패들은 이들 모두 생활과 언동이 역시 비정상적이고 반윤리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언행 역시 당시 서민들의 억눌리고 힘든 생활상을 대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뎁득이는 옹녀가 원하는 행동을 구체화하는 생존 대안이다. 그 역시 재상 댁 말을 부리는 종으로 천민이지만 옹녀가 몸을 팔거나 구걸 하지 않고 노동을 통해 먹고 살도록 설득하는 인물이다. 옹좌수와 움생원은 형식에 얽메어 사는 이중인격의 인물을 묘사한다. 겉으로는 점잖은 채, 고고한 채 하지만 인간 본연의 욕구를 버리지 못한 범부의 행태를 비꼬고 있는 것이다.

가루지기타령은 삶에 오염된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다. 뎁득이는 옹녀와 결합하지 못한다. 아니 결합하지 않는다. 이는 유교사회의 엄격한 질서가 깨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작자의 숨은 의도이다.

가루지기전은 권위적이고 정형화된 사회질서의 흐름에 반감을 갖고 있던 하층민의 의식이 밑바탕이며 나약한 서민을 무조건 힘으로 제압하려는 권력자들을 귀신의 힘이라도 빌려 응징하려고 하는 백성들의 대리만족 심리가 은연중에 흐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지금부터 연재되는 상말 가루지기타령은 새롭게 꾸며본 것이다.

1. 상말가루지기 전

묘령의 여인

여러분, 혹시 이런 소문 들어 봤소. 참말로 해괴하고 요상시러워 만나는 사람마다 한번 물어 보고 싶으요.

아무리 거시기 해도 그라제, 요런 일은 나도 씨엄씨 죽고 처음이요. 물론 나도 뭣 달린 사낸디 어찌 씨엄씨가 있겄소마는 그 정도로 요상헌 일이라는 말잉께 모쪼록 이해해 주씨요.

거두절미 허고, 세상에나, 백여시도 아니고, 어떤 년이 하나도 아니고 대여섯명 씩이나 되는 사내들을 잡아 묵었답디다. 뭔 구멍이 그리도 깊은지 사내들이 한번 빠지면 죽어서야 나온단디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부르요. 하기사 항우장사도 빠지면 안 죽고 못배기는 데가 거기 기는 허지만이라.

나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혀도 ‘소문난 뭣 잔등 부러진다고 벨것도 아닌 디 이놈 저놈이 미친년 상추 뜯는 것 맹시롱 호들갑 떨고 있는 것이 것지’ 라고 생각했소. 근디, 만나는 사람마다 거짓말이면 지 손가락에 장을 지져 분다고 열을 내는 디, 난들 어찌겄소. 밑져야 본전인디 한번 믿어 보는 수밖에.

옛날에 담이 엄청시럽게 큰 사람이 살았답디다. 하루는 나그네 한사람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그 사내를 슬쩍 봉께 참말로 쓸개가 엄청나 불드라요. 정말 이 나그네에게 넘의 뱃속에 있는 쓸개를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든 갑디다. 보면 볼수록 그 사내 쓸개가 엄청나게 크드라요. 아마 주먹보다 더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드라 드만요. 그래서 그 나그네가

"내 천하에 담 큰 사람 다 봤지만 당신같이 큰 사람은 처음이오."

라고 연신 감탄을 흠시 롱

"사내로 태어난 이상 이왕이면 담을 맷돌짝 만하게 한번 키워보는 건 어떻겠소?"

하고 권항께, 담 큰 사내가 가슴과 배를 쑥 내밀드만 만족한 웃음을 얼굴 가득 띠면서 거드름을 피드라요.

글자, 안에서 "누구여?" 하는 여자의 쇳소리가 들리 드랍디다. 그 순간, 담 큰 사내의 쓸개가 점점 작아지드만 결국은 콩알 만해져 불드라요. 이를 본 나그네가 실망해서 일어 설라는디 갑자기 병풍 뒤에서

"어떤 미친 놈이 넘의 서방 담을 키울라고 들어?"

또 한번, 여자의 째지는 목청과 함께 와장창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담 큰 사내의 쓸개가 좁쌀 반만 해지드만 거기서 파르스름한 물이 똑똑 떨어져 불드라요.

그리도 담이 컸던 사내의 쓸개가 지 각시 소리 한마디에 터져 뿐 것이지라.

나가 이 말을 첨부터 허는 것은 세상소문이란 것이 다 그럴듯해도 벨로 실속이 없드라 이말 헐라고 괜히 한번 해본 소리요. 이해 허씨요.

그란디, 이 소문의 당사자가 여자란 말이요. 그것도 엄청 이쁜 여자. 하여튼 간에 그저 여자 이야기라면 뭔 일인가 허고 눈이 똥그래지는 건 나나 댁이나 어쩔 수 없는가 보요. 잉.

2. 상말가루지기 전

비명횡사

옛 말에 남녀 간의 뒷일은 하늘도 모른다고 안 흡디여. 근디 요런 소문이 나돌이 댕길 때는 뭐신가 분명한 내막이 있다. 요런 확신이 콱 들어 붑디다.

원래, 아 새끼는 밑으로 나오고 세상 일은 사람 주댕이에서 나오는 법 아닌게라.

나가 이 소문을 듣는 순간, 옳다구나 소일꺼리 하나 생겼구나 해부렀소.

그렀잔애도 헐일도 없는디. 요런 것도 일이라고 일꺼리 있응께 살맛 납디다. 그래봤 짜 돈도 안 생기는 일이기는 허지만. 그래도 시간 보낼 건덕지가 생겼는디 그만 허면 오지지라. 나의 말뜻은 일업시 방구들 신세 몇 달 져본 사람은 다 알 것이구만이라.

사람이 뒈져 나자빠졌답디다. 그것도 장가 막간 새신랑들이 말이어라. 한명도 아니고 예닐곱씩이나, 뭇 사내들이 비명횡사 했다는디 궁금 헌일 아니요. 궁금 허지라.

그 까짓거시 뭐 그렇게 엄청난 일인것 같이 떠드나고라? 서울에서 하루 사고로 죽는 수가 얼맨디, 그 말이요? 글드라도 넘이 애씀서 말허는디 한번 들어보씨요

요 사건은 남자들의 비명횡사에 여자가 관련된 사건이랑께라.

원래 싸움 구경 불구경이 제일 재밌고 남녀간의 뒷소문 캐보는 것이 그 담이라 안 흡디여.

글고 문제는, 뒈진 사내들 하나 같이 온 몸뚱아리 근육이 흐물거리고 2백6개 뼈마디가 전부가 노근노근 풀어졌드랍디다. 시방 이것이 먼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드라요.

근디, 언제냐, 기사식당에서 들었는디, 남자들은 온몸의 기가 옴싹 다 빠져 불면 그럴 수도 있다고도 헙디다만. 그말이 뭔 말인지 나야 뭐 알겄소. 나이 사십 줄에 장개도 못가고 하루종일 방구들만 파던 놈이 었는디.

좀 거시기 허긴 흐지만 문제가 있었소. 문제가 . 뒈진 남자들 모두 한 여자와 동침을 했다는 것이어라. 아무리 그래도 어찌께 여자와 잤다고 죽는단 말이요. 당신 같으면 믿겄소. 요런 일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만한 사건이랑께요. 만약 그렇다면 무서워서 어찌 장개 들것소 ?

각설허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요런 요상헌 일이 생긴 데가 바로 서울 강북 어디 산 밑이요. 거기 혼자 사는 젊은 한 여자가 주인공입디다. 솔직히, 나도 그 색시를 직접 보지는 못했어라, 못 봤응께 들은 대로만 이야기 할라요.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거짓말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응께 믿어도 되요. 사람이 나같이 너무 착혀도 못쓰는디 말이어라.

동네 사람들 말로는 처음에 저리 이쁜 색시가 왜 혼자 사는지 궁금 허드랍디다.

그란디, 얼마 안가 배고픈 개 마냥 침을 질질 흘리는 머스매들이 이 색시 주변을 맴돌기 시작 허드라요. 그 꼴을 봄시롱, 동네 김씨 영감이 혀를 찼답디다.

“원래, 아 새끼 못된 것이 과부 집만 찾는다고, 세상에,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배꼽 밑에 뭣만 달렸다면 눈깔에 흰자위를 세우고 덤벼 들드라니께, 쯧 쯧”

3. 상말가루지기 전

퀸카

옛말에 홀애비 집 앞은 풀이 무성하고 홀 에미 집 앞에는 큰길이 난다고 헙디다. 그래, 젊은 사내들이 지가 좋아서 처녀 쫒아 다니는 것이야 무슨 수로 막겄소.

글지만, 문제는 따로 있어 부렀당께요.

들어보씨요. 나도 처음엔 통 안 믿었어라. 근디, 듣다 듣다 봉께 이건 거짓말이 아니구나. 사실이 분명하다. 요런 확신이 듭디다. 들어.

귀신이 곡할 일이제, 요새 세상에 워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겄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그렇고 내가 조사 한바도 그렇고, 사건의 진상은 고구마 줄기마냥 끝없이 연결됩디다.

여자인물 반반 흐겄다. 이 여자와 잠만 자면 죽는다는 요상한 소문 돌겄다. 요런 재미꺼리가 어디 있겄소. 누가 나헌티 조사 수당만 좀 주면 금상첨환디. 돈말이요 돈.뙤약빝에 버스타고 돌아 다닐랑께, 한심 허기도 흐고.

하여간, 문제의 색시에 대한 처음 평판은 좋았습디다. 사근사근허고 인사성이 밝아 동네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드만요. 남자나 여자나 간에 사람은 인사성이 밝아야 쓰는 법이요. 지가 뭐시라고 넘이 인사허는디 쳐다도 안보는 인간도 있긴 헙디다. 그라믄 못쓰요. 우리도 서로 인사흐고 삽시다.

동네사람들 말로는 시간이 흐르자 변하드랍디다. 이 여자 젙에 남자들이 줄줄이 따릉께 달라지드랍디다. 그래서 여자와 그릇은 내 돌리면 탈나는 것이지라.

언제부턴가 시장 옆 카바레에 출입을 허드랍디다. 거기서 인기가 대단했다드만요. 요새말로 뭐 퀸카라 부른다든가.

생각해 보씨요. 뺑뺑이 돌다 눈이 어질 어질헌 사내들이 꽉찬 곳에 여자 혼자있어 보씨요. 난리나제 난리나. 여자 꼬시는데 길난 사내들이 가만 두겄소. 말도 아니제.

손 한번 잡아 주라는 사내들이 줄을 섰답디다. 뭐라고라. 당신은 안 그런다고라.

운동만 조용히 하다 온다고라.

먼소리요. 지나가든 개가 웃소. 며칠 전 인덕원 어디서 봤다는 사람도 있는디. 그렁께 속보이는 소리 허들들 말고 들어 보씨오.

그런 곳 가는 사내들 속셈이야 뻔허지 않소. 한번 건들어 볼까 그거지라 뭐. 다야 그라겄소 마는.

글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나 나나 어떤 정신 빠진 놈이 카바레에서 노는 년 데불고 살라고 뎀비겄소, 생각해 보씨요. 우리끼린께 허는 말인디 사내들 욕심이야 뻔허제. 넘의 차 한번 타볼라고 허는 것이제.

머시매들은 배꼽아래가 불룩해지면 두엄더미든 갯가든 내 쏟아버려야 시원흐다요. 앙그요. 글고 남자들은 욕심이 나면 뭐라도 빼줄듯 뎀비다가도 일단 끝나면 천하절색 양귀비도 호박꽃이나 벨로 다르지 않습디다. 안그라요 ?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점보는 것 허고 넘의 여자는 한번 허고나면 벨 볼일 없다 그럽디다. 맞지라? 요 말은 아무리 이뻐도 넘의 각시는 넘의 각시다 그 말이요.

4. 상말가루지기 전

서시(西施)의 출현인가.

근디, 뭔일이다요. 어매, 거시기한 일이 생겨 부렀소.

동네 사내놈들이 하나같이 이 색시를 보면 아랫도리가 간질거리고 불뚝 거리는걸 못 참게 된답디다. 비아그라를 갑째로 쳐묵은 것 맹시롱 안죽고 꼿꼿해진단 말이요. 메칠 밤을 그리 뜬 눈으로 새고 나면 시름시름 사람이 곯아 불드라요.

그래봤자 대부분은 지만 혼자 않는 것이지라. 떡줄 년은 생각도 않는디. 묵을 것 없는 지사에 절만 한다고 침만 줄줄 흘리다 눈깔만 뻘개졌을 뿐, 깃발 꼽고 도장 찍는 거사는 해본 놈이 아매 없었던 것 같았드랍디다. 처녀와 수소는 쓸데 써봐야 지대로 아는 법인디 말이어라. 아니 나가 지금 뭔소리 흐고 있다요. 망칙시럽게.

근다혀도 불과 계집은 쑤석거리면 탈나는 법인디 괜찮흘란가. 걱정되구만요.

사내들 정이야 들물 같애서 갈래로 흐른다 혀도 계집 정은 폭포 맹시롱 외곬으로 흐르는 법이지라. 거기에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있지 않으요.

참, 그 색시 어찌 생겼는지 모르지라. 내가 들은 대로 한번 이야기 헐께요.

솜털이 뽀송 뽀송 하얀 얼굴, 빠져 버릴 것만 같은 커다란 눈, 눈썹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 허고 항상 반쯤 벌어져 있는 입술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매혹적이었답디다. 거기다 잘룩한 허리는 꺾여질까 안쓰럽고 봉긋이 부풀어 오른 가슴은 손만 대면 금방 펑하고 밖으로 솟구쳐 나올 것만 같드랍디다. 요새말로 S 라인 몸매란 말이요.

어쩌다 살짝 찡그린듯 웃어주면 사내들이 깜박 죽었답디다.

펑퍼짐헌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걸을 때는 세모시 고쟁이에 눈멀고 마음 멀어 지도 모르게 쌩 오줌을 바지에 제린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허드만요. 그래도 정상 정복은 되게 힘들드라요. 어찌나 콧대가 센지 말이요.

10대는 깨기도 힘들고 먹을 것도 별로 없는 호두알, 20대는 딱딱해도 일단 벗겨 내면 그런 대로 먹을 만한 알밤, 30대는 쉽게 벗겨지고 맛도 그만인 귤, 40대는 건드리기 무섭게 저절로 터지는 석류, 50대는 이따금 생각이 나야만 찾게 되는 곶감과 같다고 안 흡디여.

열 번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헙디다. 요즘 세상에 요리 이쁜 색시가 어찌 버티겄소. 먼일이 생기제, 생겨불어.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뭇 사내들이 이 여자에게 쏟은 정성이 엄청 났답디다.

근디, 이 색시가 갑자기 어떤 놈과 결혼을 해 부렀다요. 벨로 잘나지도 못허고 미천도 쬐깐은 무지랭이 촌놈헌테 말이요.

자고로 기생점호는 내시가 헌다드만 희한한 일이 정말 생겨 부렀소.

이자 돈 내서 장개 들었드만 동네 머슴 놈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돼 부렀소. 긍께 문단속 잘한다고 몸단속까지 잘하란 법은 없드란 말이 참말이요. 동네 사내들은 보리술이 술이당가 넘의 계집이 계집이당가 흠시롱 마음을 달래봐도 허전한 심사는 이미 닭 쫒던 개꼴이 돼 부렀다요. 흐미 더럽게 거시기 흐게도 말이요.

5. 상말가루지기 전

복상사(腹上死)

보리 안패는 삼월 없고 나락 안패는 유월 없다요. 안 가르쳐 줘도 나이 들면 스스로 깨치는 것이 남녀 간의 그 짓거린디.

글고, 장은 묵을수록 비싸고 처녀는 묵을수록 값이 떨어지는 법이지라. 아무리 그래도 남자든 여자든 나이 들면 딱지는 떼야 허지 않겄소. 그 색시의 깊은 속내 까징은 몰러도 이해는 쪼께 가지라, 이해는 가.

나가 봉께, 시집 장개라는 것이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제일 못난 무지랭이 만나는 것이 태반입디다. 이 여자도 그래 부렀든 것 같애요. 지 눈에 안경이라면야 뭔 상관이것소. 속궁합만 맞으면 되는 것이 남녀 간의 정이고 좀 모자라도 살면서 살 송곳, 골풀무 길들이고 맛 들여 정붙이면 다 살게 마련이지라.

그놈이 그놈이제. 뭐 별놈이 따로 있겄소.

어허, 문제였소. 새침데기는 베고 자고 허우대는 그리다 죽는다 글드만 벨일이 다 생겨 부렀소. 첫날밤, 신랑 놈이 밤일을 치루다가 숨을 헐떡거리드만 뜬 물에 뭣 담가 놓은 듯, 흐물흐물 해져 색시 배위에서 그대로 쭉 뻗어 부렀다요. 원래 색골이야 배위에서 죽는다 혀도 요놈 생긴 꼬라지로는 그런 막중한 대사까지 치룰만한 위인이 못되는디, 참말로 쉽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요.

그리 돈 많고 잘생긴 사내들이 줄줄 따라 댕겨도 눈 한번 안 돌리드만 눈에 무신 콩깍지가 씌웠나 이놈을 골라 뒷간 개구리한테 뭣 물린 꼴이 돼 부렀소.

가만, 가만, 그놈이 왜 뒈져부렀을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혹시 호박이 넝쿨 째 굴러 들어옹께 인자 됐다 하는 안도감에 심신이 다 풀어져 부렀을까. 아니면 없던 기운 쓰다가 귀향 표도 못 챙기고 황천길로 직행 해버린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이쁜 각시 놔두고 눈이라도 제대로 감고 죽었는지 모를 일이요. 모를 일. 요건 전부 나 생각이요. 나가 생각해도 이런디 까지 추리까지 해낸 것이 상당히 대견허요.

아, 글로 남녀가 뭣 허다가, 아니면 허고 난 뒤 갑자기 뒈지면 복상사라 헌다요. 요런 일은 전에도 종종 있었답디다. 하기사 옛날이라고 그 짓 않고 살았겄소.

남녀가 그 짓을 하다가 죽으면 상마풍(上馬風), 일을 다 허고 죽으면 하마풍(下馬風)이라고 헌답디다. 말타다 사고 났나 뭔 상마, 하마가 들어갈까 말도 참 요상허네. 요런 사고는 겨울이나 이른 봄에 많이 발생흔답디다. 계절이 바뀔 때, 인체시계가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려 가지고 가끔씩 사고를 친다요. 재수 없는 놈이 걸리제,

아무나 죽는다요. 그래도 조심허씨요 요즘 봄인디.

그나저나 이쁜 각시 얻을라고 한성부(漢城府)에 대가리 터진 놈 달려들 듯 서둘드만, 지지리 복도 없는 놈, 노적가리 불 지르고 싸래기도 못 주서 묵을 놈.

참,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식 시시하기가 고자 뭣이요. 봄 뭣이야 세 번허면 뒈진다허드만 첫날밤에 한번도 못허고 뒈져분 꼬라지란. 에이 빙신. 쯔쯔.

6. 상말가루지기 전

재혼(再婚)

서방 죽고 가만히 생각허니 색시 신세 처량 허요. 안 그렇겄소.

넘들은 속도 모름시롱 젊은 신랑 불쌍해서 어찌까 허고 말들 허지만 정작 청상과부로 변해버린 이 젊은 각시는 폴짝 뒤집어질 판이요. 애맨 발등만 짱돌로 콱 찍고 싶었을 것이요. 생각해 보시오. 성질나 불제.

서방 죽고 몇 달이 지났을까. 주위에서 젊고 예쁜 색시가 어찌 혼자 살수 있겄는가 험시롱 좋은 혼처 있응께 재혼 하라고 중신이 숱허게 들어 왔답디다.

한달 열흘은 굶고 살아도 서방 없이 못 사는 것이 여자 아닌게라.

골난 김에 서방질한다고 이 여자가 금방 재혼을 해부렀다요.

근디, 이것이 또 뭔일이 당가요. 재혼 한 서방 놈 역시 이 여자와 살 섞고 산지 몇 달도 안돼 명줄을 놔 버렸다요. 재취 서방이 죽고 나자 동네사람들이 모이면 쑥덕이는디, 그 남정네가 평소에도 양기가 다 빠진 놈 맹시롱 비리비리 허면서 피골이 상접허고 꼬라지가 해골 같이 바짝 말라 붙은 것이 오래 살지 못허겄다 그랬답디다. 결국 시름시름 곯다가 가불드라 이말이요.

한 많은 이 색시는 또 다시 울며불며 몇 달을 보냈답디다.

사는 것이 사는 거 겄소. 죽지 못해 사는 거지. 허지만 이미 남정네 살 맛을 본 젊은 여자가 긴긴 밤을 어찌 홀로 견딜 수 있겄소.

그래도 이 색시 서방 복은 있는지 전 남편보다 신수가 더 훤하고 잘 생긴 그것도 숫총각과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됐다요.

이 뭔 이런 일이 있다요. 또 일이 벌어져 부렀소. 뭔 저승살이 끼어도 저리 꼈나 모르것소. 세상 천지에.

세 번째 서방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이승을 하직해 부렀다요. 실은 달리는 차도 아니고 주차장에 서 있는 차에 부딪쳐 죽었답디다.

이놈이 제풀에 넘어지면서 차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지요. 나중에 봉께로 외상은 전혀 없는디 양 허벅지가 바람 든 무시 맹시롱 흐물흐물 해지고 다리가 풀렸드랍디다. 이렇게 세 번째 서방이 죽자 이 색시는 오기가 생겨 부렀소. 하늘이 자기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마저 들었다지요 아매.

그날 이후, 여자의 삶은 180도 바뀌기 시작했답디다.

좋다. 그래 이 세상의 절반은 남잔디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드라고, 세상 남자 다 죽을 때까지 어디 한번 잘 살아 볼란다. 이리 맘을 다져 묵었다요.

재주도 좋지 몇 달 안가서, 어떤 사내 놈과 또 동거를 하드라요.

바람기가 솔솔 풍기는 놈이 었다지라. 하여튼 간에 얼마동안은 잘 살드랍디다.

근디 어느날, 이놈이 친구들과 내기 골프 치러 간다고 가더니 벼락 맞아 죽어 부렀다요. 벼락이 머리에 맞은 것이 아니라 그놈 양다리 다리 사이 어딘가에 맞았다니 원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요. 그랑께 시도 때도 없이 밝힝께 하늘이 천벌을 내린 것 아니것소. 그리 생각이 들구만이라.

7.상말가루지기 전

한강에 배 지나가기

시방 4번째 서방까지 잡아 묵었소. 가만히 생각해 봉께, 이거 원 사내라는 것들이 모두 공짜로 뭣하고 비녀만 빼간 꼴이요. 뭔 팔자로 줄초상을 달고 살아야 한단 말이요. 아무리 청상살이 뻗쳤어도 글지.

이것이 뭔 일이다요. 이 색시가 정말로 하늘이 노랗고 눈앞이 캄캄했것지라.

인자는 어찌 살아야 허나허고 고심허다가 그래 죽자, 죽으면 이 모진 삶 다 끝나겠지 허는 생각에 미친듯이 헤메고 다니기 시작했다요.

그러다가 이 여자가 정신 줄을 놓고 한강가에 퍼질러 앉아 있는디 덩치가 곰만큼이나 큰 건장한 사내가 앞을 가로 막아 서드라요.

돈도 좀 있어 보이고 떡 벌어진 가슴에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검은 털이 듬성듬성한 것이 순간 엄지발가락과 엄지발가락사이가 찌릿 찌릿 했것지요. 안봐도 뻔하제.

남자들이란 다 그런 것 아닙디요, 주머니가 불룩하면 어깨가 쫙 펴지고 평소에 없든 다리 힘도 오르게 되드란 말이요. 이놈 역시 수캐 뭣 자랑 한다고 지갑이 두둑항께 온 세상이 꼬막 속 같이만 보이는 거시요.

술집 작부들이 근답디다. 오늘 밤, 봉이라도 하나 걸려야 헐텐디 허고 말이요. 술집여자들 눈에는 남자들이 돈 쓰는 봉으로 밖에 보지를 않는디 지가 무슨 열녀 만났다고 돈 주고 술 사주고 속마음 다 내줘 놓고 마치 수절과부 덮치기나 한 듯 용쓰는 게 남자 덜 아닙디요.

남자는 아무리 나이 들어도 철없기는 젊으나 늙으나 매일반이다요. 그러는 판에 돈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는디 있는 놈이 뭣을 못허겄소.

사내 놈이 말을 슬쩍 붙잉께 이 색시는 못이긴 듯 구렁이 담 너머 가듯 스리 슬쩍 넘어가요. 이것이 순서 아니것소. 누가 안 가르쳐 줘도 그게 길인걸 다 알제.

그나저나 이 각시 길나 부렀소. 길나 부러. 걸핏하면 서방 잡아 묵드만 사내 잘 만나고 살 섞는 재주도 좋습디다.

한번하나 두 번하나 화냥질은 매일반인데 뭐 그리 다그칠 일도 아니지만 말이어라.

헤픈 계집 속곳 마를 새 없다는 말이 그냥 나왔것소.

그날 밤, 이 각시는 그 사내와 함께 술 한잔 했지요.

그동안 마음고생 심한 차에 한잔 들어가니 심신이 노곤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소. 아니, 일부러 다리 힘 풀린 듯 쓰러져 상대에게 슬쩍 기댔는지도 모르지만 말이요. 이게 다 고도의 심리작전 아니것소. 작전.

하여튼 간에 두사람 분위기가 살았소. 그러면 다음 코스는 물어보나 마나 아니요.

이 남자가 가만히 봉께 지는 지금 봉지도 안 뜯고 애부터 낳으라면 낳을 수도 있는디 웬걸 여자가 순순히 안기는디 이게 웬떡이냐 해부렀소.

그래서 사랑은 첫사랑이 좋고 바람은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는 것이지라.

사실 말이지 자고로 두부 굳은 것과 여자 뻣뻣한 것은 쓸모가 없는 법이랑께라.

8. 상말가루지기 전

포기(抛棄)

이 각씨 심정이 이해가 가요. 서방 죽고 독수공방헌지 몇 달인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것소. 혹시 혼자 살아 본적 없으면 말을 허지 마시오.

근디 가만보자, 이놈의 강가에 무슨 놈의 여관, 모텔은 이리도 많은지. 몇 발짝만 걸으면 출입구를 화분으로 가려놓거나 농수산물시장 방풍막같은 천으로 가려 놓은 여관이 부지기수요.

거기서 뭔 못된 짓을 헐라고 출입구를 저리 은밀히 설계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요. 마침내 도착한 곳은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출입이 뜸한 조용한 모텔이었소.

두 사람은 이런 곳 출입 한번 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다가 한강 뱃길은 이미 뚫렸는데 어쩌겠소. 아예 좌우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지라.

두사람은 급해도 너무 급했소. 마치 10여년 헤어졌다 다시 만난 애인인듯 부둥켜 안고부터 보는 것이요. 그다음 코스야 말 안해도 다 알지라.

비장의 무기인 송곳과 골무가 열을 내는 일만 남았다 이말이요.

그 후 두 사람은 동거가 시작됐답디다..

그렇게 산지 몇 일, 모처럼 깨가 쏟아지는가 싶었는디, 웬걸 어느 날, 경찰들이 후닥닥 들이 닥치더니 사내놈의 양팔에 수갑을 채워 데려가는 것 아니겄소.

원 세상에나, 알고 봤더니 이 번지르르 씻은 배추 줄거리 같은 놈이 수배중이었답디다. 이게 또 무슨 청천 날 벼락같은 소리요.

그나마 그놈도 무슨 연유에선지 붙잡혀 간지 한 달 만에 교도소 안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요.

이 여자 팔자가 왜 이렇게 기구허요. 인자는 매일 밤마다 술이 아니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요.

과부 며느리가 시아버지 밥상 들고 문지방 넘다가 아흔 아홉 번 마음이 변한다는디 별의 별 생각이 하루에도 골백번씩이나 찾아들었을것 아니요.

간난아이는 어미 젖, 어미는 남편 뭣 먹고 산다드만 독수공방 이내신세 생각하면 얼마나 한스러웠것소. 고산초목에 붙은 불은 가랑비라도 끄련마는 이내가슴 타는 불은 소나기도 못 끈다고 했소.

그렇게 서방 잃고 며칠이 지났소. 여자는 세상이 싫어졌소.

그러던 어느 날, 살아갈 낙이 없는 이 여자가 나타난 곳은 강가 조용한 카페였답디다. 그곳에서 술잔을 앞에 놓고 지난날을 생각하니 정말 한심허고 한심한 청춘이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든거요.

근디 그 이야기를 듣고도 딴 생각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나 생각으로 이 여자가 어쩜 억지 청승을 떨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말이요. 건수 하나 올리려고 여기 왔는지 알수 없다 이 말이요.

나도 조용한 카페에서 여자가 혼자 술잔을 앞에 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호기심을 가져 본적이 있어서 허는 말이요.

9. 상말가루지기 전

술꾼

여자는 조용한 카페에서 엄청난 크기의 모래성을 쌓았다 부수고 있었던 것이 분명 했소.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소. 여자가 슬쩍 봉께 외양은 괜찮소.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가 합석하면 어찌겄냐고 묻소. 여자가 섬찟하요. 마치 속내를 들키기라도 한 것 처럼.

그럼 당연히 승낙하는 것이 순서 아니겄소.

무신 말이 오갔는지 몰라도 청춘 남녀가 의기투합하면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 아니요. 거두절미하고 두 사람은 그날이후 같이 살기 시작했다요.

물론 여자 입장에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살 판이요. 달포는 굶고 살아도 임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것이 사람 사는 것 아니것소.

어느 날 일이요. 술에 꼭지가 돌아 들어온 사내놈이 이 색시에게 한잔 더하겠다고 앙탈이요. 허구헌날 술만 찾는 꼴이 미워 없다고 말하자 여인을 뒷발로 한번 걷어차고 부엌 찬장을 뒤지더니 뭔가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요.

그 순간 놈은 몸을 뒤틀면서 뒤집어져 버렸소. 급히 119 구급차를 불러 소방관들이 양쪽에서 끼고 다리를 들어 차에 실어 병원에 갔는디 숨이 넘어가 부렀다요.

빙초산을 소주로 알고 마셔 버린 것이었소.

복 없는 년은 봉놋방에서 잠을 자도 고자 옆에서 자게 된다고 번번히 서방이라고 얻은 것들이 며칠 살면 죽어 나자빠져 저승행이요. 이것이 무신일이다요.

술꾼의 제일 마지막 최고의 경지가 일명 열반주(涅槃酒)라고 한답디다.

글고 술을 마시다 마시다 술에 지쳐 세상을 떠난 사람을 폐주(廢酒)라고 한다요.

꼼생원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불주(不酒)라 허고 술이 무서워 술을 겁내는 것을 외주(畏酒). 술에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면 민주(憫酒), 혼자 마시는 것은 은주(隱酒),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마시면 상주(商酒), 성생활을 위해 마시면 색주(色酒), 잠을 자기위해 마시는 것은 수주(睡酒)이고 밥맛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것을 반주(飯酒)라 한답디다.

그란디 이놈은 아무 쪽에도 해당되지 않은 놈이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것소. 아무리 술은 술술 목구멍에 넘어가는 맛에 마시는 것인디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도 몰랐단 말이요.

이제는 정말 서방이라면 신물이 날판이요. 며칠 살면 송장 치기, 잊을 만하면 장례식장 정말 지겹고 남 보기도 부끄럽게 돼 부렀소.

그래도 죽어 영영 이별하고는 살아도 살아서 생이별은 못산다고 다행히 죽어 이별했으니 그나마 이렇게 사는 거지 자신이 싫어 떠난 남자가 있다면 어찌게 살겄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누운들 잠이 오며 기다린들 임이 오것소.

색시는 이제 온 몸에 봄버들 물오르듯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디 이를 식혀줄 남자가 없다니. 한심허요. 한심해.

10. 상말가루지기 전

사인(死因)

이 각시 몹쓸 병 나부렀소. 밤만 되면 아랫도리가 간지러워 견딜 수 없는 병말이요. 혼자서 다리를 비비 꼬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거리를 배회했답디다. 촌년이 늦바람나면 속곳 밑에 단추를 단다드만 술집과 나이트클럽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답니다.

이렇게 빈번한 야간 행차에 대해 말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가 흉흉스러워 지기 시작했답디다.

상추밭에 똥 싼 개는 보기만하면 늘 저 개 저 개 한다드만 동네 사람들은 이 여자를 힐끗 힐끗 보면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기 시작했다요.

여자가 가만히 생각해봉께 꼬락서니들이 한심허요.

남이 사 뒷간에서 낚시질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여. 내가 사내 만나러 밤이슬 좀 맞고 다님시롱 즈그들한테 해꼬지를 했어, 술값, 여관비가 모자라니 보태 달라고를 했어. 사실 요즘 세상이 처녀 허벅지만 봐도 뭣 봤다고 하는 세상이요.

밤에 돌아다니다 새벽녘에 집에 들어오는 것만 보고도 이 야단인디, 전에 이삼년에 한번씩 남편 초상을 치룬 사실을 알면 까무러질 일이요.

눈 덩이와 갈보는 구를수록 살이 찐다고 헙디다.

어찌됐든 문제는 이 여자와 잠자리를 한 남자들은 며칠 후 어김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저승길을 재촉헌다는 것이 문제요.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실이요. 이 여자에게 살이 씌워도 독종 저승사자 살이 씌웠나 보요.

경찰 조사에서도 국과수 부검에서도 죽은 남자들의 사인을 결국은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하루 밤 같이 지냈다는 것 외에는 여자와 연결시킬 단서가 도무지 없다. 하기사 살 섞었다고 다 죽으면 대한민국 남자들이 씨가 말랐을 것 아니요.

각 병원 영안실에 있는 자빠져 있는 놈들의 부검결과를 보면 모두 오장육부가 백살 늙은이 마냥 쪼글쪼글하고 전신 2백6개 뼈마디 속에서 골이 빠져 나갔으며 온몸의 근력이 모두 극도로 쇠약해져 마치 스펀지 같았다는 것이다.

촌년이 서방질하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그 후로도 이 여인의 엽색행각은 꾸준히 계속된다. 못난 년이 분바르면 서방질 한다지만 이런 미모의 여자가 긴긴밤을 어찌 그냥 혼자 보내겄소. 그래도 참아야 허는디 무우하고 여자는 바람 들면 못쓰는 법인디.

시집가기 2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여반장이라 안허요.

이상허게 한동네에서 죽어 나자빠진 젊은남자들의 수가 십수명에 달하자 난리가 나부렀소. 신문에는 대문짝 만허게 사진이 실리고 매일 밤 9시 뉴스에서 특종으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요.

글고 요 동네에서는 결혼식을 치루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드라요. 남자가 있어야 식을 올리지요. 그나마 있는 남자들이라 해야 대부분 얼굴이 누렇게 뜨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실비실 헌놈 뿐인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남자라 헐 수 있겄소.

11. 상말가루지기 전

대책회의

아 글씨, 나라에서는 남자가 부족해 징께 어쩔 수 없이 동사무소 방위제도까지 폐지해 부렀다요. 글고 인자는 여자들도 군대 가겠다고 나서기 시작했소. 여자들이야 물론 취직도 안되고 시집을 갈라 해도 남자가 부족해부니 어찌겄소.

하여튼 이 여자가 가는 곳엔 항상 이야기가 무성흡디다.

흉은 없다 없다 해도 아흔아홉가지라 안흡디여.

글고, 개한마리가 헛 짖으면 온 동네 개가 다 짖는 법이요. 과부 주전부리는 이웃이 먼저 안다드만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소. 시상에 삼각산에 돌도 많고 암컷 곰 뭣에 털도 많답디다.

정말 아우성입디다. 온 동네는 마을에 귀신이 씌였다고 굿을 하느라 두드려 대는 징소리에 밤잠을 편히 자기도 어려웠다요.

무당집과 점집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고 예약까지 받는 실정이었답디다. 거기에다 인근 교회와 사찰에는 귀신 쫒는 기도가 한창이고 신도들은 잠을 못자 눈이 벌겋게 충혈 돼 있었답디다.

부자가 많이 먹으면 식복 있어 잘산다 허고 없는 놈이 많이 먹으면 많이 먹어 못산다고 안흡디여. 사실 일가친척이나 말께나 하는 형제간이 부근에 살았다면 이 여자의 행실에 대해 이렇게 까지 법석이지는 않았을 것이요.

요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관할 구청과 시청 담당자들이 대책회의를 한다고 부산을 떨었다요.

꼬리 치는 년은 밟히게 마련이라고 자기가 내 두르고 댕기지 않아도 지나다닌 사람들이 지도 모르게 밟는 것이요. 거기다 한입건너 두입가면 말이 종자를 쳐 커지는 것이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요.

밑구멍에 속곳 걸친 것도 죄가 되는지 이 여자를 두고 시장과 경찰서장 그리고 구청관계자들이 시청 회의실에 모여 앉아 서너 시간 동안 얼굴을 붉혀가면서 목소리를 높여 회의를 했다고 헙디다.

“이년을 그대로 뒀다가는 남정네 씨가 마를 것이요 그리되면 결국 우리나라는 여인국으로 변해 나라를 지킬 군인조차도 부족하게 될 것 같소. 시시각각으로 혀를 넬름거리는 개 망종 종자들에게 우리 땅덩어리마저 넘겨줘야만 할 것이요.

글고, 아 새끼도 아닌 것들이 어린양만 부리면 젖줄 줄 알고 뎀비는 바보 철부지들한테 맨날 당하고 살 수 만은 없는 것 아니것소.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이년을 내 쫒아 버립시다”

라고 결론이 났답디다.

인자는 이 여인네 신세가 산밖에 난 범, 물밖에 난 고기 꼴 돼 부렀소.

회의를 마친 경찰서장과 시장, 구청장이 번쩍거리는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이 여인을 찾아가기로 했답디다.

12. 상말가루지기 전

축출(逐出)

여자를 만난 시 대표들은 이사비용과 얼마정도 생활비를 줄테니 제발 멀리 조용한 곳으로 떠나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답디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어찌 생긴 여자인지 보고싶은 마음에 좁은 승용차에 끼어 앉아 간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답디다.

시 대표들의 제안을 듣고 이 여자가 하는 말이

암탉이 오리 알을 낳아도 수탉한테 할 말이 있다고, 아니 헌 이불에 뭣 걸린 것까지 내 탓입니까. 그 인간들을 내가 모두 잡아먹었단 말이요. 나야 하루 밤 같이 보낸 죄 밖에 없소. 제명이 짧아서 먼저 뒈진 것을...

그놈들이 나 때문에 죽었다는 증거가 있소, 아니면 내가 그놈들이 뒈지도록 목을 조르는 것이라도 본 사람이 있소.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면 나를 형무소로 보내면 될 것 아니요.

어디 죽 떠먹은 자리 찾은 사람 있고 한강 배지나간 흔적 본 사람 있느냐 말이요. 처녀 불알에 지렁이 갈비 같은 소리 마시고 법대로 하시오. 법대로.

그리고 이웃집 과부 뭣을 하든 말든 댁들이 무슨 상관이요. 만만한 것이 홍어 뭣이라고 내가 그리 만만하요?”

화냥년이 뭣을 감출까. 독이 오를 대로 올랐소.

수차례 남편죽고 초상 치르느라 혼자서 모진 수모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어느 시러배 아들 놈 하나 곁에 와서 위로 한마디 해준 적이 있었던가.

화가 날대로 난 여자가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눈을 흘기는데 구미호가 따로 없드라요. 그런디 엄청 화를 내도 이 여인의 미모는 남자를 홀리기에 충분했답디다.

시장과 구청장, 서장까지 그들도 남자라고 새 모시 고쟁이에 눈멀고 마음 멀어 가운데 다리가 근질거렸을 것이요.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속물들이요. 내일 죽어도 예쁜 여자만 보면 마음이 동하는 걸 보면 말이요.

근다고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요. 아줌마 머시기 털은 덮어줘도 욕먹는다고 이대로 두면 공직에 있는 모두가 욕을 먹게 될 것이요.

감사원 감사에 지적은 물론이고 직무 유기에 어쩌면 직무상 배임죄까지 뒤집어 쓸 판이요.

이때 구청장이 정색을 하고 이야기허드랍디다.

“ 만약 당신이 이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쫒아내겠소”

허면서 으르렁댔답디다. 돈없고 힘없는 여자헌티 이리 대해도 되는 것인감.

듣고 보니 그래서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개비요. 민주주의는 불의의 다수가 싫어하면 정의의 소수는 법의 그늘아래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는 것 아니요.

돈이 힘인디. 없응께 이리 천대를 받는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인개비요.

13. 상말가루지기 전

조사중단( 調査中斷)

주변에 벌어진 상황을 눈치 챈 여인이 화를 내기 시작했답디다. 마침내 드러난 상놈이 울타리 막고 살겠냐 하는 심정으로 뎀비기 시작허드랍디다.

“그래 좋소. 가지요, 가. 세상살이 정붙이면 고향이지 남편 죽어 초상만 치룬 동네에 무슨 정이 있겠소. 거 인심한번 더럽네. 그래 이 동네만 사람 사오. 남자가 이 동네만 있답디까. 강남 것은 더 좋다고 합디다.”

하면서 여보란 듯이 가방을 챙기기 시작허드랍디다.

짐을 다 챙긴 여자가 벌떡 일어나 방안 거울을 보면서 귀밑에 향수를 살짝 바르고 머리에 검은색 썬 그라스를 올리드라요.

글고, 몇걸음 걷는디 허연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짧은 미니스커트 속에서 엉덩이가 씰룩거리드랍디다. 방안에는 코끝을 스치는 향수냄새가 진동허고요.

늙은 말이 더 콩을 좋아한다드만 머리가 희끗 희끗한 구청장이 그 냄새를 맡느라 코를 벌렁거리드라요. 그걸 본 젊은 서장이 구청장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드랍디다. 누가 보요 하고 말이요. 하기사 열 계집 마다하는 사내 놈 어디 있것소.

글고 말이 말이제 정부관리라고 남자라면 그 짓 안하는 놈 있다요.

화가 머리 꼭대기 까지 뻗친 여자가 뒤를 훌훌 털고 집을 나서 드랍디다.

그 후 이 여자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디다. 원 세상에 좀 알만헝께 이야기가 끝나게 돼 부렀소. 어째 이리 되부렀는지 엄청 속상허요.

어쨌든 내가 조사하고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전붑니다.

미안 헙니다. 마지막까지 알아봐야 허는디, 여러 가지 개인사정상 중간에 그쳐야 겠소. 미안허고 아쉬웅께 괜히 소주생각이 나요. 한잔 마셔야 겠소.

집에 오다가 동네 수퍼에서 소주 두병에 오징어 한 마리 사부렀소.

하루죙일 배도 곯고 쏘댕기다 빈속에 한잔 마시니 졸려 부요. 한숨 자야겠소.

그디 이것이 먼소리다요. 찾아올 사람도 없는디 누가 창문을 두드립디다.

밖을 내다봉께 하늘이 시컴헌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 늙은이가 나를 보자고 서있습디다.

그 영감 허는 말씀이 내가 그리 찾아 다니던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답디다. 나가 조사한 그 다음 이야기를 해주겠답디다. 옳다구나 했지요. 잠이 번쩍 깹디다.

원시상에 구세주가 따로 없지,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인 판에 말이요

지금부터는 그 영감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개도 빼거나 보태지 않고 들은대로 만 이야기 헐랍니다.

억지로 쫓겨나다시피 한 그 여자는 집을 나서자마자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갈 곳을 정하려고 한강 가 미사리 근처 소나무 숲이 있는 한 적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요.

언젠가 전에 한번 와 봤던 곳이기에 지형에 익숙하다.

근처 강가 숲 속에는 젊은 남녀 쌍쌍이 서로 허리를 부여잡고 히히덕 거리고 있다.

이꼴을 보니 괜히 속이 뒤집힌다. 그냥 심퉁이 난다.

14. 상말가루지기 전

선수의 등장

원 세상에 사내놈들 지 명 짧아 죽은 것까지 내 탓이란 말인가.

생각해보니 괘씸하고 또 분하다. 뭣 주고 뺨 맞은 꼴이다. 머리꼭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지경이 됐다.

하지만 못 믿을 건 굶은 구멍이라고 이왕에 버린 몸 홧김에 서방질이나 해볼까 하고 별의 별생각이 다 든다. 죽자니 청춘이요 살자니 고생이다.

그렇게 몇 시간 이제는 배도 고프다. 살며시 졸음이 쏟아진다.

스스르 잠이 든다. 며칠째 사람에게 시달린 몸이니 지칠 만도 하다.

깊이 잠든 여인, 이제는 업어 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참 곤한 잠을 자는데 누가 깨운다. 가만히 실눈을 뜨고 보니 검은 양복에 우락부락하고 건장한 등치, 잘 생긴 남자가 서있다.

깜짝놀라 살며시 고개를 들고 얼굴을 쳐다보니 코가 주먹코다. 듬직하다.

원래 귀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고 했다. 호감이 가는 상이다.

콧김 입김 다 쐰 몸이 무엇을 두려워하랴. 그러나 사내의 엄청난 등치에 이 여인같이 작은 체구가 맞겠나, 쥐 구멍에 말 몽둥이면 어쩌나, 하지만 집과 계집은 작아도 살 수 있으니 별문제는 아니다.

서방질도 하는 년이 잘한다더라. 도둑 때는 벗어도 화냥 때는 못 벗는다고.

어쨌든 남자에 이력이 난 여인이다.

여자가 사내를 좀더 자세히 보니 주먹만한 코가 우뚝하고 떡 벌어진 가슴에 다리통이 우람하다. 거기에 다리 가운데가 불룩한 것이 물건 역시 좋은 것 같다.

밑구멍에 바람 들어 간 년이 어련하겠나.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

이놈 역시 계집 밑구멍깨나 닦은 놈이 분명하구나 하고 속으로 짐작한다. 하도 많이 남자들을 겪어 봤으니 이정도 판단이야 봉사 문고리 잡기다.

‘그래, 그래도 남자는 코크면 뭣도 크다더라’ 여인은 혼자서 싱긋이 웃는다.

사실이지 이놈 역시 구멍만 밝히다가 동네에서 쫓겨 난 놈이었다.

집안 망하려면 뭣 큰놈 태어난다더니 부모에게 물려받은 수십만평 문전옥답을 계집 밑구멍 닦는데 다 날려 버렸다. 동네 과부에 이혼녀는 모두 싹쓸이 했고 심지어 계집 타기를 누운 소 타듯 하는 놈이었다.

열녀문(烈女門)은 있어도 열남문(烈男門)은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이놈에게 무슨 열남문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이놈은 치마만 둘렀으면 미추(美醜)를 가리지 않고 덤벼 들이댔으니 동네 사내들이 가만 둘 리가 없었다.

거기에다 풋보리 밭에 들었던 마소와 남의 계집 방에 들었던 놈은 한번 갔다만 왔어도 늘 말한다고 그 놈의 주둥이가 열렸다 하면 제 자랑이다.

물에 빠진 건 건져도 계집에 빠진 건 못 건진다고 했다.

마을 회의에서는 이놈을 그대로 뒀다가는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일로 이 동네가 십중팔구 전국적인 망신을 사기에 십상이라고 결론을 냈다.

15. 상말가루지기 전

작업시작(作業始作)

당나귀 뭣 떼면 먹을 것이 없다더니 누가 봐도 물건 하나밖에 믿을 것이 없는 놈이 동네 처자를 있는 대로 다 해치운다.

혼줄이 난뒤, 다시는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호로자식 마음 잡아봤자 사흘이다.

그놈의 자식 나올 때 알았으면 짚신으로라도 막아버릴 것을 하고 원망이다.

마을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우리 동네 남자들 모두가 이놈하고 동서지간 될게 안 봐도 뻔한 일이니 멍석말이를 해서라도 내쫒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온 마을에 번져가는 이런 긴박한 항황을 눈치챈 이놈은 결국 그날 밤 야반도주를 한다. 그래서 남자는 대가리 한번 잘못 놀리면 팔자 조지는 법이다.

사내는 세 가지로 망하는 법이다. 첫째가 입이요, 다음이 손, 마지막이 다리사이 방망이다.

이놈은 선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방망이 잘못 놀리다 선친부모 모셔둔 고향에서까지 내 쫒기게 된 꼴이 되어버렸다.

오입쟁이는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말을 그럴싸하게 해서 여자의 호기심을 끌어야 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아 무안을 당하지 않아야 하며 물건이 좋아 여자를 까무러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계집질도 하던 놈이 잘한다는데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춘 이놈이 이런 기막힌 노마크 순간을 놓칠 수 있겠는가.

오입쟁이 얼굴보고하나 라는 말이 있지만 이게 웬 떡이냐.

여자의 얼굴이 양귀비 뺨칠 정도로 예쁘다. 물론 양귀비를 보고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뭉한 이 남자의 머리 속에는 말로 듣던 양귀비가 따로 없다.

이제 슬슬 작업에 들어간다. 꽃 본 나비, 담 아니 넘어갈까.

“ 아가씨, 무신 일로 여그서 그렇게 수심에 잠겨 있소”

남도 말씨에 서울말이 약간 섞여있다.

다른 여자 같으면 못들은 체하고 자리를 옮겨 버리겠지만 노련한 이 여인은 순간 보는 눈에도 그놈 색깨나 흘렸겠구나 하고 상황 파악을 한다.

여인은 속으로 ‘자식 낫으로 불알가리는 짓 꺼리 하고 있네. 임마, 니 속을 모를 줄 알고’ 하면서도 부끄러운 듯 애교 띈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한다.

‘운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진다 했는데 어찌 내게 이런 복이. 저놈 밑에 깔려서 색이나 실컷 한 번 써 봤으면 원이 없겠다’ 라고 생각이 들자 옹녀는 속으로 ‘아자’를 외친다.

그래서 화냥 때는 못 벗는다고 옛글에 나와 있는 것이다.

“이것 저것 속이 상해 바람을 쐬고 있는데 내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

라고 쌀쌀하게 쳐다보며 말하자 남자는

“ 아니 이렇게 고운 여성이 무슨 일로 그리 속이 상해 부렀소. 속상한 것이야 우선 말로 풀어야 항께 나한테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해보시오 ”

16. 상말가루지기 전

궁합(宮合)

오입쟁이는 먼저 붙임성이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말을 잘해야 한다. 만약 핀트가 틀어지더라도 오입쟁이 한 두번 망신이야 그까짓 꺼 대수랴 해야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지 조강지처 제 마누라 안면 몰수하고 오입해대는 것이다.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말을 건다. 이미 작업은 시작 됐으니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 봐야 할 것 아닌가.

칼을 뺏는 데 다시 거둬들인다면 남자가 아니지.

“ 자세히 보니 처녀는 아닌 것 같은 디. 시집은 갔소? 글고 어디 사시오 ?”

그러자 여자는 속으로 ‘죽 떠먹은 흔적 없고 한강 배 지나간 자리 없다 했는데 내가 처녀면 어떻고 과부면 어쩔테냐’ 하는 생각에 눈알 흰자위가 번뜩인다.

하지만 금방 욱 하던 기운을 누르고 말한다.

“ 말 못할 사정으로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소. 옛말에 격강천리(隔江千里)랍디다. 먼저 살던 곳이 강북이고 여기는 강남, 그 가운데 한강이 있으니 천리 길을 떠나온 것이 나 다름 없지요.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멀리 멀리 가려고 하는 중입니다.”

“아니, 그럼 혼자란 말이요 ?”

“그럼요, 내게는 일가 친척 아무도 남아있는 사람이 없어요”

사내는 옳다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사내가 다시 정색을 하고 말한다.

“이렇게 예쁜 처자가 혼자 계시면 사내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텐디...”

여자가 다소곳이 말한다.

“사실 내 팔자가 너무 험해 어려서 부모 잃고 떠돌다가 안 해 본 일이 없이 살았소. 후에 신랑 만나 결혼 했으나 며칠 살면 어김없이 뭣이 그리 급한지 저승길로 가버립디다. 오기로 다른 놈은 오래 살겠지 하고 재혼 몇 번 했지만 그놈 역시 제 갈길 가기에 바쁩디다. 이제는 자식없이 남편 잃고 혼자 몸으로 그나마 나를 따르는 것은 내 그림자가 전붑니다”

“ 아 그렇소. 정말 안됐구먼. 당신은 과부고 나도 총각이니 뜻을 맞춰 같이 살면 어찌겠소”

여자라면 무조건 회로 먹으려 드는 놈이다. 이건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어도 한말은 먹겠다. 아니 그보다 먼저 속궁합이나 맞춰보자는 속셈이 뻔하지만.

달걀에서 모난데 찾고 화냥년한데 순결 찾으랴. 여인은 남자의 말에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서방질도 해본 년이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서방 죽는데 신물 난 사람이오. 이제부터는 다시 신랑을 얻으려면 궁합을 먼저 봐야겠오. ”

“ 옳은 말이오. 하지만 동성동본(同姓同本)은 결혼이 곤란헝께 알아 볼 것은 봐야 하지라. 더군다나 남녀가 함께 살라면 속궁합이 젤로 중요하지요. 둥근 구멍에 모진 자루 맞을 리 없고 짝도 맞춰봐야 팔자를 알지라. 근디 댁의 성씨가 뭣이다요”

17. 상말가루지기 전

선무당(선巫堂)

여자가 조용하게 대답한다.

“ 옹(雍)가 성을 씁니다”

“그래요, 나는 변(卞)간디. 이름은 강쇠고. 어렸을 때 일 하기 싫어 떠돌다가 공짜 밥 얻어 먹을라고 절에서 좀 산 적이 있지요. 그래서 사주, 궁합을 좀 봅니다, 무슨 생이요. 태어난 띠 말이요”

“ 나는 갑자생(甲子生)이요”

“ 아니 젊은 처자가 갑자생도 알고. 혹시 한문공부 좀 했소”

“ 아니오. 나도 어렸을 때 점집수발 들다보니 조금 깨치게 된 것이지요”

“ 잘 됐소. 나는 서당 물은 못 묵었지만 절간 스님 네 염불 외는 거 귀동냥으로 듣다 봉께 한문 몇 줄은 읽을 수 있소. 어디한번 풀어 봅시다.”

“ 좋아요”

“ 그렁께, 나는 임술생(壬戌生), 당신은 갑자생, 이걸 오행으로 풀면 갑자의 갑은 양목(陽木)이요, 임술의 임은 양수(陽水)니까 수생목(水生木)이요. 좋다. 좋아.

다시 말하면 물이 나무를 키운다는 것이지요. 육십갑자를 다시 오행으로 분류하면 임술계해 대해수(壬戌癸亥 大海水)라, 갑자을축 해중금(甲子乙丑 海中金)이니, 금생수(金生水)가 더 좋구만, 아주 천생배필(天生配匹)이다.

오늘이 마침 기유일(己酉日), 음양부장(陰陽不將)이라, 음양의 기운이 가장 센 날잉께 시집 장가 치루기 딱 좋다. 지금 당장 해치워 버립시다. 그리고 고기는 씹는 맛이요 여자는 품을 맛이라고 하는디 우리 당장 이 자리에서 속궁합을 맞춰봅시다. 어떻겠소”

정붙여 살던 곳에서 쫒겨나서 한 많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고 걱정하던 차에 이게 웬 떡이냐. 여인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산돌과 여자는 굴러 다니다가도 걸리는 데가 있고 맷돌도 짝이 있는 법이다.

여인이 강쇠 놈 말을 듣고 조용히 생김새를 뜯어보니 생긴 것과는 달리 아는 것도 좀 있는 것 같고 말하는 모양새가 귀엽다.

갈 곳도 없고 앞으로 살 방도도 막막한데 어디 못이기는 척 따라가 볼까 하고 마음을 열어본다.

봄 뭣은 도랑만 건너도 쪽 한다는데 여인 역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가을 밤송이는 슬그머니 벌어지고 있었다.

뜻만 맞으면 부처도 암군다고, 과부 홀아비 만나는데 예절 찾고 사주볼까.

두 사람은 즉시 한강 가 갈대밭으로 손을 잡고 들어간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옴폭하게 패인 낙엽 구덩이 속에는 노루가 앉았다 갔는지 갈대들이 누워 있다.

북데기 속에서 떼 갈보 나는 법이다. 주변 환경과 적당히 가려진 갈대 덤불이 그 짓 하기에 안성마춤이다.

18. 상말가루지기 전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움직임이여

때는 가을이다. 봄 뭣은 쇠 젓가락 녹이고 가을 거시기는 쇠판을 뚫는다 했는데 혼자 산지 오래 된 이들이 어련하겠는가.

사흘 굶은 범이 원님을 안 다더냐? 오입쟁이 낮거리 안하는 놈 있을라구. 거기에다 상대는 천하의 잡놈 강쇠와 옹녀 아니던가.

만약 세익스피어의 헴릿이 이 꼴을 봤다면 이렇게 읊조릴지도 모를 판이다.

“정숙한 여자는 욕정이 설령 천사를 가장하고 와서 유혹해도 동하지 않지만 음탕한 여자는 빛나는 천사와 짝을 지어도 천상의 잠자리에 싫증을 내고 쓰레기통에서 썩은 고기를 뒤진다. 이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움직임.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인가?”

두 사람이 일을 치루는 데 여간 요란 하지 않다.

두 사람 다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이제껏 조용하던 강가에는 요상한 괴성과 신음이 퍼져나간다. 아픔을 견디는 듯 간지럼을 이겨보려는 듯, 이를 악물고 끙끙대는 소리에 숨 넘어 가는 듯 하다.

주변 풀숲속의 놀란 새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개구리들이 강으로 뛰어든다. 한강에는 놀란 물고기들이 머리를 쭈삣 쭈삣 한다.

서로가 서로를 탐하면서 사랑을 나눈다. 하늘이 점지한 색녀 옹녀와 잡놈 중에 상 잡놈 강쇠인데 어찌 조용히 일을 치루겠는가.

개 입에서 개소리 나오고 소 입에서 쇠소리 나오게 마련이다. 강쇠가 여인의 양다리를 잡고 들여다보면서 말한다.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하게도 생겼네. 늙은 중의 입이던가 이빨 없는 입주위에 무성한 털 좀 보소. 소나기를 맞았는가 고랑깊이 패였구나. 지나가던 길가에 콩밭, 팥밭 있었던가, 돔부 꽃은 어인일. 물 많은 옥답인가 물이 항상 고여 있네. 무슨 말을 하려고 움질움질 하고 있나.

태백산맥 줄기 따라 주먹바위 신통하네. 만경창파 지친조개 혀를 삐춤 빼었구나. 임실 곶감을 훔쳤나 곶감 씨가 장물일세. 첩첩산중 으름인지 절로절로 벌어졌다.

명당자리 파헤쳤나 더운 김이 모락모락. 뭣이 그리 즐거운지 입이 반쯤 벌어졌다. 곶감, 으름, 조개, 연계 한곳에 다 모였네, 아이고 우리 집 제사상 이제는 걱정없네”

서당개 3년이면 천자문을 왼다더니, 절간 생활 몇 개월에 강쇠가 제법이다.

어느 병원에 젊고 건강한 청년이 찾아 왔다.

의사가 " 어떻게 오셨나요 ? " 하고 묻자

청년이 말한다 " 비키니 입은 아가씨나 매력적인 여성을 볼 때마다 발가락 사이가 부풀어 오르고 근질거리거든요 "

" 어느 발가락 사이에 그런 증상이 있습니까 ? "

" 엄지발가락과 엄지발가락 사이요 “

강쇠의 엄지발가락과 엄지발가락 사이가 다시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19. 상말가루지기 전

옹녀의 화답

옛날 이야기 하나 하고 넘어가자.

한집은 아래 문이 둘 있는데 앞뒤 양 대문이다. 하지만 다른 집은 아랫 문 하나에 문지기 말뚝 하나, 헌데 그 말뚝에는 쐐기 주머니 두 개가 붙어 있다.

문지기가 없는 문과 골키퍼가 있는 문, 그래서 전자는 헤프고 후자는 불뚝 불뚝 하다던가.

그 때문에 생긴 이야기가 있다.

어둔 밤이 지나 아침이 오자 뒷문이 앞문에게 물었다.

“ 앞문 아씨, 앞문 아씨, 간밤에 그게 무슨 일이요. 배낭을 둘씩이나 맨 스님께서 새벽까지 드나 들더니 몸은 좀 괜찮으세요”

“ 아유, 불날 것 같았지 뭐요”

“ 뭐라구요. 불은 커녕 하수도 물에 내 문 앞이 홍수 졌으니 그게 무슨 꼴이 유”

뒷문이 물에 빠진 쥐새끼 꼴이 돼 핀잔을 늘어 놓는다. 그러자 앞문이 낯을 붉히며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 뒷문 각씨, 그것도 몰랐수? 간밤이 죽은 영감 제사 날 아니우. 스님을 모셔다가 불공 드렸다우. 밤새도록. 아우 졸려”

하더란다.

강쇠의 사설을 듣고 있던 옹녀가 이번에는 강쇠의 물건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

“ 이상하게 생겼네. 맹랑하게 생겼네. 전투경찰 호신봉인가 묵직한 저 방망이, 수방사 헌병인가 철모는 왜 썼노. 개울가 물방안가 끄덕끄덕 떨 구덩. 송아지 말뚝인가 털 고삐를 둘렀구나.

감기기운 있었는가. 맑은 콧물 주루룩. 성질머리 고약하다, 화를 내니 눈물 흘려, 제사상 오른 숭어던가 꼬챙이 구멍 아직 있다. 뒷 절 큰방 노승인가 민대가리 궁 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꾸벅 꾸벅 절도 하네.

고추 찢던 절구댄지 검붉기는 무슨 일.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 한데 붙었구나. 절굿 대, 쇠고삐, 다름질 방망이. 물바가지 세간살이 걱정 없네”

옹녀 화답 역시 제법이다. 하기사 뭇 서방 잡아먹은 년이 못할 소리 있겠는가.

밥 먹고 거시기만 키웠나. 강쇠의 물건 엄청나다. 마구간에 가서 내놓고 있으면 당나귀가 형님 하겠다. 복 있는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서 넘어진다더니 옹녀 역시 서방복은 있나 보다.

이제는 옹녀를 가르쳐야겠다. 남자의 물건에 대해서 말이다.

여자 몸으로는 그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잘 모를 것 같아 노파심에 한수 가르쳐 줘야겠다.

남자의 물건이란 놈은 엄청 예민해 자극을 강렬하게 느낀다. 반면에 여자의 머시기는 매우 둔감해도 일단 일을 벌리면 크든 작든 감각은 동일하단다.

두 물건이 정말 묘하기는 묘한 것인 모양이다.

20. 상말가루지기 전

당나귀의 미소

백인들은 동양인 보다 길지만 덜 단단하고 흑인들은 백인에 비해 길이는 약간 짧아도 몸통이 전체적으로 크다고 한다.

키는 작아도 머리가 큰 쪽은 남미(南美)사람 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카리브 해 연안 원주민들이 실제로 크고 정력도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 녀 성기는 사람마다 얼굴 모양이 각각이고 성질도 다르듯이 모두 외형과 크기가 달라. 뚱뚱하고 이기적이며 겁이 많은 남자들은 보편적으로 작고 근육질 남자 또는 보통 체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담력이 있고 활달한 사람들은 비교적 크다.

먹는 것을 밝히고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이 걸어 다니고 운동을 많이 하며 적게 먹는 사람보다 비교적 작다.

그 보다 사실 남성 생식기는 여성보다 발생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우월하므로 그 구조와 생리가 훨씬 복잡하다.

한가지 더 가르쳐 주자면 남자의 물건은 10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 온(溫)이요 이 양(陽), 삼 두대(頭大), 사 넓적이, 오 꼬부랑, 육 장대, 칠 우멍거지, 팔 물렁이 구 당문파(當問破), 십 시들이다.

뭔 소리냐고, 그럼 해석을 해보겠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장 쾌감을 주는 것은 첫째 여자에게 따뜻한 감을 주는 것이고 둘째 양기가 좋아 오래 하는 것이며 셋째 귀두가 커서 마찰의 쾌감이 큰 경우이다. 넷째는 넓적해서 뿌듯한 감을 주는 것이고 다섯째는 약간 꾸부정해 슬근거리는 쾌감을 주는 것이다. 여섯째는 길고 커서 상대에게 포만감을 주는 경우이고 일곱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경우다.

일곱 번째 우멍거지는 마찰의 쾌감을 못 느끼고 여덟 번째 물렁이는 발기가 잘 안되는 것이며 아홉 번째 당문파는 문 앞에 당도하자마자 죽어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열 번째는 아예 이것도 못하는 시들시들 불구라는 뜻이다.

어쨌든 머시기는 봄 것이요 거시기는 가을 거시기가 최고다. 그러는 판에 마침 시절이 가을이니 강쇠가 힘을 쓸 수밖에.

옛날 어느 나라에 당나귀를 매우 사랑하는 임금이 살았다.

하루는 임금이 당나귀를 보러 갔는데 심각하게 슬픈 모습이다. 임금이 달래고 얼러도 울 것만 같다. 그래서 임금이 방을 붙였다.

‘ 내 당나귀를 웃게 하는 사람에게는 금화 200개를 주겠다“

많은 사람이 왔다 갔으나 당나귀는 여전히 슬퍼한다. 그런 어느 날 동네 한 머슴이 와서 자기가 해보겠단다. 이 사람이 당나귀를 몇분 동안 만나고 나오자 당나귀는 킬킬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당연히 금화 200개는 이 머슴의 것이 됐다.

그런 후 얼마가 지났다. 임금이 보니 당나귀가 매일 히죽 히죽 웃는다. 이것도 병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방을 붙이는데

‘ 내 당나귀의 웃음을 멈추게 하는 사람에게는 금화 200개를 주겠다’

21. 상말가루지기 전

당나귀의 눈물

당나귀가 이제는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나 허탕이다. 결국 그 머슴이 다시 왔다. 머슴이 당나귀를 몇 분 동안 만나고 나오자 당나귀가 이젠 울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머슴은 금화 200개를 받게 된다.

머슴만 오면 당나귀의 태도가 변하는 걸 본 임금이 이상해 묻는다.

“ 어떻게 한 것이냐? ”

머슴이 대답한다.

“ 지난번에는 당나귀 귀에다 대고 ‘내 것이 네 것보다 더 커’ 라고 말해줬고 이번에는 실제로 보여줬지요”

사실인 즉슨 머슴이 당나귀에게 자기 것이 더 크다고 말하자 당나귀가 속으로 ‘웃기고 있네’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귀가 ‘실없는 놈’ 하고 웃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머슴이 자기 물건을 실제로 꺼내 보여주니까 정말 당나귀 것보다 더 컸다는 것이다. 실망한 당나귀가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강쇠 놈이 크게 웃으며

“ 그래 제법이네. 비겼소. 이번에는 우리 둘이 등에 번갈아 업고 사랑가로 한번 놀아 볼까” 하자, 여인이 하는 말이

“ 하늘이 땅보다 먼저 생겼으니 하늘인 당신이 먼저 나를 업으시오”

하고는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풍월을 교묘하게 읊어 댄다.

“ 사랑, 사랑 내 사랑이여. 유왕(幽王)이 있으니 포사가 생겨났고 걸왕(桀王)이 등극하니 말희(沫喜)가 나타났네. 주왕(紂王)이 일어서자 달기(達己)가 엿보이고 오나라 부차(夫差)가 왕이 되니 서시가 곁에 있네. 명 황제는 귀비(貴妃)가 함께 하고 여포(呂布)가 나타나니 초선(貂蟬)이 게 있구나. 그래 오늘 색 밝히는 강쇠 내가 있어 절세가인 옹녀 널 만났구나. ”

강쇠의 노래는 끝날줄 모른다.

“무엇을 가지려느냐, 조거전후십이승야광주(早居前後十二乘夜光珠)를 가지려느냐, 십오성(十五城) 바꾸려던 화씨벽(和氏壁)을 가지려느냐. 천지신지 자지아지(天知神知 我知子知) 순금덩이 가져볼까. 부도재산(浮道財産) 득은옹(得銀甕) 은항아리 가져볼까. 배금문 입자달(排禁門 入紫闥)의 상평통보 가져 볼까. 밀화불수(密花佛手), 산호비녀, 금가락지 가져볼까, 네 무엇을 먹고 싶어. 둥글둥글 수박덩이 웃 꼭지만 떼버리고 강릉 백청(白淸) 따르르 부어 붉은 곳만 듬뿍 떠서 조금 만 먹으려나, 시금털털 개살구, 애 서는데 먹으려나,

쪽 빨고 탁 뱉으면 껍질 꼭지 건너편 바람벽에 축척 축 부딪치는 홍시 감 먹으려나, 어주축수애산춘(魚舟逐水愛山春 고기배가 물을 따라가면서 봄 산을 즐기다) 무릉도화(武陵桃花 무릉도원의 복숭화꽃) 복숭아 주랴.

이월 중순 이 귀한 과일 외가지 당참외를 먹으려나”

22. 상말가루지기 전

불감청(不堪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제법이다. 강쇠 놈이 아랫도리 힘만 센 줄 알았더니 그래도 글줄께나 들었나 보다.

헌데 글줄 짧은 우리는 도대체 뭔 소린지 알 수가 없다. 그럼 한번 해석해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여 이 말은 쉽게 알 수 있다. 예쁜 여자를 알몸으로 안고 뒹구는데 이정도 말이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올 말이다.

유왕(幽王)이 있으니 포사가 생겨났고 걸왕(桀王)이 등극하니 말희(沫喜)가 나타났네. 주왕(紂王)이 일어서자 달기(達己)가 엿보이고 오나라 부차(夫差)가 왕이 되니 서시가 곁에 있네. 명나라 황제는 귀비(貴妃)가 함께 하고, 여포가 나타나니 초선(貂蟬)이 선을 뵌다 라는 말은 중국 주나라 이십대 왕인 주왕은 포사라는 미인을 사랑했고 중국 하나라의 걸 왕은 말희라는 여자에 빠져 국사를 소홀히 했으며 은나라 마지막 왕 주는 주색을 일삼고 포악한 정치로 민심을 잃어 주나라 무왕에게 망했는데 이때도 달기라는 미인의 품속에서 음란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당나라 현종은 시호를 명황이라 했는데 총애하는 왕비인 양귀비에게 빠져 국사를 소홀이 하다가 안록산이 난이 일어나 살해됐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여포는 용맹한 사람이지만 여러 번 변절하다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이놈이 초선이라는 미인을 보고 남편 동탁을 죽인 후 빼앗아 처로 삼은 못된 놈이라는 것이다.

‘여자를 밝히는 내가 나타나니 예쁜 너를 오늘 만났구나.’

잘 논다. 제눈에 안경이라고 속궁합 딱 맞는 양귀비 같은 옹녀가 홀연히 나타났으니 불감청(不堪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목마른 사슴이 개울을 만났으니 이제는 배터지게 물을 마실 때가 된 것이다.

강쇠 놈. 빈털터리 주머니에 살 방망이 하나, 공 두개 있는 놈이 뭐 재벌 손자라도 된 듯이 나불거리고 있다. 정신없이 홀리는 강쇠의 말에 홀딱 넘어간 여인은 땅으로 내려놓자 정신을 못 차리고 그저 헤벌레한다. 이제는 강쇠 차례다.

“ 여필종부라고 하니 자네도 나를 좀 업어주소”

이젠 제법이다. 아예 지마누라 된 듯한 말투다. 그래도 옹녀는 나쁘지 않다. 안 먹어도 배부르고 주지 않아도 가슴 뿌듯 가득 가진 것만 같다.

이제는 옹녀 차례다. 덩치 큰 강쇠 놈을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노니는데

“사랑 사랑 사랑이야.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해하(海河)같이 깊은 사랑. 남창(南倉) 북창(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직녀(銀河織女) 직금(織錦)같이 올올이 맺힌 사랑. 모란화 송이같이 펑 퍼져버린 사랑. 세곡선(稅穀船) 닻줄같이 타래타래 꼬인 사랑. 내가 만일 없었으면 풍류남자(風流男子) 우리 낭군 황(凰) 없는 봉(鳳)이 되고, 임을 만일 못 봤으면 군자호구(君子好逑) 이 내 신세 원(鴛 수컷) 잃은 앙(鴦 암컷)이로다. 기러기가 물을 보고, 꽃이 나비를 만났으니 웅비종자요림간(雄飛從雌繞林間) 좋을씨고 좋을씨고. 동방화촉(洞房華燭) 무엇하게, 백일향락(白日享樂) 더욱 좋다. 황금옥(黃金屋) 내사 싫어. 이 자리가 신방(新房)일세”

23. 상말가루지기 전

사랑가

놀고 있네. 지가 무슨 열녀 춘향이라고, 그럼 이도령과 춘향이 노래로 이들의 사랑가를 한번 확인해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 둥둥 내 사랑이야.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 물어다 놓고 이빨 담쑥 다 빠져 먹지도 못하고 으르릉 아앙 넘노는 듯,

단산봉황(丹山鳳凰) 죽실(竹實 대나무 열매) 물고 오동(梧桐)속에 넘노는 듯 구곡청학(九曲靑鶴) 난초 물고 송백(松柏)간에 넘노는 듯, 북해 흑룡 여의주 물고 채운 간에 넘노는 듯 내 사랑 내 알뜰 내 간간이야 오호 둥둥 니가 내 사랑이지,

목난무변수여천(木欄無邊水如天)의 창해같이 깊은 사랑 사모친 정 달 밝은 데 무산천봉(巫山天峯) 완월(玩月) 사랑 생전 사랑이 이렇거니 사후기약이 없을소냐.

너 죽어 꽃이 되어 벽도홍삼춘화 되고 나 죽어 범나비 되어 춘삼월 호시절 네 꽃송이를 내가 담쑥 안고 너울너울 춤추거든 니가 나인 줄만 알려무나“

“화로(花老)하면 접불래(蝶不來)라, 꽃이 지면 새, 나비도 안 오는 법 꽃 되기는 내사 싫소”

“그렇다면 죽어 될 것 또 여기 있다. 너는 죽어 종로인경, 나도 죽어 인경망치 되어 밤이면 이십팔수, 낮이면 삼십삼천, 그저 댕 치거들랑 니가 나인 줄 알려무나”

“그런 인경 되기도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서 될 거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어 땅지, 따곤, 그느름, 안해 처, 계집 녀자 글자 되고, 나도 죽어 글자가 돼 하늘 천 하늘 건 날일 별양 지아비 부 사내 남 아들 자 글자 되어 계집녀 변에 같이 붙어 좋을 호(好)자로만 놀아 보자.’

강쇠의 노래가 구성지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 이 이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아. 네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 봉지 떼버리고 강릉(江陵) 백청(白淸)을 따르르르 부어 씨 일랑 발라내고 붉은 곳 듬뿍 떠서 반간진수(半間眞水)로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당 동지 지루지하니 외가지 단 참외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아마도 내 사랑이야. 포도를 주랴, 앵두를 주랴, 귤병사탕 외화당을 주랴? 아마도 내 사랑.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데 먹으려느냐. 저리 가거라, 뒷 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빵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마도 내 사랑아”

이게 춘향가의 일부분이다. 어찌보니 강쇠와 옹녀가 읊은 것도 제법이다.

한참 뜸을 들였으니 두 사람의 본격적인 거사가 시작된다.

아무리 사람없는 한적한 숲 속이라고 해도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꼬락서니란 말인가.

24. 상말가루지기 전

동거(同居)를 시작하다.

못 믿을 건 년놈들의 굶은 뭣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이 두 년놈들이 백주 대낮에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노는데 귀신은 뭐하는지,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그렇지, 벌건 대낮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두 년 놈이 세상 좁다고 나뒹굴고 있는데 말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 번에 그칠 위인 들이 아니다.

디딜방아에 겉보리 찧듯 붙었다 떨어지기를 재탕에 삼탕이다.

죽는 년이 머시기 가리랴. 이제는 눈 맞고 배 맞았으니 체면 치례는 강 건너 시아비 거시기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당당히 부부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것 한번 잘하면 사흘은 웃고 지낸다 하더니 아랫도리가 뻐근한 것이 그저 괜히 흐뭇하다.

하지만 봄날 그 짓은 세 번하면 네발로 긴다고 했다. 아무리 젊고 색에 왕성한 강쇠와 옹녀도 한나절이 지나자 이제는 피곤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머리가 뱅뱅돈다.

한바탕 폭풍우가 두 사람을 스쳐가고 좀 진정이 되자 그래도 사람인지라 앞으로 살길을 걱정한다. 강쇠가 말한다.

“아무리해도 우리 같은 난봉꾼들이 변두리에 쳐 박혀 살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도 번화가에 있어야 뭐라도 해먹고 살지. 먹고 사는 것은 그래도 사람 많은 곳이 좋네”

“맞소,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털고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버스를 타고 가락동 수산시장 횟집에 가서 샛서방고기라는 군평선이 구이에 감성돔 회, 우럭 매운탕에 소주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잠실운동장 옆 석촌호수 가를 서성이다 보니 저녁이다.

하는 수없이 오늘은 여관에서 자고 내일 사글세 방이라도 얻어보자고 뜻을 맞춘다.

뒷날 부동산 업소 수십 곳을 헤매다가 간신히 작은 옥탑방 한 칸을 얻는다.

그러나 셋집 방값이 어찌나 비싼지 시장이 준 돈이 거의 다 들어갔다. 이제는 완전히 개털이다. 하지만 물 좋은 곳에 살아야 한건이라도 건수를 올리지 하는 생각에 뜻을 맞추고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 후에도 강쇠와 옹녀는 단둘이 있을 때는 밥을 할 때 건, 빨래를 할 때건 앞에서 덮치고 뒤에서 안고 하는 일이라곤 온통 그 일뿐이다. 얼마나 자주 밝히는지 강쇠의 행동이 아이 낳는데 뭐하자고 덤비는 꼴이다. 도동 갈래난 수캐마냥 거시기 키우는 것 밖에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젠 서울 도심 생활이다. 희망이 부푼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에 맞닥친다. 옹녀는 지금까지 제 딴에는 젊고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술집에 취직하려고 해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가는 곳마다 문전 박대다. 이 동네에서는 술집 작부나이 이십이면 환갑이란다.

25. 상말가루지기 전

서울생활

화류계에서는 여자나이 20살이 넘으면 중계, 25세가 넘으면 노계란다. 삼십이면 눈먼 새도 안돌아본다고 한다.

먹고는 살아야겠고 하는 수 없이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서 안주도 축내보고 가정부에 다방종업원도 해본다. 그래도 얼굴하나 반반하니 속없이 따르는 놈들이 많다.

줄 듯 말 듯 하면서 애간장을 태우면 속없는 놈들의 주머니는 석류껍질 터지듯 터져 그 속에서 돈이 나온다. 그래서 약간의 돈도 모았다.

어떤 때는 돈 많은 나이든 영감이 추근대자 눈먼짓 한번해주고 돈 냥이나 뜯기도 했다. 어떤 날은 돈 몇푼 벌자고 보리밭에 갔다가 안동포 단속곳에 물 개똥 칠 만 당한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은 물 보리 한말 값에 몸만 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놈한테나 응해주는 옹녀는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 물장수 십년에 엉덩이짓만 남았다고 천성적으로 타고난 끼에 경험까지 노련해지니 기술은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

그럼 강쇠 놈은 뭘 하고 있을까.

옛 말에 내리막 길 토끼는 제 살려고 아저씨 아저씨하면서 애원하다가도 도망가기 편한 오르막에서는 내 거시기나 빨아라 한다고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네온사인 번쩍거리는 거리에는 쭉쭉 빵빵 팔등신 미인들이 가득하고 돌아보면 울긋불긋, 세상에 예쁜 여자들은 다 이곳에 모인 것 같다. 이곳이 천국이 아니고 뭣이랴. 조금 살만 해지니 강쇠 놈 하는 꼬락서니 좀 봐라.

사슴이 오래 산다고 기린 되겠냐마는 옹녀가 잠 안자고 재주부려 한푼 두푼 모아둔 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빈둥거리며 낮잠만 자던 강쇠 놈 두 눈에 빛이 나면서 정확하게 돈 냄새를 맡고 무조건 털어간다.

안주면 주먹질이요 뒤로 감추면 발길질이다. 물건 만 차고 있다고 남자인가. 눈치 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달란다.

그놈 코가 돈 냄새 맡는 개 코로 길들여졌나. 아니면 군대서 지뢰 찾는 탐지기 병이었나. 쇠 가루라 하면 어김이 없다. 그냥 알아차리고 뺏아가기 일쑤다.

또 술은 얼마나 좋아 하던지 밥은 굶어도 술은 굶고 못사는 놈이다.

원래 한잔 술은 청탁불문(淸濁不問)이고 두잔 술은 노소불문(老少不問), 석잔 술은 생사불문(生死不問) 이다.

술 좋아 하는 놈 치고 한잔 정도야 소주 막걸리 구분하랴. 거기에다 두 어잔 들어가면 세상이 돈 짝만 해져 형님 동생 안중에 없고 조금 더 취하면 죽기 아니면 살기다. 거기에다 무슨 지가 갑부라고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맛이 난다나 뭐. 항상 끼고 사는 게 계집이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돈냥이나 수중에 들어오면 성인 오락실 출입은 보통이요, 인터넷 오락실은 제집이나 다름없다. 노름이라면 이마에 신짝을 붙이고 허리띠도 매지 않은 채 게거품을 물고 나선다.

26. 상말가루지기 전

본성(本性)

강쇠 이놈, 마누라가 노래방 도우미로 출입하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래도 못하는 놈이 혼자 노래방을 찾는지 몰라, 노래 한곡 하더라도 노래방 도우미는 죽어도 찾는다. 거기에서 뭔 짓을 하는지 원.

개새끼 거시기는 핥아 조진다더니 그 못된 버릇 언제한번 된 통 걸려야 속을 차릴 판이다. 애 버릇, 남자 거시기 버릇은 길들이기 나름인데 처음부터 그길로 다듬어진 이놈이야 이제와서 제 버릇 개 줄라고.

동네 이발소에 아가씨가 새로 온 걸 알면 어제한 이발도 한달됐다고 우기고 찾아간다. 컴컴한 이발소 의자에 대자로 누워 면도하는 아가씨 엉덩이 만지기 일쑤요, 실없는 농담 따먹기가 일과다.

또 남성 휴게텔의 음침한 구석골방은 언제나 제 차지다.

밤에 봐서 안 예쁜 년 없고 멀리서 봐 곱지 않은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더군다나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보면 절구통에 치마만 둘러도 양귀비다.

미운 년이 혀 내민다고 강쇠 놈은 가운데 다리 힘 기르는데 좋다면 문둥이 좆 빼먹듯 개자지에 소불알, 삐쩍 마른 참새 대가리에 누에 가루, 민속촌 초가집 굼벵이에 모기 눈알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그렇게 힘 길렀다 죽으면 뭐 할라고 그러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물에 빠진 건 건져도 계집에 빠진 놈은 못 건진다고 했다.

오입 맛은 첫째가 남의 마누라 둘째가 첩년, 셋째가 기생이고 꼴찌가 제마누라라고 했다.

옛날 조선시대에 제법 땅마지기나 가진 부자가 살았다. 돈이 있으니 여자 종도 두엇 거느렸다. 헌데 이 주인의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여종을 손대기 좋아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본처 옆에 가는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사실을 알아챈 본처가 여종으로 위장하고 여종의 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누워 있는데 남편이 들어 왔다.

한참 무르익어 가는 차에 안해도 될 말을 한다.

“ 여펜네라고 도무지 썩은 조개 젓 같아서, 원”

그러고는 엽전 꾸러미를 놓고 슬그머니 나간다. 다음날 아침, 본처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데 목에 엽전 꾸러미를 목걸이마냥 걸고 있는 것 아닌가.

영문을 모르는 남편이 물었다.

“ 부인, 목에 웬 엽전 꾸러미요?”

부인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 예, 사실은 어제밤 제가 썩은 조개 젓을 팔고 돈을 받았답니다.”

원래 예쁜 계집 석달 가는 일 없지만 미운계집은 석 달이 지나야 정 붙는다.

몇 달 살붙이고 살았다고 어느새 옹녀보다 다른데 눈이 돌아가는 강쇠다.

옹녀는 자가용이니까 언제든지 탈수 있다 이건가. 헐어도 남의 것이 좋다는 건가.

27. 상말 가루지기전

작심(作心)하다

절구통에 치마만 둘러도 여자로 보이는 것이 강쇠 놈인데 군것질이 맛이야 더 기똥찬 법이다. 하룻밤에 소금 석 섬을 먹어도 짜다 소리 않는 것이 그 짓이다 안그런가. 그러다가도 팔십리 강짜 부린다고 어떤 놈이 옹녀에게 추근거리기만 하면 뭔 질투가 그리 심하던지. 무조건 잡아다 패고 넘겨 뜨려 발길질이다. 여자야 강짜 빼면 서근도 안된다지만 뭣 달린 강쇠 놈 까지도 강짜다.

벙어리 두 몫 떠들어 댄다더니만 용골때질(심술을 피워서 남의 부아를 돋워 싸움판을 벌리는 일)은 강쇠 전문 업종이다.

허구헌 날 싸움이요. 밤만 되면 직장이 인근 파출소인지 매일 출근이다.

강쇠 놈 이제는 넓은 바지에 좆 나오듯 안 끼는 데가 없다. 얼굴 이쁜 게 무슨 별이라고 옹녀가 파출소를 찾아가 애교도 부렸다가 울며불며 애원도 하면서 당직경찰에게 빌고 피해자에게 간청해 간신히 집에 데려오면 이제부터는 옹녀에게 화풀이다.

남녀의 정이 그런건가. 처음에는 죽고 못 산다고 별짓을 다하던 인간들도 3개월만 지나면 사그러진다 했다. 남녀간의 성적 호기심은 길어야 석 달이다.

옹녀는 이제 견딜 수가 없다. 작부질 석삼년에 궁둥이만 커졌다. 그래도 갈래없이 흐르는게 기생 정이라고 자기를 만나 강쇠만큼 오래 살아 준 남자도 없다. 속궁합도 이렇게 잘 맞으니 그것으로 나마 간신히 마음을 다스린다.

여자란 천 서방 만 서방이라도 저 싫으면 그만이지만 제대로 된 살 송곳 맛을 알면 정붙여 살게 마련이다. 예전 같으면 이미 각자의 길로 진작 갈라섰겠으나 이제는 서방 초상치루기도 지겹고 그나마 강쇠 같은 놈 찾기도 어렵다.

사내놈들 정이란 들물 같아서 갈래로 흐르지만 계집정은 폭포 같아서 외곬으로 흐르는 법이다. 옹녀 이제는 진정 계집의 나이에 들어 선 모양이다.

결국 강쇠 성질머리 가지고는 한나절도 이곳에서 편안하게 살수가 없다고 생각한 옹녀는 옴 덕에 뭣 긁는다고 강쇠를 달래며 말하는데

“ 당신 성질머리 가지고는 서울살림 그것도 잘 나간다는 사람만 사는 이 동네에서 돈 모으기는 고사하고 남의 손에 뒈지게 맞아 개죽음하기 십상이니 어디 깊은 산속 사람들이 없는 곳에 들어가 밭이나 일구고 약초나 심어 팔면 노름도 못할 것이고 강짜도 안 할테니 우리 이사 갑시다. 삿갓 밑에서도 정만 있으면 산다고 했소. 인생백년 시름 잊고 웃는 날이 몇 날이나 되겠소. 밥 없으면 얻어먹고 숟가락 없으면 손으로 먹고 집 없으면 정자나무 밑에서 자더라도 우리부부 정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 아니오”

서방과 놋그릇은 손때 먹일 탓이라 했다. 옹녀의 말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강쇠의 표정이 달라진다. 강쇠 놈 가만히 생각해보니 방아확은 새것이 좋고 여자 확은 닳은 것이 좋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자기의 사정을 이해하고 염려해주는 사람은 옹녀 뿐인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니 신세가 말이 아니다.

28.상말 가루지기 전.

산중생활

마누라 처량한 모습을 보고 강쇠가 고개를 끄덕 끄덕 하는데 정신 좀 차린 것 같다.

“ 그래 당신 말이 옳아, 내가 십년을 굶어도 남의 계집 쳐다보며 눈웃음 하는 놈만 안보면 내일 죽어도 한이 없네. 그래 그렇게 하세. 그래 어디든 가세. 정붙여 살면 아귀 틈에서도 웃고 살고 칼산도 두렵지 않은 법이네. 그럼 어디로 가면 좋을까. 금강산은 꽉막힌 인간들 미운데다가 돈이 없어 못가고 묘향산 좋다 해도 아직 통일이 안돼 들어갈 수가 없고 더군다나 겨울에는 눈이 많아 살수가 없어. 구월산이 좋다지만 갈수 없는 처지니 가만 보자, 남쪽 지리산이 어떨까, 내 고향도 가깝고 산 높고 땅이 걸어 땔 나무도 많지. 더군다나 산세가 좋아 물도 맑으니 그 곳이 좋겠네 ”

하고 말하는데 약간은 측은하기는 하다만 구구절절이 맡는 소리다. 염치가 없으면 대충 이렇게 때우는 게 강쇠다.

밤이 깊어 두 사람이 잠자리에 드는데 오늘이라고 빼 먹을 수 없지. 하루 일과에 꼭 들어 있는 계획된 순서니까. 남자들은 의무 방어전 어쩌고 하지만 강쇠와 옹녀는 권리 주장전인 셈이다. 원래 남자란 콩 볶은 것과 기생첩은 옆에 두고 못 견디는 족속들인 것이다.

강쇠가 은근 슬쩍 옹녀를 건드리니 옹녀는 불두덩이가 근질근질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를 비비꼰다. 강쇠야 항상 뭣 본 거시기같이 언제든지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놈이다.

강쇠가 옹녀의 귀 뒤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자 옹녀는 견디지 못하고 다리를 비비 꼬면서 제 손으로 강쇠 놈 허리띠를 끄르고 바지를 벗긴다. 강쇠도 질세라 치마 밑에 손을 넣어 옹녀의 속옷을 끌어내린다.

밤이 깊도록 평소에 연마한 기술을 서울에서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면서 행동에 옮기는데 옆집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어 창가의 불들만 일제히 켰다 껐다 하기를 반복한다. 요란한 희학질소리는 마치 대판 싸움이 벌어져 한쪽이 죽어나가는 것 같다가도 무슨 시름 그렇게 깊은지 긴 한숨소리가 요동한다. 어찌됐든 내일은 꼭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 생각이다. 그날 밤 강쇠 집에는 천둥 번개가 치고 세상이 암흑속에 묻혀 별들만 반짝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앞이 어질어질 해질 무렵,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진다.

어느덧 창이 희미하게 밝아온다.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긴다. 지긋지긋한 서울살이를 끝내기로 한 약속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보따리 몇 개 챙겨 들고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남원행 버스에 오른다. 이윽고 지리산 산중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마치 이 부부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마침 빈집이 한 채 있다. 워낙 외진 곳이라 들어가 살아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다.

29. 상말 가루지기전

무릉도원(武陵桃源)

강쇠와 옹녀 두사람은 피곤한 김에 만사를 제쳐두고 안방에서 잠을 청한다.

얼마를 잤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기분이 이상하다. 피곤이 아직 남아 잠이 덜 깬 눈을 비빈다.

옹녀가 얼근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온다. 찬바람이 코끝을 쌩하고 스치는데 그대로 있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이다. 하루 밤새에 겨울이다.

집 안팍을 둘러보니 얼마나 비워 둔 집이던지 지붕은 반쯤 무너져 도깨비 집 같고 안채는 귀신 소굴 같다. 마당 한 곁에 있는 장독대며 창고의 농기구는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것 같다. 또 마당에는 풀이 한길이나 자라 무성한데 담벼락 구석에는 산짐승의 뼈와 배설물이 천지다. 그때 뒤 곁에서는 부엉이가 울고 여우가 담을 훌쩍 넘는다.

어리둥절한 옹녀를 보면서 강쇠 놈은 그래도 자기가 남자라고 위로 하듯 한마디 한다.

“집이야 수리해서 고치면 되는 것이지. 바람 막고 등 붙일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적막한 이 산중에 누가 나 올 줄 알고 이리 좋은 기와집을 비워 놓고 기다렸을까”

꿈도 야무지다. 능력이 없어 미안하면 그냥 가만히 있기나 하지 그래도 뭣 달린 놈이라고 신소리 한마디는 빠뜨리지 않는다.

옹녀가 보니 너무도 한심하다. 청소를 하려니 앞이 캄캄하고 어둠 속에서 밤을 보내자니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도 이곳에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속궁합 맞는 강쇠와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 몸이 좀 불편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제대로 된 강쇠의 살 송곳 맛보다 좋은 것은 없다.

얼른 부엌에 들어가 쌓인 먼지와 거미줄을 걷어내고 보니 아직도 쓸만한 무쇠 솥 하나가 아궁이에 걸려있다. 앞마당 우물에서 물 한바가지 퍼 와서 솥을 헹구고 방에 있던 쌀을 씻어 밥을 짓는다.

불쏘시개는 앞마당에 지천으로 깔린 마른 낙엽이면 충분했다. 안방에 들어가 헌옷가지를 걸레 삼아 대충 훔치고 강쇠에게 식사하라고 말한다.

허기진 뱃속에 들어가는 따끈따끈 한 쌀밥 한 그릇은 반찬이 없어도 꿀맛이다. 한 숫가락은 밥이요 한 숫가락은 반찬이니 언제 금방 한 그릇 뚝딱이다.

허나 제 버릇 개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배부르고 등 따시니 평소에 하던 일이 절로 생각난다.

피곤해 한구석에 누워있는 옹녀의 허벅지에 강쇠가 슬그머니 털복숭이 발을 올린다. 옹녀라고 마다할 손가. 옹녀의 손이 강쇠의 바지춤으로 스며든다. 그날 밤 지리산 계곡에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소리가 퍼진다.

우는 듯 웃는 듯, 괴로운 듯 즐거운 듯, 숨이 막힌 듯, 한숨을 쉬는 듯, 통 나무를 배려는 듯 숨을 급히 헐떡이는 소리도 들린다.

30. 상말가루지기 전

산중 생활이 시작되다

소나무 숲 바람에 쓸려 나간 생전 처음 듣는 이상한 소음에 산중 동물들은 분명 그날 밤 잠을 설치고 말았다.

온산의 새들조차 망할 것들의 감창소리에 잠 한숨 못 잤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뒷날 아침이다. 아침밥을 챙겨 먹은 옹녀가 강쇠에게 말한다. 매일 방안 구석에서 그 짓만 생각하고 있는 강쇠를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이곳에 내려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바가지다. 옹녀는 강쇠 묵새기는 일에 지쳐 버렸다.

“ 여보 들어봐요, 개새끼는 도둑 지키고 닭 새끼는 홰를 친다고, 하늘은 제 목숨 부지하도록 제 할일을 준다하오. 사람마다 할일이 따로 있어 부모 봉양하고 처자식 부양하는데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신을 생각하니 어려서 제대로 배운 것 없고 커서는 물건 하나 믿고 세상을 떠돌다가 이때까지 살아왔으니 지금 이 나이에 다시 공부하랄 수도 없소. 또한 배운 기술 없으니 어디 가서 머슴살이 하랄 수도 없소.”

옹녀의 잔소리는 계속된다.

“ 이 산중에서 살자면 밭 일구고 씨를 뿌려 콩과 조를 심고 담배농사 잘 지어서 시장에 내다 팔고 뒷산에 부지기수 나무 한 짐 해다 때면 부모 없고 자식 없는 우리 둘이야 충분히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같이 건장한 신체에 밤낮없이 그 노릇, 칠년 과부 남정네 거시기 본 듯, 틈만 나면 물건 세워 방 닦는 내 엉덩이 쫒는 일이 다반사요, 그일 끝나면 저 혼자서 코를 골고 잠만 자니 굶어 죽기는 고사하고 우선 이 겨울에 얼어 죽기 십상이오, 오늘부터는 지게 지고 나가 땔감나무나 한 짐씩 해오시오”

이 말을 들은 강쇠가 피식 웃으며 하는 말

“ 허어, 허망하구나. 명태는 빨래 방망이, 여자는 가죽방망이로 두들겨야 맛이 나는 법이다 라고 했다.

그래야 잔소리가 줄어든다는데 이제는 나이 들어 그럴 수도 없네. 그래 수십억짜리 경주 말도 허리 다치면 거름수레나 끌고, 젊어서 날리던 기생, 퇴기되면 시골주막 지킨다는 말을 남의 소리로 들었다만 어찌 나 같은 한량 오입쟁이가 나무지게 지고 산에 오른단 말인가.

사내가 부엌일하면 불알 떨어진다는데 정녕 이것이 내일이고 내 처지란 말인가. 허지만 당신 말이 그러하니 갈 수밖에 더 있는가”

거기에다 어디에서 주워들었는지 또 긴 사설이다.

“남 날 적에 나도 나고 나 날 적에 남도 났는데 세상인간 같지 않아 이 놈 팔자 무슨 일로 지게목발 못 면하나.

어떤 사람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사모에 병반 달고 만석록을 누리건만 이런 팔자 어이 하리. 항상 지게 못 면하고 남의 집도 못 면하고 죽자하니 청춘이오. 살자니 고생이라 세상사 사라진들 치마 짧은 계집있나. “

31. 상말 가루지기 전

강쇠의 개과천선(改過遷善)

강쇠의 사설이 이어진다.

“ 더벅머리 자식있나. 광 넓은 논이 있나. 사래 긴 밭이 있나. 버선 짝도 짝이 있고 토시 짝도 짝이 있고 털 먹신도 짝 있는데 챙이 같은 내 팔자야 자탄한들 무어하나 한탄한들 뭘하나 청천에 저 기럭아, 너도 또한 임을 잃고 임 찾아서 가는 길이냐 .더런 놈의 팔자로다 이 놈의 팔자로다.

언제 이 짓을 면하나. 오늘도 이 짐을 안 지고 가면 어떤 놈이 밥 한 술 줄 놈이 있나 가자. 그래가자 ”

하지만 지금은 옹녀라는 천생연분이 곁에 있는데도 앙탈이다. 자고로 계집 골부림에는 가죽 침이 제일이다 라고 하지만 그것도 배부르고 등 따스울 때 하는 소리다. 이제는 첩첩산중에서 일 안하면 먹을 것도 방 데울 장작도 없다.

가죽 침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소금장수가 산골로 소금을 팔러 갔다가 날이 저물자 어떤 집에 묵게 됐다. 그런데 자다가 건넌방을 보니 주인집 딸이 속곳만 걸치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금장수는 소금을 한줌 쥐고 몰래 그 방에 들어가 그 처녀의 속곳 안 음문에 소금을 집어넣고 돌아와 자는 체 한다. 조금 있으니 처녀가 갑자기 아랫도리가 쓰리고 아프다고 펄펄 뛴다.

온 식구가 놀라 소금장수까지 깨워 혹시 이런 병을 고칠 묘방이 없겠느냐고 묻자 소금장수가 많이 고쳐 봤다고 안심시킨 후 물을 한 솥 끓여 약간 식혀가지고 처녀를 들이 앉히고 잘 씻겨 주니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소금장수는 이 병은 침을 맞아야 완치가 되는데 아픈 쇠침을 맞겠는가 아니면 부드러운 가죽 침을 맞겠는가 묻는다. 그러자 처녀는 덜 아픈 가죽 침을 맞겠다고 말하자 소금장수는 외딴 방 하나를 달래서는 침놓는 근처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가죽 침으로 정성껏 수차에 걸쳐 잘 치료해 줬다고 한다.

그래서 가죽 침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강쇠가 제일 좋아하는 그 짓이나마 매일 불편없이 돈 안들이고 계속하려면 계집 말을 한번쯤은 들어 주는 체 해야 한다는 걸 영리한 강쇠는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옹녀가 도망 가버리면 이 첩첩산중에 혼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사 가정생활에서 남편은 귀머거리가 돼야 하고 아내는 장님이 돼야 편안한 법이다.

강쇠가 뒷간에 쓰러져 있는 나무지게를 들어보니 어깨 끈이 삭아 흐물흐물하다. 서툰 솜씨로 억지 새끼를 꼬아 두 줄 엮어 끈을 만들고 일복을 차려 입는다.

마루 밑에서 찾아낸 신발 골라 신고 다 떨어진 모자 먼지 털어 뒤 집어 쓰고 녹 쓴 낫 찾아내 옹기 엎어서 박박 갈아 댄다. 자루 없는 도끼는 소나무 가지 꺾어 맞춰 끼운다음 이 옷 저 옷 뒤져 남은 담배 반갑을 소중하게 윗 주머니에 쑤셔넣고 지게를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강쇠가 뒷산 오솔길을 뒤뚱 뒤뚱 오르면서 뭣인가 중얼거리는데 그래도 목소리 하나는 남다르다.

32. 상말 가루지기 전

세상살이, 땡벌 집 구멍보다 더하랴

강쇠의 노래가 시작된다.

“ 오래 전 천황씨가 나무 덕으로 임금됐으니 음양오행 중에 먼저 난 게 나무로다. 하늘, 땅, 사람, 삼황(三皇) 호 시절에는 아무 일 안해도 1만 팔천년이나 편안하게 잘 살았다던데 우리 엄마 그때 날 나셨다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사람들에게 처음 집짓는 일을 가르친 성인 덕화(德化)는 나무를 얽어매 집 짓고 과일 따 먹으면 다된다 했는데 수인씨(燧人氏. 중국 상고시대의 제왕으로 나무에 불을 피우는 방법을 처음 가르친 사람)는 무슨 일로 이런 기술 가르쳤나.

날 밝으면 일어나 일을 해야만 먹을 수 있다면 요순시절 사람들이 어찌 편할 수 있겠는가. “

“일년 사시사철 놀 때 없이 손톱 발톱 닳도록 지게지고 밤낮으로 벌어도 춥고 굶주림을 이길 수 없는 이내 신세 불쌍하다.

내 평생 좋은 옷과 갖은 패물, 지갑 속에 두둑한 돈, 예쁜 계집 만나 어울려 하루 밤, 좋은 술에 맛있는 안주, 주색잡기를 친구 삼아 세월모르고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 어찌된 처지 인고. 불쌍하다 내 신세야.

깎아지른 저 언덕에 다리아파 어찌 가며, 억새풀, 가시덩굴 손이아파 어찌 베며, 한 짐 뭉쳐 엮어 매고 무거우면 어깨 아파 어찌 지며, 산 높고 깊은 계곡 인적조차 전혀 없는데 나 혼자 심심해서 어떻게 내려갈까.

에이 차라리 땡 벌 집 구멍에다 뭣 박고 견디는 편이 더 낫겠네“

하고 투덜거리며 신세를 한탄한다.

삼황이 누구냐 하는 것은 기록마다 다르다.

사기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이요. 하도서에는 천황, 지황, 인황(人皇) 이다. 상서대전은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을 꼽고 백호통에서는 복희, 신농, 축융(祝融)을, 춘추운과추에는 복희, 여와, 신농이라 하고 상서 공안국 서문에서는 복희, 신농, 황제(黃帝)를 꼽는다.

천황, 지황, 태황, 인황 이라 하는 것은 특정한 인물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추상적 개념에서 끌어온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복희와 신농을 삼황 중 두 사람으로 꼽는데 나머지 한 사람에 대해서는 수인이다, 여와다, 축융이다 의견이 분분하다.

각설하고, 강쇠 요놈, 평생을 가운데 다리로 남의 다리 살 사이에서 장난 하는 것것 외에는 해본 일이 없으니 나무 한 짐 해가지고 오라는 마누라 잔소리가 너무 심했던가보다.

강쇠가 제 신세를 한탄하며 빈 지게를 지고 작대기를 질질 끌면서 올라가는데 이때 함양군 마천면 산골동네 아이들이 자기들도 나무를 하러 와서 나무 목발을 두드리며 노래를 한다.

어린 놈들이 하는 노래가 방아타령, 산타령에 농부가. 목동가다.

33. 상말 가루지기 전

땡벌 집 구멍보다 더하랴

강쇠가 가만히 들어보니 한 놈이 방아타령을 하고 있다.

“ 뫼에 올라 산전방아, 들에 내려 물방아, 여주 이천 밀 다리 방아, 진천 통천 오려 방아, 남창 북창 화약방아, 각 댁 하님 용정방아, 이 방아 저 방아 다 버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 우리님은 가죽방아, 오다가다 방아 찢는 동무들아 방아 처음 만든 사람 알고 있나. 주나라 재상 강태공(姜太公)이 나무방아 만들다가 경신년, 월, 일, 시를 써서 목신을 다스린걸. 떨구덩 찧어라. 조세납부 늦어진다”

또 한 놈은 산타령을 하는데

“ 동 쪽에는 개골산, 서쪽에는 구월산, 남쪽에는 지리산, 북쪽에는 향산, 육로로 천리길, 수로로 천리길, 이천리 들어가니 탐라국이 생기려고 한라산이 둘러있다.

정읍,내장,장성,입암,고창,반등,고부,두승,서해수구 막으려고 부안, 변산 둘러 있다”

한 놈이 목동가를 부른다.

“ 갈퀴 메고 낫 갈아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얼럴,

쌓인 낙엽 부러진 긴가지 끍고 주워 한데 묶어 석양산길 내려 올 때 손님 보고 절을 하니 가슴에 안은 산열매가 땍때굴 다 떨어진다. 얼럴,

비 맞아 목마른 손님 술집 찾아 헤메는데 저 건너 있다고 손을 들어 가리키자. 뿔 굽은 소를 타고 짧은 피리 불고 간다. 유황숙이 보았다면 나를 오죽 부러워 하리. 얼럴”

강쇠가 다 들은 후 가만히 자신을 내려다보니 몸집은 애들에 비해 산(山) 만한데 저 어린 것들과 같이 갈키 나무는 아무래도 할 수 없다. 어른 체모가 있지.

그래서 도끼를 빼들고 이 봉우리 저 봉우리 다니면서 그중 큰 나무는 한 두 번씩 쿵, 쿵하고 찍은 후에 나무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

“ 오동나무 베려하니 순임금의 오현금(五絃琴)이 생각나고 살구나무 베자하니 공부자(孔夫子)의 강단(講壇) 생각, 저 소나무 좋다마는 진시황의 오대부(五大夫. 진시황이 태산에 오른 후 돌아올 때 비를 피하게 해준 나무라 해서 오대부라 부른다),

잣나무 좋다마는 한고조 덮은 그늘, 고기 배 물을 따르며 봄 산을 즐기나니 홍도나무, 아침 비에 촉촉하다 버드나무 좋을시고, 밤나무는 죽은 사람 위폐용 신주(神主)감, 전나무는 돛대 감이요, 가시목은 단단하니 포도대장 곤봉 감, 참나무는 꼿꼿하니 배짓는데 재목감, 중나무, 오시목과 산유자, 용목, 검팽은 목물 방에 중요한 문목(紋木)이니 화목으로 쓰기는 어렵겠구나”

일 할줄 모르는 놈이 단오날 김 맨다고, 별소리를 다한다.

그래, 아니 강쇠 놈이 어디서 이런 소리를 주워들었을까. 공자님 옆집에라도 살았더냐. 알기도 많이 안다. 일하기 싫으니까 잔머리 굴리는 폼이 여간 아니다.

하지만 도끼질 한번에 온몸이 떨리고 팔까지 아프다. 거기에다 이리저리 핑계를 억지로 만들다 보니 벨 나무가 전혀 없다.

34. 상말 가루지기 전

우래송수하(偶來松樹下)에 고침석두면(高枕石頭眠)

강쇠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 깊은 산중에 생수가 콸콸 솟는 옹달샘이 있다.

그 옆에 덥썩 앉아 마누라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밥한 톨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고 생수 솟는 우물에 엎드려 입을 대고 물을 마신 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렇지 않아도 산불이 심한데 강쇠 이놈 전혀 상관 않는다. 제 버릇 개줄까. 지가 언제 남의 눈치 보며 살았던가. 사람이 있던 없던 제할 일만 하는 놈이 인적조차 없는 산중에서 담배 한 개비 정도 피우다가 욕먹는 것 쯤이야 언 발에 오줌 누기지.

배는 부르고 그것도 일이라 안지던 지게지고 산에 올라왔으니 다리도 아프다. 소나무 그늘아래 풀밭에 돌베개를 하고 누우니 졸음이 쏟아진다. 또 개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또 지꺼린다.

“ 우래송수하(偶來松樹下)에 고침석두면(高枕石頭眠)이 나를 두고 한말이라, 소나무아래서 돌 베게 높이 베고 누우니 잠자리가 매우 좋구나”

강쇠는 스르르 잠에 골아 떨어진다.

게으른 년이 일 제쳐두고 머시기 털 세드라고 이러다가 고손자 거시기 패는 꼴 보겠다. 지가 언제부터 풍월을 읊었다고. 소나무 밑에 자리하고 큰 돌베개 높이 베니 쉽게 그냥 잠이 온다고 풍월이다.

강쇠를 다시 보자. 이쁜 각시, 공기 좋은 산, 맑은 물, 지저귀는 새소리, 정말 신선이 따로 없다. 거기에다 배불리 먹고 시원한 소나무아래서 돌 베게 높이 베고 낮잠을 청하니 지금 신선은 강쇠 그놈이다.

그 순간 언제 잠이 들었는지 천지를 진동하는 강쇠의 코골이 소리가 산중을 들썩 들썩한다. 한 소금 낮잠을 맛있게 잔 강쇠는 낯바닥이 간지러워 눈을 비슷하게 뜨고 하늘을 보니 벌써 별이 총 총하고 옷에는 이슬이 내려 촉촉하다.

황급히 일어나 기지개를 쭉 편 후 뒤 꼭지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혼자말로 하는 말이

“ 뭔 해가 이리 짧다냐, 나무 한짐도 않고 빈 지게로 내려가면 계집년이 방정을 떨 텐데 어쩌나”

하면서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 뭔가를 보자 옳다구나 하고 소리를 친다.

강쇠 눈에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길목에 서있는 커다란 목장승 하나가 보인다.

원래 장승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써있다.

장승에는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다.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의 성기(性器) 숭배, 장생고(長生庫)에 속하는 사전(寺田)의 표지(標識), 목장승은 솟대(蘇塗), 석장승은 선돌(立石)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35. 상말 가루지기 전

장승의 유래

장승의 명칭도 여러 가지다.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후(堠), 장생(長栍), 장승(長丞, 張丞, 長承) 등으로 썼고 지방에 따라 장승,장성,벅수,법수,당산할아버지,수살목 등으로도 부른다.

장승의 기능은 첫째 지역간의 경계표, 둘째 이정표, 셋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했다.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이정표시가 없고 천하대장군의 표시도 없으며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 주로 액병(厄病)을 빌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상(男像)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겼다.

여상(女像)은 관이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 등의 글이 새겨 있다.

장승은 지역과 장소에 따라 채색, 형상, 크기 등이 다르나 모양이 괴이하고 무시무시한 것만은 일치한다.

장승에 쓰는 장군 명에는 민속적인 신명(神名)이 등장한다.

동쪽에 있는 장승에는 동방청제축귀장군(東方靑帝逐鬼將軍), 서쪽에는 서방백제축귀장군(西方白帝逐鬼將軍), 남쪽에는 남방적제축귀장군(南方赤帝逐鬼將軍), 북쪽에는 북방흑제축귀장군(北方黑帝逐鬼將軍)이라고 쓰고 땅에 세워 귀신을 쫒는 민간신앙의 성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장승을 서낭당, 산신당, 솟대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며 액운이 들었을 때나 질병이 전염됐을 때는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우스개 소리 하나 하고 넘어가자.

어느 시골 언덕배기에 남녀 장승 서 있었다. 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이들 장승은 비바람 맞아가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보기에 안쓰러운 조물주가 미안했다. 그들은 수백년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물주가 그들에게 단 10분 동안 인간이 될 기회를 주셨다.

"단 10분이다. 너희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거라"

그러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남녀 장승은 말없이 눈빛을 교환하고 서로의 뜻이 통했다는 걸 느끼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진동하기 시작했고 나뭇잎이 심하게 흔들리며 떨어졌다.

조물주가 궁금해서 숲속을 들여다 보았더니 그들은 비둘기 한 마리 씩을 잡아 땅바닥에 눞혀놓고 그 대가리 위에다가 응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이 것들아 니들도 한번 당해봐라. 얼마나 기분 나쁜 줄 아냐. 거시기 발싸개 같은 새끼들아“

36. 상말 가루지기 전

장승과의 대면

장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옛날 장(張) 아무개라는 정승(政丞)이 있었는데 매우 고지식하고 청렴해 임금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악심을 품은 간신들의 음모로 함께 인적이 없는 시골에 묻혀 살게 되었다.

그에게는 성숙한 딸이 있어서 딸과 함께 인적이 없는 시골에서 외롭게 살았다. 그러다가 이 정승은 그만 딸과 불륜의 정을 통했다. 딸은 그만 자기의 수치를 감당키 힘들어 자살을 했다. 그 후 조정에서는 전일 간신들의 음모가 거짓임이 드러나 그는 다시 정승자리에 앉게 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딸과 불륜의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된 임금은 그를 극형에 처하고 이것을 경계하기 위해 길가에 그의 상을 조각해 세웠다 한다. 이것이 장승(張丞)의 유래라고 한다.

또 하나의 설화는 옛날에 한 임금이 신하들에게 묻는다.

"만일 오누이를 산 속에서 둘만 살게 해 두면 불륜 관계가 이뤄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張)이라는 정승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라고 부인했다.

임금은 오누이를 차출해 산속에서 같이 살게 한 다음 수년이 지난 뒤 확인을 했더니 오누이 사이에는 이미 아이가 생겨있었다.

임금은 즉시 장 정승을 파직시켰다. 그러자 그는 시골로 가서 살다가 병이 들어 죽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겨 장정승의 상을 길가에 조각해 세우고 혼을 위로했다고 한다. 이것이 장승의 유래라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강쇠는 장승을 보자 독수공방에 낭군 만난 듯 반가와 한다.

“ 그래, 생나무 베느라 힘 빼지 않아도 될 좋은 재목이 있구나. 해는 지고 갈 길은 먼데 이것 참, 불로 소득이다. 좋고도 좋을 씨고”

강쇠가 지게를 찾아 등에 지고 장승 있는 데로 바삐 다가가니 아니 이런, 장승이 화를 내면서 낯바닥에 핏대를 올리고 눈알이 튀어 나오도록 눈을 딱 부릅뜬다.

이때 강쇠가 자기도 사나운 낯바닥을 들이대며 장승에게 호령한다.

“ 너 이놈, 누구 앞에서 얼굴을 붉히느냐, 네 까짓게 눈썹 일으키면 어쩔꺼냐.

성격 괄괄하고 힘이 장사인 변강쇠란 이름도 못 들어 봤느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줌한번 누면 담벼락에 금이 가고 조금만 세워 누면 넘어가기 일쑤다.

싸움으로 말하자면 동네 씨름판에서 상대의 배를 먼저 치고 다음에 뒷덜미 치고 가랑이에 발을 넣어 내 동댕이쳐서 열명 중 8명은 이겼다.

또 열두 권법 다 사용해 펄쩍 한번 뛰면 뒷골목 조무래기들이 벌벌 떨었다. 이놈. 내가 그런 몸인데 손도 발도 없는 놈이 뭘 믿고 까부냐 ?”

하고는 갑자기 달려들어 장승의 몸통을 불끈 안고 하나, 둘 두 번 세니 쑥 빠져 버린다. 강쇠가 장승을 지게에 짊어지고 상여꾼 소리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37. 상말 가루지기 전

인불언 귀불언(人不言 鬼不言)

강쇠 어깨에 걸린 장승은 가뜩이나 미운 여편네 서방 이 아픈 날 콩 밥한다고 자신은 뿌리가 뽑혀 옴짝 달싹도 못하는데 상여소리라니 하고 입을 삐쭉거린다.

상여소리는 장사지낼 때 부르는 소리로 민간신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유불선의 모든 사상을 고루 반영하고 있다. 인간이 숙명적으로 맞이해야 할 죽음이라는 이별의 정서를 구슬프게 노래하고 있으며 죽은 사람이 좋은 곳에 가기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의 가사가 많다.

노랫말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데 바탕소리인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가 대체로 비슷하다. 메기는 소리는 보통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이제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을 일러주오"

등과 같은 내용이 많이 쓰이고 받는 소리는

"너허 너허 너화 너 너이 가지 넘자 너화 너" 혹은 "에헤 에헤에에 너화 넘자 너화 너"등의 노랫말이 많이 사용된다.

초성 좋고 노랫말 잘 외우는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고 상여를 맨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돼 있다.

강쇠가 장승을 둘러메고 내려오면서 상여소리를 부르니 정말 주책이다. 딴엔 장승을 쪼개 불쏘시개로 화장하러 가는 길이니 부를 만도 하지만은 어쩐지 불안하다.

강쇠가 마당에 쾅하고 장승을 부리면서 집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옹녀를 부른다.

“ 어이, 집사람, 안에 있는가. 장작나무 해왔네”

강쇠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서는데 옹녀가 반겨 밖으로 나오면서 강쇠의 손목을 잡고 어깨를 부둥켜 안는다.

“어찌 이리 늦으셨소. 평생 처음 나무를 하러가서 오죽이나 애를 썼소. 시장한데 어서 밥 드시오”

방안에 촛불을 켜고 밥상을 차려준 후 장작나무 구경하러 밖으로 나와 보니 아니 어떤 거대한 사람이 마당 한 가운데 떡 누웠는데 조정관리를 지냈는지 사모관대를 하고 시컴한 얼굴에 방울눈, 주먹만한 코를 얼굴 한가운데 달고 있다.

찬찬히 다시보니 턱 밑에는 긴 수염까지 늘어졌다. 옹녀가 깜짝 놀라 뒤로 팍 주저앉으며

“ 에이구머니나 , 이것이 도대체 뭣이요, 나무하러 간다더니 장승을 빼왔구먼. 아무리 나무가 귀해도 그렇지 장승을 쪼개 군불 땠다는 소리는 어디서도 못 들었소.

만일 장승을 쪼개 불을 때면 장승귀신이 당신에게 병을 줄 것이고 조왕귀신(아궁이 귀신)까지 가만 참지 않아 동티가 날 것이니 빨리 지고 나가 선 자리에 도로 세우고 왼발 굴러 잘못했다고 빌고 나서 다른 길로 속히 돌아오시오. 무슨 일을 선머슴 마루 걸레질 하듯 하시오”

38. 상말 가루지기 전

장승을 화장하다

장승을 본 옹녀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이때 강쇠가 문을 열고 내다보면서 옹녀에게 소리친다.

“ 염불에 빠질 년 같으니라구. 계집은 사흘만 안 때리면 여우가 된다더니 집안 가장이 하는 일은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계집이 요망스럽게 그것이 무슨 소린가. 도포입고 논을 갈아도 제멋인데, 더군다나 진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는 면산에서 불 타 죽고 한나라 장수 기산은 형양에서 타 죽었네.

그렇게 진실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어도 아무 탈 없었는데 나무로 깎은 장승 인형 정도야 쪼개 불 땐다고 무슨 일이 나겠는가.

인불언 귀불언(人不言 鬼不言) 이라고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르는 것이니 요망스런 말 다시는 하지 말소”

국수 못하는 년이 안반만 나무란다고 나무 한 짐 못해온 놈이 기고만장이다.

그러나 주책바가지가 말 좆 짊어지고 장에 간다고 강쇠 이놈, 손톱 밑에 가시 든 건 알아도 염통 밑에 쉬 든 줄은 모른다. 그러나 대단하다. 강쇠 놈은 입만 열면 문자(文字)요 그 입에서 나온건 고사성어다.

어느 절 어느 중이 스승인지 몰라도 글 하나는 잘 가르쳤다.

밥상을 물린 강쇠가 도끼를 꼬나들고 장승에게 달려들어 쾅쾅 패서 쪼갠 후 아궁이에 넣고 군불을 때니 방바닥이 뜨끈뜨끈 세상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개 좆은 앉기만 하면 까진다고 촌놈이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또 생각이 난다. 가뜩이나 미운 여편네 서방 이 아픈 날 콩 밥한다고 장승 동티 걱정이 한창인데 뭘 하자는 건가. 그래도 그 짓 하는 것을 밥 먹는 것보다 밝히는 연놈인데 그냥 조용히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이 연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홀딱 벗어 알몸으로 딩굴면서 사랑가를 부르며 진하게 노는데 하루 밤이 이렇게 짧을 수가 없다.

방중에는 서방이 제일이고 집중에는 계집이 제일이라 했다. 두 사람은 얼마를 놀다가 지쳐 잠이 든다.

이때 피해를 당한 장승 귀신이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는 죄도 없이 뽑혀와 강쇠 놈의 도끼 아래에서 조각이 난 후 부엌 아궁이 속에서 재로 변해 버렸으니 너무나 원통하고 분하다.

화장 돼버린 장승은 귀신이 돼 의지할 곳이 없이 중천에 떠돌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혼자서는 이놈 강쇠에게 복수를 할 힘이 부족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장승 우두머리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한 후 하소연하리라 다짐한다.

결국 강쇠에게 당한 함양 장승이 서울 노량진 선창가에 있는 장승배기 대방 장승을 찾아가 문안을 드린다.

마치 복쟁이 이갈 듯이 커다란 이빨을 북북 갈면서 그간 사정을 이야기 한다.

39. 상말 가루지기 전

장승백이

대방장승이 서 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불렀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 역 근처인데 여름에는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행정구역상 현재 장승이 서 있는 위치는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2동이다.

이곳은 노량진동과 상도동, 대방동이 접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노량진 선창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서울 시민들 중에는 상도동의 위치는 잘 몰라도 장승배기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명칭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유명한 대방 장승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승은 지금은 사라져가는 민속신앙중의 하나이지만 예전에는 동네 어귀나 사찰 입구에서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었다.

또 장승은 경계 표시이기도 했다. 10리나 15리마다 세워둠으로써 이정표 역할을 했고 악귀를 막는 수호신이기도 했다.

흔히 장승이 서 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하는데 우리나라 각지에 이런 이름이 남아있다. 장승배기에서는 마을의 공동문제, 즉 부락제나 기타 여러 가지 일을 의논했다. 그러던 것이 마을이름으로 되어 전해 온 것으로 이곳 노량진 장승배기에 장승을 세우게 된 내력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중기 사도세자가 부왕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비통하게 죽자 그의 아들 정조가 1777년 왕위에 오른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한시도 잊지 못했다. 그래서 화산(지금의 화성)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 다니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찾아가 아버지 무덤 앞에 무릎 꿇고 그 애통한 한을 달래며 명복을 빌었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과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당시 장승배기 일대는 대낮에도 맹수가 나타나는 울창한 나무 숲이었다고 한다.

현륭원으로 가는 정조의 어가(御駕)는 이곳에서 한번쯤 쉬어가야 했으나 아름드리 나무숲이 우거진 이 지점에서 쉬기란 적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인가가 없고 통행인마저 시오리를 가야 한두 사람 만날까 말까 할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이에 정조가 명령했다.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무시무시한 남자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상을 만들고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하여라."

어명으로 그 자리에 두 개의 커다란 장승이 세워지게 되었다.

결국 왕이 안심하고 행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곳에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고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는 길 오는 길에 이 장승 앞에서 어가를 멈추고 쉬었다는 것이다.

이곳이 대방장승의 거처요, 주민등록상 소재지다.

서울시 동작구에서는 매년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축제를 벌이고 있다.

40. 상말 가루지기 전

왜 이리 더디냐(遲遲)

함양 장승귀신이 흉년 문둥이 떼쓰듯 달려들면서 대방장승에게 고한다.

“ 소장은 경상도 함양군에서 산길을 지키던 장승으로 하늘과 땅의 신을 노엽게 한 적이 없고 평민을 다치게 하거나 괴롭힌 적이 없으며 사시사철 비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저는 제조상의 성도 이름도 모르고 족보도 없는 씨종자지만 우리 장승 동료들은 눈보라 치거나 비바람 부는 사시장철 동구 밖, 서낭당, 사찰 문전 앞에 서서 미련하리 만큼 두 눈 부라리며 지키고 섰다가 마을의 재앙을 막아왔고 먼길 다니는 나그네의 이정표가 되었으며 풍년과 안녕을 비는 구도자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더러 바보라 놀리고 또 사람 멍청한 것에게는 벅수같은 놈이라 비아냥 거려도 참아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개 좆에 덧개비 같은 난봉꾼 변강쇠란 놈이 우리가 사는 산중에 들어와서 아무 죄도 없는 소장에게 갑자기 달려들더니 수도 없이 욕을 보이고 저를 통째로 빼서 지게에 지고 자기 집 마당에다 내다 꽂았습니다. 그놈 강쇠 계집이 깜짝 놀라 도로 갖다 세우라고 애원을 해도 강쇠 이놈이 말을 안 듣고 도끼로 저를 잘디 잘게 쪼개더니 제 놈 부엌 아궁이에서 화장 시켜버렸습니다.

이놈을 그냥 뒀다가는 삼동 겨울에 땔감이 없으면 근처 우리 장승들을 다 뽑아다 장작 패듯 패서 불을 때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 서로 의지할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

함양장승의 한에 맺힌 넋두리가 이어진다.

“ 그 추운 겨울에도 옷 한벌 입지 않고 눈비 맞아가며 소임을 다하는 우리들에게 남은 화가 안 미칠 데가 없을테니 십분 통촉하옵소서. 소장의 원통한 일을 풀어 주시고 후환을 막게 하옵소서”

이 말을 들은 장승의 우두머리가 크게 놀라면서 부관 장승에게 말한다.

“ 이런 변이 있나. 큰 일이로세. 큰일이야. 미친 놈한테 칼 주지 말고 무식한 놈한테 돈 주지 말며 욕심 많은 놈한테 권력주지 말랬는데 그놈한테 그런 힘을 주다니 큰일이야. 큰일. 이 같은 일은 가볍게 처리할 일이 못되니 경기도 용인 사근내 공원님과 수원 지지대고개 유사님께 내 전갈을 전해 엿쭙기를,

요새 자주 문안을 전하지 못했는데 그간 평안하옵는지, 경상도 함양 장승 동관이 억울한 일을 하소연 해와 들어보니 천만고에 없던 변이 오늘날 생겼으니 수고스럽다 마옵시고 잠깐 오셔서 뜻을 합쳐 대처하옵시다 라고 말씀드리고 모셔 오도록 하라”

지지대 고개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수원시 파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현재는 프랑스군 참전기념비가 있다. 조선 정조임금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비통하게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여 화성군 대안면 안녕리에 있는 부친의 능인 융릉을 자주 참배하러 갈 때 넘어가던 고개였다.

41. 상말 가루지기 전

장승을 소집하라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정조임금이 부친 능에 참배하러 갈 때 이 고개에 오르면 능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데도 고개 길이라 어가행차가 느려 지자

"왜 이리 더디냐(遲遲 지지)"

하고 역정을 내던 고개 였으며 참배를 마친 후 서울로 돌아갈 때는 의례히 이곳에 행렬을 멈추게 하고 뒤돌아서서 융릉을 바라봤기 때문에 행차가 늦어져 역시 지지대 고개라 했다고 한다.

고개 위에는 당시 정조의 행차를 기념해 순조 때에 세운 지지대 비가 있다.

능행차 때, 한 번은 능 옆 소나무에 송충이가 만연해 솔잎을 갉아 먹자 정조가 송충이를 잡아오라 명하고 신하들이 잡아오자 이것을 생으로 씹어 삼키고

"네가 아무리 미물인 버러지이기로서니 친산의 솔잎을 갉아 먹을 수 있느냐. 차라리 내 오장을 먹어라"

라고 했다. 이를 본 좌우 군신들이 대경실색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날부터 까마귀와 까치가 무수히 덤벼들어 묘소 주변 소나무에 있던 송충이를 모조리 잡아먹었다고 한다.

정조의 지극한 효심은 그가 죽은 뒤 부친의 능 옆에 자신의 능을 쓰게 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 릉 2기를 융건릉이라고 부르며 지금 경기도 화성시에 있다.

부관 장승이 급히 가서 두 군데 연락을 취하니 사근내 공원장승과 지지대고개 유사장승이 급히 와서 대방장승에게 문안을 드리고 함양장승의 원통한 사정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다. 공원장승과 유사장승이 전말을 모두 듣고 자의 생각을 말하는데

“ 이런 일은 우리 장승이 생겨난 후 처음 난 변괴이오니 우리 세 장승만 모여 조용히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팔도 장승형제들이 다 모여 논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대장 장승이 그게 좋겠다 하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팔이 없으니 입으로 붓을 물고 전국에 보낼 공문 4장을 금방 써서 연락을 취한다.

“역사서를 보면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하고 지초(芝草)가 불에 타면 난초가 탄식(歎息)한다고 합니다. 이는 동료들의 어려움을 서로 슬퍼하고 위로 하는 것으로 올바르고 떳떳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금번 지리산 속에서 변강쇠란 놈이 함양 동관 장승을 빼다가 쪼개 부숴서 아궁이 속에 화장시켜 버렸습니다. 이런 변강쇠란 놈의 다른 행위는 다 봐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죄는 죄인을 천번, 만번 죽일 지언정 가볍게 처리 할 수 없습니다“

대방장승의 글이 이어진다.

“ 따라서 각도의 장승 동관님께 동시에 전달하니 이달 초 삼경 밤에 서울 한강가 노량진 선창 옆 새남터에 모두 모여 함양 동관 장승을 조문하고 변강쇠 이놈, 죽일 방법을 모색할 터이니 참석하시어 의견을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년 모월 모일.”

공문서 밑에 장승 대장이 서명하고 전국 각처의 지방 대표 장승이 날인한다.

42. 상말 가루지기 전

강쇠, 성토 당하다

우선 사대문 출입구의 장승, 마을 초입에 서있는 장승, 각 부대 앞을 지키는 장승, 각 도와 면을 지키는 장승, 도로 휴게소에 서있는 장승, 동네 관광지 입구에 세워 논 장승, 절 앞에 있는 장승들이 모두 뜻을 모았다.

“통문 한 장은 진관천 공원이 맡아 경기 삼십사관(三十四官), 충청도 오십사관에 전하고 한 장은 고양(高陽) 홍제원(弘濟阮)동관이 맡아 황해도 이십삼관(二十三官), 평안도 삼십이관(三十二官)에 전하시오,

그리고 한 장은 양주(楊州) 다락원 동관이 맡아 강원도 이십육관, 함경도 이십사관에 전하시고 한 장은 지지대 공원 장승께서 맡아 전라도 오십육관, 경상도 칠십일관에 전달토록 하시오.”

물론 귀신들의 조화(造化)인데 오죽이나 빠르겠나. 인터넷이나 전보를 이용하는 것보다도 빨라 바람 같고 구름같이 순식간에 다 전달된다.

전국 방방곳곳에 뿌리를 밖고 서있던 장승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약정된 날 밤에 한강 가 새남터 밑 둔치에 다 모였는데 용산은 물론이고 마포, 여의도까지 장승들로 가득 찼다.

장승들은 신체 구조상 고개 숙여 절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허리를 굽힐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으로 말하자면 발 앞부리를 디디고 뒤 쪽만 달싹 하는 형세로 절을 한다. 전국의 장승들이 일제히 절을 하고 서로 문안인사를 하는데 서울 여의도, 용산, 마포일대는 무슨 전쟁이 난 것 같았다.

이때 장승백이 늙은 대장 장승이 우레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보낸 공문의 내용을 이미 보셨으니 이 자리에 왜 모였는지 아실 겁니다. 도깨비는 방망이로 떼 내고 귀신은 경으로 쫒는다고 했습니다.

거두 불문하고, 아무 죄도 없는 우리 동료 장승 함양 동관을 불쏘시개로 화장해버린 변강쇠 놈의 죄를 어떻게 다스리면 좋겠습니까.”

이때 단천(端川) 마천령(摩天嶺) 꼭대기에 있던 장승이 앞으로 나와 말하는데

“과부 설움은 홀 애비가 아는 법입니다. 함양 동관의 깊은 설움에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강쇠 이놈 행위를 보면 무식한 도깨비가 진언을 알리 없다고 앞뒤 분간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고 있는 듯 합니다. 꼬락서니를 보자하니 그놈이 개과천선 할리는 천부당 만부당 합니다.

옛말에 미친년이 속 차리면 행주로 요강 닦는다 했습니다. 가만두면 안되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 놈의 식구를 모두 잡아와 한강 가 둔치에서 아예 목을 질끈 매달아 버립시다.”

그러자 대장 장승이

“귀신의 성정머리와 기운은 흙과 바람을 따라가는 것이니 마천 동관께서 하신 말씀 정말 좋은 말씀이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

43. 상말 가루지기 전

종년 간통하기는 누운 소 타기지

대방장승의 말이 이어진다.

“ 그 문제라는 것이 이놈의 식구라고는 계집 하나뿐인데 그나마 강쇠가 우리 장승 동관을 쪼개 부수려 할 때 그 계집이 그러지 말라고 극구 말렸다고 하니 죄를 줄 수가 없소이다.

그리고 뭐든지 제 놈 뭐 꼴린대로 하는 강쇠란 놈을 그냥 조용히 잡아다가 목을 메달아 버리면 세상 사람들이 그놈이 무슨 연유로 죽었는지 알지 못 할 것입니다. 이번기회에 가위 하나 잘 갈아서 지가 믿고 까부는 그놈 거시기를 잘라 버려도 시원찮을 놈이지만 이놈의 죄를 일벌백계 응징함으로써 세상사람 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해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디 다른 좋은 의견이 더 없습니까.”

이때 섬진강가 하동에서 온 장승이 나서며 한마디 한다.

“ 옛 성인의 말씀에, 나온 것은 다시 나온 자리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까치 독사에나 칭칭 감겨 뒈질 그놈이 우리 동관을 쪼개서 화장을 해버렸으니 우리 모두 몰려가 집밖으로 못 나오게 한 후 그 놈 집을 에워싸고 불을 질러 그 놈을 함양장승 동관이 당한 것같이 화장시켜 버립시다.”

이때 대장인 대방 장승이 대답한다.

“ 어질병이 자라서 지랄병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놈을 그냥두면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그런 흉악무도한 놈을 순식간에 불로 태워 없애 버리면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혹시나 산중 도깨비 장난인가 아니면 성황당 귀신의 소치인가 의심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에 천년고찰 낙산사가 소실되고 나이 헛 처먹은 늙은 놈이 숭례문까지 태워 먹은 마당에 그건 좀 지나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전라도 해남(海南) 관머리 장승이 말한다.

“대장 장승님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강원도 땅은 불이 꺼질 새가 없어 걱정인데 하나 남은 지리산까지 불을 질러 버린다면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박고 살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거시기 까고 댓진 발라 버려야 마땅할 강쇠 같은 흉악한 놈을 쉽게 죽여 버리면 제 자신의 부끄러움을 못 씻을 테니 차라리 고생이나 실컷 하다 죽게 만듭시다.

노처녀 골부림에는 총각 말뚝이 제일이고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입니다.

고통이 심해 죽고자해도 바로 못 죽고, 살고자해도 살 수 없게 만들어 칠칠이 사십구 한달 열 아흐레를 밤낮으로 고통과 괴로움으로 볶이다가 험한 모습으로 처절하게 죽으면 강쇠 놈도 장승을 아궁이에 화장한 죄인 줄 스스로 알 것이고 이를 본 주변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니 이 어찌 좋은 처벌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

장승들의 성토가 계속된다.

44. 상말 가루지기 전

의견일치

“ 우리 장승식구 모두가 질병을 하나씩 가지고 강쇠 놈을 찾아가서 정수리 끝에서 발톱까지 오장육부(五臟六腑) 안팍 빠짐없이 새 집에 흙 바르듯, 한지 공장 종이 바르듯, 새집 장판 콩기름 먹이듯 겹겹이 발라 버렸으면 좋을 듯 합니다.

이러면 제깐 놈이 거시기로 밤송이를 까라면 깠지 별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대장 장승이 대단히 기뻐하며 말한다.

“해남에서 오신 동관께서 하신 말씀이 정말 옳은 말씀이오. 우리 그대로 시행토록 합시다.

헌데 우리보다 몸집이 작고 키도 조그마한 강쇠 놈에게 저렇게 많은 식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병이 붙은 데는 한꺼번에 많이 붙고 안 붙은 데는 빈 곳이 있을 것이니 우리 이렇게 합시다.

머리에서 두 팔까지는 전라도, 경상도 장승께서 차지하고 겨드랑이서 볼기까지는 황해도, 평안도에서 맡으시오, 똥구멍에서 머리털까지는 강원도, 함경도에서 담당하고 오장육부와 몸속은 경기도, 충청도에서 맡아 팔만 사천 털구멍 한 구멍도 빈틈없이 단단히 잘 바르도록 하시오.”

“ 좋습니다. 종년 간통하기는 누운 소 타기지요. 모가지를 돌려 앉혀 버립시다”

새남터에 모인 장승들의 외침이 우레 같다.

“ 옳소”

“ 옳소”

“ 좋습니다”

“ 그렇게 합시다”

모두가 찬성하면서 팔도 장승이 모두 예하고 대답한 후에 사냥 나온 벌 떼같이 질병을 하나씩 등에 지고 나서자 함양 장승 귀신이 앞장을 선다.

이들이 도착하기 전 날 강쇠 놈은 함양장승 쪼갠 나무를 아궁이에 듬뿍 넣어 방바닥이 끓도록 덥게 때고 뒷날 아침 일어나니 온몸이 상쾌하고 개운하다.

이날이 마지막이라는 걸 어찌 인간이 알 수 있으랴.

제 버릇 개줄까 허구헌 날 하는 일이 계집 가운데 살구멍 뒤지는 것이 일인데 이날도 일어나자 마자 아침밥 든든히 먹고 나자 또 생각이 간절하다. 제 계집 두 다리를 양쪽으로 딱 벌리고 오목한 그 구멍을 기웃이 들여다보면서

“밖은 검고 안이 붉으니 정말 아궁이 같구나, 그런데 뻐끔 뻐끔하는 것은 아궁이 귀신이 붙었는가”

그러고는 제 물건을 주물락 거리면서,

“불끈불끈하는 것이 장승나무 귀신 붙었나. 아무리 귀신 씌웠다고 우리 같이 가난한 살림살이에 굿하고 경 읽겠나, 나무귀신하고 아궁이 귀신 둘이나 불러 화해나 붙여 볼까.”

강쇠는 그 좋아 하는 짓 꺼리를 옹녀와 늘어지게 한판 벌였다.

45. 상말 가루지기 전

강쇠 동티나다

정월 초하룻 날 먹어본 놈은 이월 초하룻 날도 먹자고 한단다.

옹녀와 한판 일을 벌인 그 순간에도 강쇠는 젊은 머시기는 뿌듯한 맛으로 하고 늘어난 머시기는 요분질 맛으로 한다던데 하고 중얼 거리면서 어쨌거나 세상사는 재미는 이것밖에 없다 하고 생각한다.

“화목도 준비 했겠다. 하루 이틀 쉰 후에 이 근방에 있는 장승을 차례로 빼 오면 올 겨울 나무는 걱정 없겠지.”

여자는 질리도록 해 주는 게 최고다.

성급한 여편네가 맷돌거리를 한다고 오늘따라 옹녀가 강쇠 배위에서 걸판지게 놀아준다. 두 사람이야 밤에는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뭐 그 짓 말고는 딱히 할일도 없다. 두 사람은 서로가 하루치 의무 방어전을 마치고 한참 곤하게 잠이 들었다.

그때 지리산에는 이미 당도한 전국의 수천 개 장승들이 온 집 안팍을 에워싸고 대기하다가 강쇠와 옹녀가 곯아 떨어진 것을 보고 하나씩 방으로 들어와 강쇠의 몸을 한 번씩 건드린 후 아무 말 없이 마치 삼베 바지 바람 빠지듯 소리 소문 없이 들어 왔다 나간다.

임무를 부여 받은 장승들은 곤히 잠이든 강쇠에게 달려들어 각기 맡은 대로 갖가지 병으로 온몸에 도배(塗褙)를 한 후 전부 흩어져 사라졌다.

먹은 밥이 사잣밥이요. 자는 방이 칠성판 위라더니 이게 웬일인가.

몸이 이상한 것을 느낀 강쇠가 깜짝 놀라 말을 하려고 해도 목구멍에서 말이 안 나오고 눈을 뜨려고 해도 두 눈꺼풀이 딱 붙어 떠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온몸을 결박당한 듯 움직일 수가 없고 대바늘 송곳으로 전신을 쑤시는 것 같이 아프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눈물을 흘린다.

강쇠 몰골이 마치 꼬부랑 거시기가 제발 등에 오줌 갈긴 꼴이다.

이렇게 꼼짝 못하고 누워서 신음하고 있는데 전날 밤 몸을 심하게 푸느라 지쳐 혼수 상태로 잠을 자던 강쇠 계집 옹녀가 아침이 돼 날이 밝자 그제서야 잠이 깬다. 그리고 어디선가 숨넘어가는 소리와 끙끙 앓는 소리가 섞여 들려 문득 옆을 보니 강쇠 입에서 간신히 나오는 신음소리다.

깜짝 놀라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자세히 살펴보니 강쇠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건 분명 송장이다. 급하게 부엌으로 가서 미음을 끓이고 소금을 약간 타서 수저로 강쇠 입에 떠 넣으며 온몸을 만져 보니 열이 펄펄 끓는다. 무슨 놈의 열이 고구마도 삶겠다.

옆에서 옹녀가 흔들고 불러도 강쇠는 이를 꽉 아드득 물고는 입을 열지 않는다.

미음은 커녕 물조차도 삼키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강쇠 몸에는 어느새 낭자(狼藉)한 부스럼이 돋고 그것이 금방 흐물흐물 풀어져 피고름이 흐르고 여기에서 나는 독한 냄새 때문에 코를 들 수가 없다.

46. 상말 가루지기 전

옹녀의 수난이 시작되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강쇠한테 걸린 병 이름을 짓자 하면 만 가지도 넘는다.

풍두통(風頭痛), 편두통(偏頭痛), 담결통(痰結痛), 석서기, 청맹(靑盲)에 이롱증(耳聾症)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耳鳴), 콧구멍 속에는 비창(鼻瘡), 거기에다 호흡이 곤란하고 냄새를 맡지 못한다.

그동안 처먹은 술의 주독(酒毒)이 온몸에 겹겹이 쌓이고 얼굴과 입술에는 온갖 부스럼, 풍치(風齒), 충치(蟲齒)에 입이 돌아가는 구안와사, 신열이 심하고 혓바닥에는 흑태, 거기에다 열이 나면서 위병으로 혓바닥에 끼는 황백색의 백태(白苔)에 혀가 오그라지고 목구멍에 종기가 나 막혀 버렸다.

코 속 벽은 가로로 뚫리고 양쪽 편도선은 풍선만큼이나 부어 올랐으며 아래턱이 어긋나 위 아랫니가 맞지 않는다.

목 뒤 힘줄이 뻣뻣하고 아파 잘 돌릴 수도 없고 커다란 종기가 솟았는데 금방 생긴 종기가 곪아 터지고 어깨 부분이나 또는 어깨에서 팔까지의 부분이 저리고 아파서 잘 놀리지 못한다.

온몸에는 종기가 곪아 터지기 시작한다. 살 가운데 엄청나게 큰 근이 박히는 종기가 쉴새없이 돋아나고 손발이 덜덜 떨린다. 갈빗대 있는 곳이 결리고 아프며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등에는 큼지막한 종기가 어느새 생겨 등창을 겸하고 가슴과 배가 땡기기 시작한다.

강쇠는 몹시 아픈 급한 열병에 배가 더부룩하고 부어오르며 임질(淋疾), 아랫배와 불알에 탈이 생겨 바가지만큼 커지고 아픈 병인 산증(疝症)에 볼기짝과 그 근처에 종기가 생기고 항문 밖으로 내장이 빠져 나온다.

허벅다리에 임파선이 부어 켕기고 아프며 하루거리. 학질(瘧疾)에 몸이 붓는 병 수종(水腫)을 겸하고, 발바닥 독종(毒腫)에 티눈이 생기고 폐결핵. 담이 결리고, 육체(肉滯), 주체(酒滯)에 식체(食滯)를 겸하고 살빛까지 누렇다.

대변은 회백색, 소변이 샛노랗게 변하는 황달(黃疸), 흑달(黑疸)에 뱃속에는 가스가 몰려 풍선같이 팅팅하는데 급성 이질에다 적리(赤痢)까지 거의 엉망진창이다.

자기도 모르게 걸려버린 중풍으로 눈과 입이 돌아가고 움직일 수 없으며 괴질(怪疾)에 재채기. 자치염, 해수(咳嗽)에 헐떡증을 겸하고 헛소리에 헛손질, 심한 토사곽란으로 근육이 뒤틀리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

어찌나 괴롭고 고통스러운지 차라리 씨아에 불알 넣고 견디는게 훨씬 더 낫겠다.

옹녀가 억지로라도 먹이려고 벌어지지 않은 입에 억지로 미음을 집어 넣어도 금방 다 토한다. 학질에 며느리 심을 겸했는지 드치락 내치락하다가도 금발 멀쩡한 듯 보이다가 이따금 미친듯이 행동을 한다.

단독(丹毒), 양독(陽毒)에 온역(瘟疫),감창(疳瘡), 당창(唐瘡), 경기, 횡경막 위에 수분이 괴어 오한, 발열, 구토 등이 일어나고 장의 경련으로 아랫배가 아프다가 심하면 위로 뻗치는 병 분돈증(奔豚症)까지 걸렸다.

47. 상말 가루지기 전

봉사 점

강쇠는 내장에 부스럼, 간장에는 종기. 염병(染病), 시병(時病)에 열광증(熱狂症)에다가 울화(鬱火), 허화(虛火)에 물 조갈(燥渴)이 심해 사지가 참을 수 없고 온몸이 쑤셔서 굽히지도 젖히지도 꼼짝달싹 못하고 뻣뻣이 누워있다.

원 세상에, 가을 날씨 좋은 것과 늙은 기운 센 것은 믿을 수 없다지만 지금껏 태산이라도 빼다 옮길만한 힘과 며칠을 밤을 새도 끄떡없던 강쇠 놈이 이 꼴에 무슨 변괴란 말인가.

여자는 진데 마르고 마른데가 질면 죽고 남자는 빳빳한 게 연해지고 연한 게 빳빳 해지면 죽는다고 했다.

꼬부랑 거시기가 제 발 등에 오줌 깔긴 격으로 강쇠 는 제 행실로 어떤 봉변당할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래 왜 가만히 서있는 장승을 둘러메고 와서 아궁이에다가 화장을 해버리느냐 말이다.

팔자 더러운 년은 두 번 팔자도 그 타령이라고 하더니 만나는 놈마다 다 죽어 나 자빠지니 어쩌란 말인가.

옹녀는 마치 가을 메뚜기처럼 안고 죽고 업고 죽을 심정이다. 입맛나자 쌀 떨어진다고 이 무슨 일인가.

갓난아기는 어미 젖, 어미는 남편 거시기 빨아 먹고 산다고 했는데 이 못난 년은 지 서방 뭣도 못 끼고 살 팔자인가 보다.

그나 저나 살날 창창한 이 젊은 몸뚱아리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집안이 망하려면 제석항아리에 말 거시기 들어간다더니 이게 웬일인가.

정 끊은 놈은 잡아먹어도 시원찮다고들 하는데 어느 누가 도대체 무슨 일로 강쇠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옹녀는 물 건너 손자 죽은 할애비 마냥 멍하니 혼자 앉아 있다.

죽어도 어느 귀신한테 죽는지나 알아야 할 거 아닌가. 고민 고민 하던 옹녀가 결국은 겁이 나 점쟁이한테 점이나 쳐보자 하고 나선다.

건너 마을에 사는 송봉사(宋奉事)가 점을 잘 친다는 소릴 듣고 옹녀가 복채 돈을 챙겨 넣고 급히 찾아가서

“봉사님 계시오. 송봉사님 게시오”

하고 점쟁이를 부르는데 원래 점쟁이는 대답이 원수(怨讐)진 사람 대하듯 하는 것이 보통이다.

“거기 누구요.”

“강쇠 마누랍니다.”

“어찌 왔소.”

“그 건장하던 제 서방이 밤새 병을 얻어 곧 죽게 됐으니 점이나 한번 봐주시오.”

“그럼 강쇠가 쓰러졌다고. 어허, 그것 참 이상한 일이네. 엊그제만 해도 곰도 잡겄드만, 일단 방으로 들어오시오.”

48. 상말 가루지기 전

늙은 말의 콩사랑

봉사 점쟁이가 세수를 급히 하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한 후에 단정히 꿇어 앉는다. 점칠 때 쓰는 대모산통(玳瑁算筒) 흔들면서 축사(祝辭)를 외더니 갑자기 산통을 누가 뺏아 가는지 주머니에 부리나케 넣고 글 한 귀를 짓는다. 그러고는 그 글을 읽는데

“사목비목(似木非木) 사인비인(似人非人)이라, 나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고 사람이 아닌 것도 같고 , 어허, 그것참 괴이(怪異)하다.”

라고 말한다. 옹녀가 이 소리를 듣고

“ 참 엊그제 우리 집 남정네가 장승을 뽑아다 쪼개 군불을 땠는데 혹시 장승한테서 병을 얻은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그렇지, 목신(木神)이 난동(亂動)하고 주작(朱雀)이 발동(發動)하니 살기 어렵겠소. 죽는 사람 원이나 없게 독경(讀經)이나 한번 해 보도록 하시오.”

옹녀가 이 말을 듣고

“ 그럼 봉사님이 오셔서 경을 읽어 주시요.”

“ 좋소, 그렇게 하지.”

옹녀가 먼저 한 걸음에 급히 집에 돌아와서 집 주위 네 곳에 누런 황토(黃土)를 놓고 목욕 재계를 한 후, 새로 빤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떡과 과일, 나물을 금방 차려 놓는다 그때 송봉사가 문 앞에 와 우뚝 서며,

“어디다 차렸는가.”

“여기에 차려 놓았습니다.”

송봉사가 자리를 고쳐 앉는다.

“그러면 경을 읽도록 하지.”

송봉사가 북을 방안에 들여 놓은 다음 가시목으로 만든 방망이 들고 경을 읽을 때 쓰는 요령을 한 손에 든 채 쨍쨍 퉁퉁 울리면서 조왕경과 성조경(成造經)을 의례(依例)대로 읽은 후에 다시 동증경(動症經)이라는 경을 왼다.

“나무동방(南無東方) 목귀살신(木鬼殺神), 남무남방(南無南方) 목귀살신, 남무서방(南無西方) 목귀살신, 남무북방(南無北方) 목귀살신.”

봉사가 삼칠편(三七篇)을 얼른 읽고 왼편 발을 턱 구르며

“엄엄급급(奄奄急急 숨이 끊어지게 다급함) 여율령(如律令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파하(娑婆訶 진언 끝에 붙여 성취를 구하는 말. 축원의 의미로 점술가들이 쓰는 말.) 쒜.”

봉사가 경을 다 읽은 후에

“자네, 복채는 어찌 하려나”

옹녀가 하는 말이,

“복채나 서울 빚이나, 옛소, 여기 있소.”

하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다.

49. 상말 가루지기 전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도 못한 법

봉사가 정색을 하면서 말한다.

“내가 언제 돈 달랬는가, 자네 거 새콤한 것 있잖는가. 어흠”

하면서 슬그머니 옹녀의 치마 속을 더듬는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도 못하다고 아픈 강쇠를 옆에 두고 뭐하는 짓인지.

남자는 늙어도 문지방 넘을 근력만 있으면 뭣한다고 하더니 이 영감탱이 하는 꼬라지 좀 보소. 행동거지가 마치 칠년 과부 남정네 뭣 주무르듯 겁나게 설친다.

새벽 거시기 꼴리는 건 제 아비도 못 말린다고 하지만 어여쁜 색시가 옆에 있는데 새벽이 아니면 어떠랴 했다.

“아니, 그만두시오. 점잖은 터에 이게 무슨 짓이오. 내가 아무 잡놈에게나 가랑이 벌려주는 화냥년이오?”

씹도 정이 있어야 맛있고 갈보도 절개가 있다는데 남편이 앓아누운 자리에서 그것도 다 늙은 놈과 뭘 한단 말인가.

옹녀의 단호한 거절에 무안을 당한 송봉사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염치가 없어진다. 결국 화가 난 봉사가 옹녀를 보고

“ 그래 좋다 이년아. 네년은 금테 둘렀냐”

똥 싼 주제에 매화 타령한다고 한마디 한 후 방문을 나서자 옹녀가

“저승사자는 뭘하고 있는지 몰라. 눈이 먼 게야, 저런 놈을 안 잡아가다니, 에이 염병에 땀 못내고 죽을 영감탱이. 이놈아, 뻔뻔하기는 낮 도둑놈 뺨치겠다”

하면서 방에 있던 빗자루를 내던지자 안개 속에 소 나가듯 후다닥 내빼는데 이건 정녕 봉사 발걸음이 아니다.

송봉사가 냅다 도망을 치면서 하는 말이

“ 안 줄라면 그만두지 욕은 왜 해? 더러운 년 ”

옹녀가 식식 불면서 봉사를 향해 악다구니를 한다.

“ 왜 욕을 하냐니. 몰라서 묻냐 이놈아. 좋은 말 할 때 알아 처먹으면 어느 잡년이 입 삐뚜러지게 악담하냐, 이놈아”

이날 이후에도 강쇠의 병에 차도가 없자 옹녀는 용한 의원(醫員)을 불러 침을 맞히고 약을 먹여 보리라고 생각한다.

당시 함양(咸陽)땅에 유명한 이의원이라는 명의(名醫)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가 사정을 하니 의원이 승낙하고 강쇠 집에 와서 진맥을 한다. 왼쪽 손의 맥을 짚어보고 말한다.

“신방광맥(腎肪胱脈)이 약하니 오장의 기능이 저하되고 몸이 극도로 약해졌다 할 것이요, 간담맥(肝膽脈)이 쇠약하니 뼈 마디와 늑골이 매우 아플 것이요, 심수맥(心水脈)이 가늘게 뛰니 풍열두통(風熱頭痛)이 있을 것이요, 명문삼초맥(命門三焦脈)이 이렇게 약하니 너무 아프고 진액이 탁할 것이요, 비위맥(脾胃脈)이 수그러 들었으니 숨이 차고 배가 아플 것이요.”

50. 상말 가루지기 전

의원이 진맥을 하다

이의원의 진맥이 이어진다.

“폐대장맥(肺大腸脈) 맥이 뜨고 활시위처럼 팽팽하니 추워서 죽을 지경이요, 기구인영맥(氣口人迎脈)이 내관외격(內關外格)하고 일호육지(一呼六至)해 십괴(十怪)가 범했으니 암만해도 죽을 것 같지만 약이나 한번 써보게 건재(乾材)를 사오시오.”

지리산은 원래 약초가 많은 산인지라 별의 별 약재가 다 있다. 더군다나 인근 함양 장에는 뭣이든지 다 있었다.

옹녀가 약재상에 가서 인삼(人蔘), 녹용(鹿茸), 우황(牛黃), 주사(朱砂), 관계(官桂), 부자(附子), 곽향(藿香), 축사(縮砂), 적복령(赤茯笭), 백복령(白茯伶), 적작약(赤芍藥), 백작약(白芍藥), 강활(羌活), 독활(獨活), 시호(柴胡), 전호(前胡), 천궁(川芎), 당귀(唐歸), 황기(黃기), 백지(白芷), 창출(倉朮), 백출(白朮), 삼릉(三稜), 봉출(蓬朮), 형개(荊芥), 防風(방풍), 소엽(蘇葉), 박하(薄荷), 진피(陳皮), 청피(靑皮), 반하(半夏), 후박(厚朴), 용뇌(龍腦), 사향(麝香), 별갑(鱉甲), 구판(龜板), 대황(大黃), 망초(芒硝), 산약(山藥), 택사(澤瀉), 건강(乾薑), 감초(甘草)를 사다가 주니 의원은 탕약(湯藥)으로 만든다.

형방패독산(荊防敗毒散),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방풍통성산탕(防風通聖散湯),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 구룡군자탕(구龍君子湯), 상사평위산(常砂平胃散), 황기건중탕(黃氣建中湯), 일청음(一淸飮), 이진탕(二陳湯), 삼백탕(三白湯), 사물탕(四物湯), 오령산(五靈散), 륙미탕(六味湯), 칠기탕(七氣湯), 팔물탕(八物湯), 구미강활탕(九味羌活湯), 십전대보탕(十全大補蕩)을 만들어 강쇠에게 먹였으나 효험(效驗)이 없다.

이제는 환약(丸藥)을 만들어 먹인다.

소합환(蘇合丸), 청심환(淸心丸), 천을환(天乙丸), 포룡환(抱龍丸), 사청환(瀉淸丸), 비급환(脾及丸), 광제환(廣濟丸), 백발환(百發丸), 고암심신환(古庵心腎丸), 가미지황환(加味地黃丸), 경옥고(瓊玉膏), 신선고(神仙膏)을 먹였으나 역시 아무런 효험이 없다.

그러자 의원이 단방약(單方藥)을 처방한다.

지렁이집, 굼벵이집, 우렁탕, 섬사주(蟾蛇酒)며 무가산(無價散), 황금탕(黃金湯)과 오줌찌기, 월경수(月經水)며 땅강아지, 거머리, 황우리, 메뚜기, 가물치, 올빼미를 다 구해다 써 보았지만 그래도 효험이 없다.

그럼 침이나 놔 볼까.

순금장식(純金粧飾) 대모침통 절렁절렁 흔들어서 삼릉(三稜)을 빼들고 혈맥(穴脈)을 짚어주는데 백회(百會)짚어 통천(通天) 주고 뇌공(腦空) 짚어 풍지(風池) 주고 전중(前中) 짚어 신궐(神闕) 주고 기해(氣海) 짚어 대맥(帶脈) 주고 대저(大저) 짚어 명문(命門) 주고 장강(長强) 짚어 간유(肝兪) 주고 담유(膽兪) 짚어 소장유(小腸兪) 주고 방광(膀胱) 짚어 곡지(曲池) 주고 수삼리(手三里)를 짚는다.

51. 상말 가루지기 전

열녀전 끼고 서방질

다시 양곡(陽谷) 주고 완골(腕骨) 짚어 내관(內關) 주고 대릉(大陵) 짚어 소상(小商) 주고 환도(環跳) 짚어 양능천(陽陵泉) 주고 현종(懸鍾) 짚어 위중(委中) 주고 승산(承山) 짚어 곤륜(崑崙) 주고 신맥(申脈) 짚어 삼음교(三陰交) 주고 공손(公孫) 짚어 축빈(築賓) 주고 조해(照海) 짚어 용천(涌泉) 주면서 온 전신을 다 침으로 쑤셔대니 병에 곯고 약에 곯고 침에 곯은 강쇠 놈은 이제 죽을 수 밖에 도리가 없다.

하지만 뒷간하고 저승은 다른 사람이 대신 못가는 법이다. 결국 의원이 하는 말이

“약은 백 가지뿐인데 병은 만 가지니 치료할 수 없는 마지막 병이라 불치외다. 염라대왕이 제 할애비라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소”

밥 선 것은 사람을 살려도 의원 선 것은 사람 죽인다고 했다.

널 짜는 목수 남 죽기만 기다리듯 아무 것도 아닌 듯 말해버린다. 그럼 좆도 모르고 면장질 했나. 고치지도 못하면서 무슨 놈의 처방은 그렇게 많고 심부름은 그렇게 시켰는지.

참 좆도 모르고 면장질 했냐 라는 말의 유래는 이렇다.

일제시대 때, 어느 면장이 마을을 지나가다 보니까 7,8세 정도 되는 아이가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귀여워서 고추를 가리키며

“나는 면장 할아버지다. 그것이 뭣이냐”

하고 물으니 아이가 집으로 후닥닥 도망치면서

“엄마, 엄마, 저 사람은 좆도 모르면서 면장질 한데요”

하더라는 거다.

헌데 의원이 옹녀를 힐끔보니 이 산중에 이런 미인이 있었나하고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점잖은 개가 부뚜막에 올라가 거시기 내놓는다고 지금까지는 의원입네 하고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지만 첩첩산중 외딴집에 아무도 없는데 한번 어째 볼까하고 생각한다.

의원도 체면이 있지 아파 누워 있는 강쇠를 두고 그 처자 넘보기가 미안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가운데 다리 물건이 제 마음대로 일어서는데 막을 도리가 있나.

여자와 군밤은 곁에 있으면 놔두고는 못 버티는 법이거든.

은근 슬쩍 옹녀를 쳐다보니 하얀 고쟁이 밑으로 들어난 희멀건 허벅지. 옷고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부풀어 오른 젓 무덤이 시쳇말로 끝내준다.

심부름하며 방을 들락거릴 때 봤던 펑퍼짐한 엉덩이가 눈앞에 가물거린다.

의원이 작심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덮치는데 옹녀는 며칠 굶어서인지 아니면 치료비로 대신하려했는지 그리 앙탈하지 않는다.

열녀전 끼고 서방질 하려던 참이다.

52. 상말 가루지기 전

긴병에 효자 없다

아무래도 의원 이놈 하는 꼴이 우습다. 하라 해도 하지 못할 놈이 잠방이부터 벗는 꼴이다. 그 놈 양기가 입으로만 올랐나 일을 치러 보려는데 갑자기 아랫도리가 흐물 흐물해져 버린다. 의원의 물건이 슬그머니 죽어 버린다.

제구실 못하는 거시기가 뒷산에 가서 일어난다고, 멍석 펴주니 금방 커졌던 살 기둥이 그냥 시들어 버린 것은 무슨 꼴이람.

의원의 물건은 마치 번데기 데쳐 놓은 듯 주름만 잡고 있다. 아무리 아랫배에 힘을 주고 똥구멍을 옴싹 옴싹 해도 도저히 요지부동이다. 망신살이 뻗치려니 제 아비 함자도 생각 안 난다더니만 결국은 뭣도 뭣같지 않은 게 풀도 못 먹이고 나자빠진다. 뭣도 못하고 불알에 똥칠만 한 의원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얼굴이 벌개진 채 반편이 육갑 떨 듯 별짓을 다하다가 제 낯짝에 똥칠만 하고 돌아간다. 하는 행동이 앉은뱅이 거시기 지랄 방정이다.

남자들에게는 9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도 못 지키면 끝장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남자들의 성생활의 기본 횟수를 말하는데 이걸 못 지키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설명하면 자기나이의 앞 숫자에 9를 곱한 숫자가 그 나이에 맞는 성교 횟수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20대는 2곱하기 9 는 18 즉 1주에 8번, 30대는 3곱하기 9는 27 즉 2주에 7번, 40대는 4곱하기 9 는 36, 즉 3주에 6번, 50대는 4주에 5번, 60대는 5주에 4번, 70대는 6주에 3번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이다. 오뉴월 화톳불도 쬐다 말면 섭섭하다.

옹녀 역시 강쇠 놈 아픈 바람에 한동안 몸을 풀지 못했는데 약간은 서운하다.

옹녀의 머릿속에는 이런 말이 맴돈다.

‘새벽 거시기 안서는 놈은 저승이 문밖이라더라. 앉은뱅이 씹하느니 용두질이 차라리 낫지. 에이 멍청한 놈, 주는 것도 못 먹냐’

긴병에 효자 없다고 옹녀 역시 이젠 포기 상태다. 죽은 강쇠 옆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다.

원래 의원이라면 첫째가 심의(心醫)요 둘째가 식의(食醫)요, 셋째가 약의(藥醫), 넷째가 혼의(昏醫), 다섯째가 광의(狂醫), 여섯째가 망의(妄醫), 일곱째가 사의(詐醫), 마지막이 살의(殺醫)로 구분한다.

이 말은 가장 좋은 의원은 환자의 아픈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치료하는 의원 즉 심의이고 식사를 잘하게 하면서 치료하는 의원이 식의이며 약으로 치료하는 의사는 약의, 환자를 당황하게 하면서 치료하는 의사는 혼의, 미치광이처럼 치료하는 자는 광의, 적절하지 않게 치료하는 의원은 망의, 치료를 사기로 하는 사람이 사의, 병을 악화시켜 죽게 하는 의사는 살의라고 구분하는 것이다.

헌데 이의원은 애초부터 병든 남편 핑계 삼아 옹녀에게 살침을 꽂아 주고 싶었던 것이 목적인 것 같으니 색의(色醫)였는지 모르겠다. 살침도 침이기에 잘 만 꼽았으면 좋으련만 그것마저 부실했으니 이를 어쩌나.

53. 상말 가루지기 전

가는 년이 물 길어 놓고 가랴

의원이 돌아 간 후, 약과 침의 효과가 있었는지, 목신이 조화를 부렸는지 전혀 의식 없이 송장처럼 누워있던 강쇠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면서 옹녀의 손을 덥석 잡고 눈물 흘리면서 말을 한다.

이런 강쇠의 몰골이야 말로 썩은 장승 한번 건드렸다가 이제는 못난 여편네 국 쏟고 머시기 데고 탕기 깨고 서방한테 매 맞은 꼴이다. 하지만 강쇠는 할 말은 해야 죽어도 죽을 것 같다.

“자네는 서울 사람이고 나는 남도 사람이네.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중매해 오다가다 연분을 맺어 죽자 살자 하고 깊은 맹세를 했네.

우리 둘은 가을 산에 봉황(鳳凰)이오 푸른 물에 원앙(元鴦)이라. 잠시 잠깐도 헤어지지 말고 백년해로(百年偕老)하려 했더니 하룻밤사이 얻은 병에 백 가지 약이 효험 없네. 결국 청춘소년 이 내 몸 황천(黃天) 먼 길 곧 갈 것이네.

죽는 나는 서럽지 않네만 내 죽는 꼴 보고 있는 자네 모습 차마 두고 못가겠네.

비같이 퍼붓던 정 구름같이 흩어지면 눈같이 녹는 간장에 안개같이 이는 슬픔. 복숭화 꽃 피는 봄과 오동잎 지는 가을 두견새가 슬피 울고 기러기 떼 높이 날 면 독수공방(獨守空房) 당신 신세 해도 해도 불쌍하네.

자네 모습 가여워서 내 아무리 살자 하나 내 병세 지독(至毒)해 결국은 죽을 텐데 내가 죽거들랑 염습(斂襲)과 입관(入棺)은 꼭 자네 손으로 손수 하고 장례는 조촐하게 해도 좋으나 꼭 내 묘 옆에서 시묘(侍墓)를 살아 아침저녁 밥해주고 삼년상을 다 지낸 후에 묘 옆 솔가지에 비단 수건으로 목을 매소.

숨 끊어져 이승을 헤메다가 저승으로 찾아오면 이생에서 못한 인연 다시 아내로 얻어 줌세“

강쇠의 마지막 설득이 이어진다.

“여자와 논바닥은 물 마르면 끝장이라지만 당신은 아직 젊어 그럴 일 없으니 한 가지만 명심하소.

내가 지금 죽은 후에 어른 남자는 물론이고 열 살 못된 아이라도 고추 달린 놈이 자네 몸에 손을 대거나 집 근처에 얼씬만 하면 즉각 급살(急殺)을 맞을 것이니 부디부디 몸조심하고 앞으로는 절대 하지마소.”

하면서 비탈길 돌아가는 돼지 눈깔을 하고는 옹녀의 치마 속 옆 터진 구멍에 손을 불쑥 넣어 옥문을 쥐고 미친년 상추 뜯듯 으드득 힘을 주더니 불끈 일어나 우뚝 서는데 곧 건장했던 두 다리가 버들가지처럼 비틀 비틀 거린다.

여자야 남편 옆에 암고양이만 있어도 질투한다지만 남자 놈이 똥 싼 주제에 매화타령하고 있다.

모기 밑구멍에 당나귀 거시기같은 소리하지 말소. 가는 년이 물 길어 놓고 가겠는가. 꿈도 꾸지 마라. 이놈아.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54. 상말 가루지기 전

방문밖이 저승인걸

헌 옷 얻어 입으면 걸레감만 남고 헌 서방 얻어 살면 송장치레만 한다더니 뭐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말라고, 그럼 뒤로 하면 되겠네. 옹녀의 머리 속에 순간 스치는 반발이다.

어느 산골에 젊은 부부가 살았다. 남편이 산에 가서 나무 한짐해서 지고 내려오니 저녁밥상에 웬 조기가 한 마리 올라와 있다. 이 산중에 조기가 웬 말인가.

반갑다기보다는 이상해서 웬 거냐고 묻자 아내 말이 낮에 생선장수가 왔었는데 한번 주면 조기 한 마리 주겠다고 해서 들어주자 줬다는 것이다.

남편은 기가 막혔으나 이왕 일된 거 어쩔수 없다 생각하고

“ 이번에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소”

하고는 맛있게 조기를 먹었다. 며칠이 지나 저녁에 돌아와 보니 아니 또 조기가 밥상에 올라있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가. 남편이 괴이하게 여겨 까닭을 묻자 아내가 아내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말한다.

“ 생선장수 또 와서 지난번과 같이 한번 달라 해서 당신이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하니까 그럼 뒤로는 괜찮다는 말이라고 하면서 뒤로 하자 해서 그렇게 했더니 이번에는 두 마리를 줍디다. 그래서 상에 올린 거지요”

각설하고 , 뻣뻣이 서서 죽은 강쇠 놈의 바위 같은 두 주먹은 마치 절간 사천왕상(四天王像)모습이다.

사천왕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천왕을 다른 말로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하며 욕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에 있다고 한다.

수미산 정상 중앙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말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절에는 일주문(一柱門)과 본당 사이에 천왕문을 세워두고 그림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사천왕의 조상(彫像)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천왕들은 보통 검(劍 :持國天), 비파(琵琶 :多門天), 탑(塔 :廣目天), 용(龍 :增長天)을 들고 있다.

강쇠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왕 눈을 부라리며 몇날 몇일 깍지도 않은 머리를 산발한 채 혀를 길게 빼 물고 짚동같이 부은 몸에서 피고름을 주르르 흘리면서 벌떡 일어서는데 양 다리 가운데 물건 만이 뻣뻣하게 솟아오른다.

그 순간 강쇠의 목구멍에서 숨소리가 딸깍하고 콧구멍에서는 찬바람 쌩하고 나오더니 마치 장승같은 모습으로 빳빳하게 선채 죽어 버린다. 이놈 심술만 처먹어도 석삼년은 살겠다. 염소새끼가 뭐 나이 먹어 수염 났을까.

살아서는 저승길이 멀고 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방문 밖이 바로 저승인 것이다. 이문 저문 다 닫아도 저승문은 못 닫는다더니 그 말이 바로 이 순간을 두고 한말이구나.

55. 상말 가루지기 전

상가집 곡소리

강쇠 이놈, 건장한 체구는 그만두고라도 그 튼실했던 물건 또한 이제는 연장으로도 못 부르게 처참하다.

원래 남자의 물건은 어릴 때는 고추, 20대는 자지, 30대는 ㅈ, 40대는 물건, 50대는 연장이라고 부른다.

어린애 것은 생김새가 고추 같으니 고추요, 20대는 장가를 들어 사내구실을 하니까 자지, 30대는 더러 바람을 피우니까 욕하느라 ㅈ, 40대가 되면 그저 일상에 필요한 물건 정도이고, 50대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꺼내 쓰지 않으니까 연장정도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헌데 지금 강쇠의 물건은 연장도 못된 송장이 돼 버렸다.

옹녀는 강쇠 놈이 아픈 후 간병해 살려보려고 애쓴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억울하다. 지금껏 황소 불알 떨어지기만 바라면서 소금 짐 지고 다닌 격이었다.

여자 머시기 좋아 뭣 하나, 팔자가 좋아야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입맛나자 양식 떨어졌다. 오뉴월 긴긴 날에 밥 안 먹고는 살아도 동지 섣달 긴긴밤 임 없이는 못산다는 데 옹녀 이를 어쩌나.

옹녀는 강쇠의 마지막 유언에 타고난 팔자는 관속에 들어가도 못 속인다더니 하면서 속으로 미친놈 지랄하네 하고 욕도 해보지만 실제로는 겁이 나서 울지도 못하고 벌벌 떤다.

옹녀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뒤주에는 생쥐 볼가심 할 것 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저놈의 성질머리에 죽으면서 유언(遺言)까지 남겼으니 장사지내기 전에 억지로라도 곡은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뒤로 묵은 머리를 풀고 주먹을 쥐고 방바닥을 치는데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는 눈에 억지로 침까지 발라가면서 곡을 한다.

옹녀의 울음은 강쇠의 짧은 삶이 서러워서가 아니라 앞으로 서방 없이 살아가야 할 자기의 신세가 한탄스러워 우는 것이다.

원래 상가집 곡소리는 가는 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설움에 우는 것이다. 오뉴월 긴긴날에 밥 안 먹고는 살아도 동지섣달 긴긴밤에 임 없이는 못산다 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내 신세 서러워라, 아이고 아이고 나 혼자서 어찌 살꼬.

이봐요, 변서방아,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나도 갈라요 나도 함께 갈라요.

당신 따라 나도 가오. 열 살 때는 멋모르고 살고 스무 살엔 아기자기 한 맛에 살고 서른 줄엔 눈, 코 뜰 새 없이 바삐 살고 마흔 줄엔 못 버려서 살고 쉰 줄은 가여워서 살며 예순 줄은 고마워서 살고 일흔 줄은 서로 등 긁어 주는 맛에 산다는데 서른도 못 먹어서 이렇게 일찍 가면 일흔 살 등 가려울 때 누구에게 맡기리오.

이 나쁜 사람아 그 강가 그 숲 속 즐기면서 하던 그 말, 백년해로 하자더니 술맛 밥맛 다 잊어도 그 좋아하던 그 맛까지 잊었는가. “

56. 상말 가루지기 전

구곡간장(九曲肝腸) 찢어지는

옹녀의 슬픈 타령이 이어진다.

“나를 두고 어디가나, 황천객 혼자 가니 허망하고 허망하오. 적막산중(寂寞山中) 텅 빈집에 일가친척 고사하고 동네사람 전혀 없이 당신 장례 어찌 하나. 이내 신세 어찌 할꼬.

무슨 년의 팔자가 남편 죽는 복을 타고 나서 송장 치기를 밥 먹듯이 해왔지만 이런 몰골로 죽은 송장은 지금까지 치룬 송장 보던 중에 처음이오.

아이고 아이고 서러워라. 여보, 강쇠 나를 만일 못 잊어 눈을 감지 못한다면 날 잡아가시오, 날 잡아가. 아이고 아이고 서러워라.”

한참동안 통곡한 후에 사자(死者)밥 지어 놓고 옷깃 잡아 초혼(招魂)하고 혼잣말로 스스로 탄식하면서 하는 말이

‘첩첩산중 적막고을 도와줄 사람 전혀 없는데 나 혼자서 저사람 초상을 어떻게 치루나. 조금 있으면 저 시체에서 벌레가 생겨 기어 나올 텐데 이를 어쩌나.

혹시라도 큰길가에 앉아 울면 오입쟁이 남자들이 오다가다 미모의 나를 보고 초상을 치러 줄지 모른다, 옳지 그렇게 하자 ’

이판사판이다. 엎어지면 궁둥이, 자빠지면 뭣 밖에 없는 년이 무슨 짓을 못해, 하고는 소복(素服)을 챙겨 입는다.

가는 무명 올로 폭이 넓고 바닥은 썩 설피게 짠 옷. 깃저고리, 생베 치마, 외씨 같은 고운 발에 삼승보선을 신고 구름같이 검푸른 머리 흐트러지게 집어 얹는다. 거기에 복숭 빛 두 뺨에 어린 눈물자국 때문에 평소보다 더 예쁜 것 같다. 싱긋이 미소까지 떠오른다.

옛말에 우는 과부 시집가고 웃는 과부 수절한다 했다. 옹녀는 바람둥이 여편네 속곳 가랑이 너펄거리듯 옷을 차려 입고 아장아장 곱게 걸어 대로변을 건너가 시냇가 부근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자리를 잡고 펄석 주저앉아 소리내 울어 재낀다.

옹녀의 심사가 괴로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우는 목적은 죽은 강쇠가 서러운 것이 아니고 다른 남자를 꼬시려고 하는 것이니 얼마나 재밌고 맛 있겠는가.

“아이고 아이고 서러워라. 이 내 신세 비참하다. 어려서 조실부모 혼자 살기 이십여 년 가는 곳마다 나 혼자, 외로움에 사무치다 어느 한 날 한강 가 오행궁합 좋다면서 꼬시기에 마다 않고 얻은 남편 일곱 번째 남편죽고 여기 와서 또 당하니 이년 팔자 어찌 그리 험상 궂을까. 애고 애고 설운지고. 구곡간장(九曲肝腸) 이 원통을 시왕전에 아뢰고저. 애고 애고 설운지고.

여심상비(余心傷悲) 남물흥사(男勿興事) 보는 것이 설움이라. 버드나무 가지에서 우는 황조(黃鳥) 벗을 오라 한다마는 황천 가신 우리 낭군 네 어이 불러오며

저 꽃 숲 속 우는 두견 불여귀(不如歸), 불여귀 한다마는 남편 치상 못한 내게 어디 가자하느냐.“

55. 상말 가루지기 전

입맛나자 양식떨어졌다.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 동편 동산에 복숭아꽃 피는 봄철)에 내 신세를 어찌하며 춘초년년(春草年年) 푸르른데 낭군 어이 가고 아니오오. 애고애고 설운지고.

염라국(閻羅國)이 어디 있어 우리 낭군 가 계신고.

북해상(北海上)에 있다 하면 안족서(雁足書 기러기 발에 편지를 매어 소식을 전한 일)나 부칠 꺼고.

농산이 가까우면 앵무소식(鸚鵡消息)오련마는 밤낮으로 한 몸 되던 그 정리 영이별(永離別)인가. 애고 애고 설운지고.”

애절한 목소리가 화주성(華周城 화주는 기량의 처인데 지아비가 죽어 10 여일 동안 울자 성(城)이 무너졌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 무너질 듯, 시냇물이 목메인다. 여자 속과 뱀 굴 속은 알도리가 없다. 웬 그리 청승인고.

젊은 과부 울음소리는 산천초목도 울린다고 했는데 억지로 우는 울음에도 정말 주변에는 처량한 기운이 감돈다.

양달 토끼는 굶어 죽어도 음달 토끼는 살아남는다 했다. 미운 나그네 가면 반갑고 반가운 나그네 오면 반갑다.

이 때 꽃 나무숲에서 한 스님이 걸어 나오는데 걷는 폼이 매우 덤벙거린다.

붉은 색으로 물들인 실로 만든 갓에 붉고 노란 나비수염을 달았다.

은으로 만든 벼슬아치 갓끈 고리가 달린 공단(貢緞) 끈을 두 귀에 덮어 매고 말총으로 뜨지 않고 피륙처럼 짜서 조각지어 만든 감투를 썼다.

또 소년당상(少年堂上) 외꽃 같은 은관자(銀貫子)를 양편에 떡 붙이고 서양포(西洋布) 대쪽누비 상하 통을 같이 입었다.

한산세모시에 검은 장삼(長衫), 진홍(眞紅) 분합(分合) 눌러 띠고 흰총 박이 사날 초혜(草鞋 날실이 네 줄로 된 허술한 짚신. 머슴이나 하인들이 신었으며 털메기라고도 함.)를 신었다.

꼴을 보니 거기에다 고운 새김 버선목을 행전(行纏 바지 고의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래에 매는 물건) 위에 덮어 신고 좋은 은으로 꾸민 화류승도(花柳僧刀)를 겉고름에 느슨하게 차고 있다.

오십시 진상칠선(進上漆扇 나라에 바치기 위해 옷 칠한 부채)를 기름 매겨 손에 쥐고 동구(洞口)밖 색주가(色酒家)에서 먹은 낮술 한잔에 반쯤 취한 채 용머리 새긴 육환장(六環杖)을 이리로 철철, 저리로 철철 끌면서 무성한 숲 사이 구부러진 자갈길을 흐늘거리며 내려온다.

그때 어디선가 여자 우는소리 들리자 잠깐 사면을 둘러보며 한참을 주저주저 하다가 옹녀를 발견한다. 중도 씹은 알아본다더니 그말이 맞다. 그러나 막상 갑자기 닥치니 마치 머시기 본 벙어리요 거시기 본 과부 형상이다. 그 자리에서 돌부처 마냥 움직이지를 못한다. 생각은 있는데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중의 탈이 문제로다.

이윽고 가만가만 옹녀 곁으로 걸어간다.

55. 상말 가루지기 전

입맛나자 양식떨어졌다.

눈치 빠른 저 여인이 스님이 다가 오는 줄 먼저 알고 온갖 교태를 다 부린다. 가재하고 여자 마음은 가는 방향을 모른다. 옥같이 하얀 얼굴을 들어 먼 산도 바라보고 치마 자락 돌려다가 눈물도 씻어 보고 섬섬옥수를 잠깐 들어 턱밑에도 받쳐 보고 설움을 못 이기는 체 머리도 뜯어보면서 힐끗 힐끗 중을 쳐다보면서 한없이 섧게 운다.

잠은 잘수록 늘고 울음은 울수록 서러워 지는 법이다. 울다 보니 정말 눈물이 난다.

“내 신세를 생각하면 해당화(海棠花) 저 가지에 목을 매어 자결해야 마땅하지만 눈처럼 고운 피부, 꽃 같은 내 얼굴 아직도 청춘이 멀었으니 적막공산(寂寞空山) 무주고혼(無主孤魂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 그 아니 원통한가.

이 넓은 천지간에 의리남자 많겠지만 내 속에 먹은 마음 그 뉘라 알 수 있나. 아이고 아이고 서룬지고.”

스님이 옹녀의 얼굴과 몸매를 보더니 정신이 반쯤 빠져 버린다. 이때 옹녀는 스님에게 보라는 듯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면서 참다 참다 못 견디는 듯이 독을 쓰면서 죽겠다고 쑥 나서니 스님이 황급히 앞으로 나와

“소승(小僧) 문안(問安)드리오.”

옹녀가 힐끗 보고 못 들은 체 고개를 돌리고 계속 우는데

“오동나무에 봉이 없으니 오작새가 지저귀고 녹수에 원앙 없으니 오리가 날아든다. 에고애고 설운지고.”

스님이 이 말을 들으니 저를 업신여기는 말이거든 죽고살기로 바짝바짝 달려들며

“소승 문안이오, 소승 문안이오.”

옹녀가 울음을 그치고 점잖게 꾸짖는다.

“스님이라 하면 부처님의 제자이니 계행(戒行)이 다를 텐데 적막산중(寂寞山中) 숲 속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외간 여인에게 체모 없이 달려드니 버릇이 괘씸하오. 문안은 그만하고 갈 길이나 어서 가시오.”

옹녀가 짐짓 호되게 나무란다.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고 의뭉한 년이 고추 따며 똥 눈다더니 저 스님이 대답하는데

“소승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자비심이 많습니다. 시주(施主)님 같이 젊은 청춘이 너무 섧게 울고 있어 그 소리 때문에 뼈가 저려 못 가고 있으니 우는 내력이나 어디 말해주시오.”

그러자 옹녀가 못이긴 것 처럼 대답한다,

“ 이 깊은 산중에 우리 부부 둘만 살아 일가친척 아무 없는데 운세가 불행해 그렇게 건장하던 남편이 죽었소. 거기에다 죽은 송장마저 몰골이 험악해 혼자 장례를 치룰 수가 없소이다. 그래서 담력이 센 남자를 만나 남편 초상을 치룬 후에는 이 청춘 갈 데 없고 수절(守節)역시 할 수 없소”

55. 상말 가루지기 전

입맛나자 양식떨어졌다.

“ 그 사람과 부부되어 백년해로 하려고 하오. 대사의 말씀대로 자비심이 있다면 근처에 다니시다가 용기있는 남자를 만나거든 이런 사실을 말해주고 좀 보내주시오 ”

투전판에 넉 장 뺀 놈 마냥 멀쩡한 지팡이를 주물럭 거리다가 스님이 또 묻는다.

“우리 절에 있는 중 가운데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 있으면 알려줘 보내주리까.”

“초상만 치러 준다면 그 사람과 살터이니 중이나 세간 사람이나 가리지 않겠소.”

그러자 음흉한 이 스님, 절구통에 치마만 둘러도 사족을 못 쓸 판에 이게 웬 횡재냐 하고 크게 기뻐하는데

“그렇소. 그럼 아주 쉽게 처리할 수 있소. 그 송장 내가 치워 주고 나와 살면 어떻겠소.”

“내가 아까 한 말이니 다시 물어 뭘 합니까.”

스님이 좋아라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 꿩 먹고 알 먹고 둥지헐어 불 때자’ 중얼거리다가 양 갓 감투를 벗어 찢어 버리고 공단갓끈 금관자(金貫子)는 주머니에 떼어 넣고 장삼 벗어 띠로 묶어 어깨에 들쳐 멘다.

뭐 중에게 벗은 자식있나, 더벅머리 계집이 있나.

옹녀가 앞을 서고 대사는 뒤에 서서 강쇠 집을 찾아 가는데 좋아라고 하는 장난이 보통이 아니다. 하기사 부처도 여자 머시기 이야기만 나오면 웃는다더라.

이 스님의 행동 좀 봐라.

궁노루 있으면 향내 나고 똥파리 있으면 구린내 나는 법이다.

스님도 남자인지라 그 본능을 어찌하랴. 게으른 년이 일 제쳐놓고 보지털이나 세더라고 옹녀의 등덜미에 손도 씩 넣어보고 젖도 불끈 쥐어 보고 허리 질끈 안아보고 다리사이 엉덩이 밑에 번쩍거리는 대가리를 비비면서 손목 꽉 잡아보다가 결국 참을 수가 없자 계집한테 기갈이 든 놈처럼

“아무래도 못 참겠네, 우선 여기서 한번 하고 가세.”

이 놈 좀 봐라, 종년 간통하기는 누운 소 타기란 말이지?

잘하면 중신어미 잔등이에 거시기 박고 서서 똥 싸겠다. 그렇게 급하면 왜 외할미 한테서 안나왔나.

옹녀가 정색을 하면서 다시 스님을 나무란다.

“바삐 먹으면 목이 메고 급히 더우면 쉬 식는 법이오. 여러 해 주린 색심(色心) 아무리 급하다하나 죽은 남편을 방에 두고 새 서방과 그 짓하면 내 입장이 뭐가 되겠소. 다 돼 가는 일이니 마음을 조금 진정하시오.”

그 말을 듣고 스님이 대답하는데

“줄 바에야 홀딱 벗고 주라는 말이 있지만 듣고 보니 일인즉 그러하네”

수박 같은 대가리를 짜웃 짜웃 흔들면서

“십년공부 아마타불, 인간은 참 부처가 될 수 없어 삼생가약(三生佳約 전생, 현생,후생의 부부간의 깊은 약속) 우리 미인 가부처(假夫妻 가짜 부부)나 되어 보세”

55. 상말 가루지기 전

입맛나자 양식떨어졌다.

이윽고 죽은 강쇠가 있는 문 앞에 도착해

“시체가 있는 방이 어디요”

하고 묻자 여인이 가리키며

“저 방에 있소 만은 시체가 불끈 서서 죽어 형용이 아주 험악하니 단단히 마음먹고 놀라지 마시오.”

이놈이 여인에게 협기(俠氣)를 보이느라고 장담(壯談)을 하는데

“우리는 당최 겁이 없소.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삼경에 궂은비가 흩뿌릴 때도 무섭고 한기 어리는 적적(寂寂)한 천왕각(天王閣 사대천왕을 모신 집)에서 혼자 자는 사람이 바로 나요. 서있는 송장정도야 조금도 염려(念慮)할 것 없소.”

속으로 진언을 하면서 뒤 마려운 년 국거리 썰 듯 급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송장을 힐끗 보자마자 고개를 푹 떨어뜨린다. 그런데 중 버릇 어디갈라고, 중은 씹을 해도 무릎 꿇고 한다고 두 손을 합장(合掌)한 채 그 상태 그대로 문안 죽음으로 열반해버린 것이다. 하지도 못하는 놈이 잠방이부터 벗고 설친 것이다.

까마귀 짖는다고 범 죽을까 했더니 죽은 송장 보고 산 스님이 벌렁 나자빠졌다.

씹도 못하고 불알에 똥칠만 한 격이다. 복어 헛배만 부르다가 꺼졌다.

그때 옹녀가 강쇠 송장을 묶으려고 삼베와 하얀 한지 등을 챙겨 스님을 따라 뒤쫓아 들어가 보니 이런 허망한 일이 있나. 그렇게 호기 당당하던 스님이 벌써 극락왕생 송장이 돼 버린 것이 아닌가. 고르고 고른 것이 하필이면 되모시다.

옹녀가 깜짝 놀라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애고 이것 웬일인가. 누가 보리개떡을 떡이라 하며 의붓아비를 아비라 하랴. 좆도 모르는 놈이 탱자 탱자 하기에 대단한 놈인가 보다 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송장 치려다가 송장 하나 또 생겼네. 나를 보고 그렇게 꼴리면 오형제 신세나 질 일이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판에 송장 덧짐이 웬일인가“

역시 초장 끝 발 개 끝 발이로구나 하면서 옹녀가 방문을 쾅 닫고 뜰 가운데로 나가 홀로 퍼져 앉아 두 송장에게 푸념하며 신세타령하면서 운다. 정 떨어진 부부는 원수만도 못하다는데 하물며 죽은 송장 서방까지 이렇게 속을 썩일까.

“여보소, 변서방아, 어찌 그리 무정한가. 우리 처음 만난 후에 이곳저곳 다니면서 간신(艱辛)히 모은 돈 하던 잡기로 다 없애고 이제는 마음잡고 산중살이 하쟀더니, 멀쩡한 장승은 어이 뽑아다 패서 불을 땠나, 그 목신 동증으로 소년 죽음한 것, 이 모두 자네 스스로 저질은 죄일세. 사십구일동안 병구완할 때 내 간장이 다 녹았네. 험악한 저 시체를 나 혼자 어찌 할 수 없어 대로변에 가는 중을 간신히 홀려 데려왔네. 그리고 아직 이 몸을 그 중에게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그새를 못 참아서 강짜를 하느라고 송장치러 온 사람을 저 죽음 시켰으니 이일이 소문(所聞) 나면 어느 시러배 아들놈이 자네 송장 치겠는가. 송장만 쳐낸 후에는 자네 유언대로 수절(守節) 할 테니 다시는 강짜하지 말소.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이 치상을 뉘가 할꼬.”

55. 상말 가루지기 전

입맛나자 양식떨어졌다.

애절하게 우는데 뜻밖에 나무 탈을 쓰고 솟대나무 꼭대기에서 재주를 부리는 초라니 한 놈이 달려온다.

“여보시오. 날 보시오. 구름 같은 집에 신선 같은 나그네 왔소. 퉤,

옥 같은 입에 구슬 같은 말이 쑥쑥 나오오. 퉤,

이 개야, 짓지 마라. 낯은 왜 안 씻어서 눈 꼽이 다닥다닥 한 놈이,

나를 보고 짖느냐 니 할애비 보고 짖어라, 에이 퉤.”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나오듯 말은 잘한다.

아 이놈아. 개가 어딨어. 무슨 개가 있다고 개 타령이냐. 애 버릇하고 좆 버릇은 길들이기 나름인데 이놈 태생이 그 모양이라 아무데나 침을 퉤 퉤하고 뱉느냐. 아가리라고는 똥 묻은 개 아가리보다 더 더럽다.

이런 야단이 없다. 여인이 살펴보니 담비 벙거지 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통 장구에 적 없는 누비저고리, 때 묻은 붉은 전대(纏帶)를 제멋으로 어깨에 띠고 조개장단 주머니에 주황 실로 만든 매듭, 초록 낭릉(浪綾) 쌈지 차고, 청 삼승 허리띠에 버선코를 길게 빼어 오메장 짚신에다 푸른 헝겊 들쳐 메고 오십 개 살 늘어진 부채, 송화색(松花色) 수건 달아 덜미에 비슷하게 꽂고 앞뒤꼭지 뚝 내민 놈이 앞 살 없는 헌 망건에 자개관자 굵게 달아 당줄에 짓눌러 쓰고 굵은 무명 벌통 손(웃옷이나 창옷, 두루마기 따위의 두 소매 부리에 흰 헝겊으로 덧대는 소매)을 감추려고 한삼(汗衫) 무릎 아래 축 처지고 몸집은 짚으로 만든 동이 같고, 배통은 물 항아리 같으며 도리도리한 두 눈구멍, 납작한 콧마루에 주석(朱錫) 징을 총총히 박고 꼿꼿이 센 수염을 양편으로 펄렁 펄렁이며 반백(半白)이 넘은 놈이 목소리는 높고 크다.

이놈이 비지땀을 베옷에 씻으면서 헛기침 버썩 뱉으면서 말한다.

초라니가 한소리 한다.

“예, 오노라 가노라 하노라니 우리 집 마누라가 아씨마님 전에 문안 올리라는데 아홉 꼬장이, 평안 아홉 꼬장이, 이구십팔 열여덟 꼬장이 낱낱이 전하라 하옵디다. 당 동 당. 페.”

옹녀가 이를 보고 기가 막혀 초라니를 나무라며

“중매쟁이는 한 마디면 그만, 풍수는 두 마디면 그만인 거요. 아무리 초라니라 해도 어찌 그리 초라니 방정맞소. 남편 죽어 장례도 못 치루고 있는 마당에 장구소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오? 백정년 씹 구멍 좆이나 먹고 가시오. 이런 염통머리 없는 인간 같으니”

아니 이놈보소. 말이 안 통한다. 잘춘다 잘춘다 하니까 시아비 앞에서 속곳 벗고 춤추고 있다.

“예, 초상이 났으면 중복(重服)막이나 오귀(惡鬼)물림이 죽은 이의 넋이 좋게 되기를 비는 굿이오. 무당굿 열 두 거리 중 여덟 번 째. 잡귀(雜鬼) 잡신(雜神)을 내 솜씨로 없애 드리지오. 페. 당 동 당.

55. 상말 가루지기 전

입맛나자 양식떨어졌다.

정월 이월 드는 액(厄)은 삼월 삼일 막아내고 사, 오월 드는 액은 유월 유두(流頭)에 막아내고 칠, 팔월 드는 액은 구월 구일 막아내고, 시월 동지(冬至) 드는 액은 납월(臘月) 납일(臘日) 막아내고, 매월 매일 드는 액은 초라니 장고(長鼓)로 막아내세. 페. 당 동 당.

통영칠(統營漆) 도리 판에 쌀이나 몇 되 내어 놓고 명실과 명전(命錢)이며 귀 가진 저고리를 아끼지 마시고 어서어서 내어 놓소.”

제사덕분에 이밥 먹는다고 남의 집 초상에 목구멍 때 벗길 모양이다. 간다 간다 하더니만 애새끼 셋 낳고 간다더니 하는 꼴이 주둥이만 굴린다.

“여보시오. 이 초라니 양반, 집집 문전(門前) 돌아다니면 반겨 맞아 오라는 데 어디 있기나 있었소. 빨리 나가시오. 에이 개 망나니 새끼 같으니 ”

“그래 남들이 내 뒤 꼭지를 팍 지르면서 핀잔하고 악담 하는 것을 재미로 알고 다니는 나요. 당신이 몽둥이로 나를 친다 해도 못나가겠소. 박살(撲殺)을 낸다 해도 당연히 못나가지.”

하고 억지를 마구 쓴다. 하기야 개입에서 상아 나오겠냐마는. 십년과부 독사 안 되는 년 없다고 남편죽고 초상 치룰 일 생각하면 앞이 막막한데 초라니까지 방정을 떠니 독기가 오른다. 옹녀가 대답한다.

“중복(重複)막이 오귀 물림, 허, 정말 호강에 초친 소리요. 지금 내 형편에 남편까지 서서 죽은 송장이라 치울 사람 없어 어째야 할지 망막한데 당신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소. 사슴은 사향 때문에 죽고 사람은 입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는 걸 못들었소”

앙칼 없는 양반 새끼 없고 할퀴지 않는 고양이 새끼 없다. 옹녀의 화가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이꼴 저꼴 안 보려면 눈이라도 머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찌 그럴 수 도 없다. 헌데 이놈은 귓구멍에다 당나귀 좆을 쳐 박았나 들은 체 만 체 하는데 과객질에 이골이 난 놈이 어찌 그 말 한마디에 그만두랴. 그러나 순간 초라니가 그 소리를 알아듣고 좋아라고 장구를 두드리며 또 방정을 떤다. 새벽 좆 꼴리는 건 제 아비도 못 막는다 했는데 손으로만 주물럭 거렸지 수년을 굶었으니 어찌 이에 더하랴.

“죽었다. 사망이다, 돌아갔다. 사망이다. 발 뿌리가 사망이다. 불어왔다. 불어왔다 좋은 바람 불어왔다. 페. 둥 동 당.

재수 있네 재수 있네, 흰 고리눈 재수 있네. 복이 있네 복이 있네, 주석 코가 복이 있네. 페. 둥 동 당. 어제 밤 꿈 너무 좋아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이 댁 문전 찾아오니 주인 사망 터졌구나. 페. 당 동 당.

신사년(辛巳年) 괴질(怪疾)통에 험악하게 죽은 송장 내 손으로 다 치웠으니 이정도 서서죽은 송장은 누워서 떡 먹기라. 여보소 마누라 품삯 먼저 정하시오. 페. 당 동 당.”

55. 상말 가루지기 전

입맛나자 양식 떨어졌다.

변죽을 떠는 꼴이라니 개 씹도 모르면서 교장노릇이다. 지가 언제 송장을 치워 봤다고 좆 잡고 양산도 하고 있네. 하지만 씹 흉년 든 놈이 뭣인들 못하리오. 원래 혼자 사는 놈들이 제일 쉬운 일이 용두질, 다음이 비역질, 그 다음이 씹질이라 했다.

오랜만에 몸을 풀 기회가 왔는데 이를 놓치겠는가. 초라니 열은 보아도 능구렁이 하나는 못 본다고 옹녀가 보니 그래도 하는 품세가 귀엽기도 하다.

여인이 게으른 강쇠에게 간장이 다 녹다가 이 손님 초라니의 거동(擧動)을 보니 부지런하기가 비할 데 없다. 개 이빨에서 상아 나오겠냐마는 그래 니 꼴리는 대로 해봐라. 산중에서 생선 먹고 보릿고개에서 쌀밥 먹을 상이로구나. 이놈, 정녕 아니 굶겠구나 생각하고 대답하는데

“가난한 내 형세에 돈 없고 곡식도 없으니 치상을 잘 치러 주면 당신을 따라 부부가 돼 살아 주겠오”

초라니가 또 덤벙거리면서

“얼씨구나 멋있구나, 절씨구나 좋을씨고. 페. 당 동 당.

맛 속 있는 오입장이 일색미인(一色美人) 만났구나. 시체 방문 어서 여소, 내 솜씨로 쳐서 낼께. 페,당 동 당”

개가 똥 만났구나. 그래, 니 꼴리는 대로 한번 해 봐라 하고 여인이 얼른 방문 열어 주니 초라니 거동 좀 봐라. 강쇠 시신이 있는 방 문 앞에 서더니 몸단속을 매우 정갈하게 한다. 장고 끈을 졸라매고 장고 채 잡은 손에 힘을 단단히 준다. 험악한 저 송장을 제 고사(告祀)로 눕히려고 부지런히 서둔다.

“여보소 저 송장아, 이내 고사 들어 보소. 페, 당 동 당.

오행 정기로 생긴 사람 노소간에 죽어지면 혼령은 귀신되고 신체는 송장 되는 것이 당연이치인데 무슨 원통스런 한이 아직 남아 혼령이 안 떠나고 송장으로 뻣뻣이 섰노. 페, 당 동 당.

이내 고사 들어 보면 자네 원통 다 풀리리. 살았을 때 이승이요, 죽어지면 저승이라. 세상만사 뜬구름에 처자 어찌 따라갈까. 훼파은수(毁破恩讐 은혜와 원수로 허무러 짐. 곧 죽음.) 자세히 보니 옛 사람의 탄식일세. 페, 당 동 당”

그런데 갑자기 부드럽게 돌아가던 초라니의 장고 채가 굳어지면서 이젠 장고 소리마저 “꽁 꽁 꽁” 한다

초라니 거동 좀 보소. 금새 풀잎 같이 가는 초라니의 목이 축 처진다. 그렇게 날쌔게 놀던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고 등에는 줄줄 흐르는 땀으로 범벅이다.

가쁜 숨이 어깨춤에 턱에 채이고 한 다리는 오금이 절인다. 턱 밑에 장고 얹고는 망종(亡終)에 쓰는 한 마디말도 못한다. 그러다가 장구를 꽁치며 굳어져 죽어 나자빠진다. 마치 불에 탄 개 가죽 오그라지듯 쪼그라든다.

장난하다가 할망구 씹한다고 뭔가 되려나 했더니 초라니 방정 떨다가 숨이 넘어 간다. 이것 참 얼어 죽고 데어 죽을 노릇이다. 반풍수 집안 망치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지 목숨까지 잡아 간 놈은 이제 처음 본다. 그럼 그렇지 자라 좆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목구멍에 넘어가랴.

미운 년 치고 이쁜 짓하는 것 못보고 이쁜 년 치고 미운 짓 하는 것 못봤다. 초라니 하는 짓이 마치 그대로다. 여자는 남편 잘못만나면 죽 세끼에 매 세끼라더니 이거 송장이 널부러졌구나.

옹녀가 이를 보고 어이없어 깜짝 놀라 손바닥을 딱딱 치며

“또 죽었네, 또 죽었어. 방정맞은 저 초라니 자발없이 덤벙이다 허망하게 뒈져버렸네. 아이고 재수 더럽네 더러워, 고단한 이한 몸이 세 송장을 어찌 할꼬.”

옹녀가 못 피우는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먼 산을 멍청히 보고 앉아 있는데 함양 5일장이 파했는지, 흑산도 파시가 끝났는지 무수한 장돌배기들이 왁자지껄 지껄이며 들어온다.

뒤이어 풍각(風角)장이 한 패가 오는데 그 중에 앞선 가객(歌客)이 다 떨어진 통영갓에 벌이줄(물건이 버틸 수 있도록 이리저리 얽어매는 줄) 매어 쓰고 소매 없는 배중치마( 예전에 한직의 양반이 입던 웃옷의 하나. 넓은 소매에 길이가 길고 앞은 둘, 뒤는 한 자락이며 옆이 터졌음). 권생원(權生員)한테 얻어 입고 세목(細木)동옷, 때 묻은 건 모동지(毛同知)한테 얻어 입고 안쪽만 남은 누비저고리는 신선달(申先達)께 얻어 입고 다 떨어진 전등거리 송선달(宋先達)께 얻어 입고 부채를 부치되 뒤에 오는 놈만 시원하도록 펄럭거리면서 들어와서 말 하는데 말씨는 서울말에 충청도 금강(錦江) 이쪽이 섞인 어투였다.

이놈들 오는 꼴이 마치 썩은 고기에 쇠파리 꾀듯 꾸역 꾸역이다. 어찌 굶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까. 마치 주린 개가 뒷간 넘겨다 보듯 말한다.

“여보시오, 이 마누라, 댁 송장이 귀신 붙어 치워 줄 사람 없다 하는데, 내가 치워주면 나하고 살겠소 ?”

장인이 이년 하니 사위 놈도 이년 한다고 하더니 얻어먹는 놈이 부엌 먼저 쳐다보다니 염병 앓는데 까마귀 소리하고 자빠졌다. 처지가 이렇게 됐구나 생각하니 한심하다. 그래도 여인이 대답하는데

“무슨 재주라도 지니셨소 ?”

“예, 나는 소리꾼 명창(名唱) 가객(歌客)이오”

여인이 또 물어

“그럼 송선달을 아시오”

“예, 그게 내 제자요”

“그럼 신선달도 아시오”

“예, 둘째 제자지요”

“세상사람 하는 말이 목단(牧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송선달은 창가 왕으로 그 위에 윗수 없다는데 그 사람들의 선생이 되신다면 당신의 목소리 재주는 노래하는 사람 중에 으뜸인가 보오”

“남들이 다들 그렇다고 수근수근 한 답디다”

고양이 뿔난 소리하고 자빠졌네. 노루 때려잡은 막대기 석삼 년 우려먹는다고 자기 자랑이 한창이다. 오년전 봉평장에서 촌사람 하나가 아이구 정말 잘한다고하고 치켜준 것을 이제껏 울겨먹고 있다. 그 뒤에 빡빡 얽은 얼굴에 까맣게 눈이 먼 소경 퉁소쟁이가 퉁소를 손에 쥐고 온다, 차림을 보니 강경장(江景場) 넝마 큰 옷 뻣뻣하게 풀을 먹여 초록 실띠를 둘렀다.

다음에 오는 놈은 지팡이 막대를 잡은 열댓 살 거의 된 아이 놈으로 굵은 무명 홑 고의(袴衣) 길목 신고 모시행전(行纏), 홍일광단(紅日光緞) 둥근 주머니에 갈매 창옷, 송화색(松花色) 동정, 쇠털 같은 노랑머리 밀기름 칠 이마 재어 공단(貢緞) 댕기 벗게 땋고 검무(劒舞) 출 칼 가졌다.

뒤 따르는 가야금 타는 놈은 삐쩍 마른 중늙은이로 피골(皮骨)이 상접한데 목소리는 토질(土疾) 먹은 기침소리 같고 광쇠 치는 소리 같은데 얼마를 깎지 않았는지 긴 손톱 밑에는 검은 때가 꽉 끼었고 빈대 코에 코 거웃이 입술을 모두 덮은데다 떡메모자 대갓끈에 가야금을 메었다.

경상도 경주(慶州) 도읍(都邑) 그 시절에 난 것이라 복판이 좀이 먹고 토막 난 열 두 줄을 망건(網巾)당줄에 이어 매고 쥐똥나무 괘를 고여 주석 고리 끈을 달아 왼 어깨에 둘러멨다.

북 치는 놈 맵시를 좀 보자. 엄지러기 총각 놈이 여드름과 개기름이 용천뱅이 초 잡은 듯 짧은 머리 길게 땋고 날치기로 늙은 놈이 쳇 바퀴 열 두 도막 도막도막 주워 이어 노구녹피(老狗鹿皮 사슴 가죽처럼 부드럽게 다룬 개가죽)로 북을 매 쐐기 제껴 끈을 달아 양 어깨에 둘러메고 건들거리며 들어오는데 그놈들 모두 내가 해결하지 하고 장담을 서로 한다.

“송장이 어디 있소. 그까짓 거 쳐 내는 것이야 앉아서 똥 누기는 발허리나 시제”

미꾸라지 국먹고 용트림하고 있다. 옹녀가 말한다,

“그렇게 장담하다 실없이 죽은 사람 몇이 된 줄 모르겠소”

“그런 염려는 붙들어 매시오. 내 노래 한 곡조면 귀신도 울고 가오.

가야금 한소절에 진나라 미인 허청금(許聽琴)과 형장사(荊壯士)도 잡았으며 왕소군(王昭君) 출새곡(出塞曲)은 호인(胡人)도 눈물을 흘리고 옹문금(雍門琴) 슬픈 소리는 맹상군(孟嘗君)도 울었으니 내 또한 상심곡(傷心曲)을 처량(凄凉)하게 타고 나면 멋있는 저 송장도 나를 괄시하지 못할 것이오”

곧이어 퉁소쟁이가 하는 말이

“내 퉁소 부는 소리는 우는 듯 하소연하는 듯 슬픈 소리 제일이고 가을 계명산(鷄鳴山) 깊은 달밤에 장자방(張子房)의 곡조로다. 팔천 제자 흩어질 때 우미인(虞美人)은 목 찌르고 항우장사도 울었거늘 제까짓 송장이야 동지섣달 불강아지 이지”

이때 북치는 놈이 내 다른다,

“내 솜씨로 북을 치면 전단(田單)이 뙤 놈 칠 때 같고 전쟁터에 우뚝 서서 북 두드리는 소리 같소. 장익덕(張益德)이 고성현(古城縣) 관공(關公)의 용맹보고 북 세번 치던 소리와 흡사하니 제아무리 험한 송장이라 할지라도 쓰러지지 않고 베길 수 있나”

가재는 작아도 바위를 진다고 칼춤 추는 아이 놈이 양손에 칼을 들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면서 쌍칼을 사위 번듯번듯 둘러메고 한소리 한다.

“여보시오. 슬퍼하지 마시오. 이 소년 휘두르는 칼로 말 할 것 같으면 단칼에 백만명이 죽는데 홍문연(鴻門宴) 큰 모임에 항장(項莊)의 날랜 칼도 나를 당할 수 없고 양소유(陽少游 김만중 소설 구운몽의 주인공)와 전쟁 중에 심오연(沈烟 구운몽의 한 인물. 양소유의 일곱 번째 부인)의 추던 춤도 내게 비하지 못할 테니 송장 치기 두말 있소. 송장 방이 어디 있소. 말만 하시오”

처녀는 밑구멍 찢어지고 과부는 입 찢어지게 자알 한다. 암캐 수캐 노는데 청 삽살개 못 놀까. 누구라 할 것 없이 제 좆 꼴리는 대로 한마디씩 하며 제 자랑이 한창이다.

구운몽은 조선 후기의 산림(山林) 학자 이재(李縡)의 삼관기(三官記)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서포 김만중이 모친을 위로하기 위해 구운몽을 지었다라고 밝혔다.

구운몽은 1687년(숙종 13) 9월부터 이듬해 11월 사이에 작자가 선천(宣川) 유배지에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하는데 어느쪽이 앞선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내용은 당(唐)나라 때 천축(天竺)으로부터 육관대사(六觀大師)라는 고승(高僧)이 중국에 와서 큰 절을 세우고 제자를 모아 불도(佛道)를 강론(講論)한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가 성진(性眞)이었다.

어느 날 성진은 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가게 되는데 용왕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술을 몇 잔 마시고 돌아온다.

한편 선녀 위진군(魏眞君)은 팔선녀(八仙女)를 대사에게 보내 약간의 보물을 선사한다. 길 중간에서 팔선녀와 성진이 만나게 되어 서로 희롱하다 돌아온다.

절에 돌아온 성진은 선녀들을 그리워하며 속세의 부귀영화만 생각한다. 끝내 그는 죄를 얻어 지옥에 떨어지고 다시 인간 세상에 환생해 양소유가 된다.

한편 팔선녀도 같은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각각 다시 세상에 환생한다.

양소유는 차례로 그들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게 된다. 드디어 벼슬은 승상에 이르고 두 부인과 여섯 낭자를 거느린 양소유의 화려한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아 이제는 승상의 벼슬에서도 물러나 한가히 여생을 즐기던 양소유는 어느 가을날 두 부인과 여섯 낭자를 거느리고 뒷동산에 올라갔다가 문득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이때 한 노승을 만난다. 때마침 찾아온 어느 고승에게 불도(佛道)에 귀의할 뜻이 있음을 말하자 그 도승은 쾌히 승낙하고 짚고 온 지팡이로 난간을 두드린다. 그러자 모든 것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손에 백팔 염주를 들고 있고 까칠까칠한 중의 머리를 한 자기자신(성진) 뿐이었다.

당황한 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귀영화는 하룻밤 꿈이었고 자기는 분명히 연화 도량(蓮花道場)의 성진이었다. 꿈을 깬 성진은 황망히 대사 앞에 뛰어가 엎드린다. 팔선녀도 이어 들어와 제자 되기를 청한다. 후에 대사는 도(道)를 성진에게 물려주고 천축으로 돌아간다. 팔선녀는 성진이 앞에서 계속 도를 닦아 후에 아홉 사람은 모두 극락세계로 갔다고 한다.

강쇠 죽은 자리에 모인 장돌배기 놈들이 제각기 재주를 자랑하니 옹녀가 생각하기를 모인 사람들이 여럿이요, 각자 재주가 저만하니 송장 서넛 치워내기는 염려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돗내기로 주면 다리부러질까 무섭고 날일로 주면 삽에 뿌리내릴까 겁난다. 그래서 하는 말이

“여보시오, 저 손님네들, 송장을 먼저 보면 아마도 기가 막힐 테니 시체가 있는 방문을 닫아 놓고 저기 툇마루에 쭉 늘어앉아 각각 자기 재주자랑을 하면 멋있고 풍류하는 송장이라 감동해 들어 누울 것이요. 눕거든 그때 묶어내기 쉬울 테니 그러면 어떻겠소”

“ 좋소. 그러는 게 좋겠소”

굿 집에 악기장이 모습으로 모인 사람들이 마루에 늘어앉자 칼춤 추는 놈이 일어서서 여민락(與民樂 나라에 잔치가 있을 때 전후부의 고취가 아뢰는 아악의 일종) 심방곡(心方曲)을 부르며 한참 재미있게 노는데 송장이 있는 방에서 찬바람이 스르르 일어나면서 쌍창문이 저절로 열린다. 이 바람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온몸에 소름이 오싹해진다. 이어서 쏟아지는 독한 냄새가 코 찌르니 열린 문으로 송장을 먼저 본 사람들은 그저 놀라 제 스스로 다 죽는다.

그다음 가객이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나오듯 노래를 하는데 부르는 게 초한가(楚漢歌)다.

“오늘날 영웅 장사들아, 초한 승부 들어보소. 뛰어난 힘 부질없고 민심 순응 으뜸일세. 한나라 패공(沛公)이 십만대병(十萬大兵)거느리고 구리산 밑 십사면에 대진을 둘러친 후 초 패왕(覇王)을 잡으려 할 때 거리 마다 말 탄 병사, 산 마루마다 복병(伏兵)이라”

하면서 부채를 쫙 펼치는데 하던 지랄도 멍석 펴주니 않는다고 그 순간 숨이 딸각하고 멎는다. 마치 찬물에 좆 줄 듯 해버린다. 이어서 가야금 타는 사람이 짝 타령을 타는데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荒城 虛照碧山月)이요, 고목(古木)은 진입창오운(盡入倉梧雲 허물어진 성에 신선이 사는 곳의 달이 헛되이 비치고 고목은 창오산의 구름에 가리워졌다는 뜻)이라 하던 이태백(李太白)으로 한 짝. 삼년적리관산월(三年笛裡關山月)이요, 만국병전초목풍(萬國兵前草木風 두보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라 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 짝. 둥덩덩 지둥 덩둥”

하더니 그만 내쉬는 숨이 바로 식어 버린다. 열가지 재주 가진 놈 저녁꺼리가 신통치 않다고 재주는 좋은데 결실이 없다.

얼마동안 씻지 않았던지 북치던 늙은 총각의 숯쟁이 좆 대가리 같은 손은 뻣뻣해져 다시 치는 소리가 없고 칼춤 추던 어린아이는 오도 가도 못하고 선 자리에서 움쩍 달싹 못한 채 서 있다.

잉어가 뛰자 망둥어도 뛴다고 제 욕심껏 퉁소 불던 얽은 봉사는 송장 낯을 못 봤으므로 자기가 죽을 차례지만 죽지 않았다. 봉사가 멀어버린 눈을 번득이며 새타령 조 곡을 퉁소로 불며 춤 장단에 맞추는데 무서운 기운이 왈칵 들고 소름이 끼치면서 독한 내가 코 속을 콱 지르니 숨을 내 뱉는 힘이 점점 사그라들어 그만 스스로 넘어진다. 꽃 탐하는 나비 거미줄에 잡혀 죽더라.

옹녀는 기가 막혀 울음이 안나온다. 또 사지에 힘이 쭉 빠져 나른해진다.

송장 치러 온 놈들이 오기만 하면 다 죽어 나자빠진다. 쇠똥에 미끄러지고 개똥에 코 박혔다. 글 못하는 선비에 활 못쏘는 한량이라더니.

아이고 이를 어찌 할꼬. 주책없는 놈 장날 말 좆 지고 간다더니 뭔가 한수 베푸는가 했더니 모두가 송장이다. 어장이 안 되려니까 해파리만 한 그물이다.

복없는 봉사는 괘문(卦文)을 배워도 개젓머리 하는 놈도 없다더니 이것들 시체를 앉은 채로 여기다 뒀다가는 어떤 사람이 와서 보아도 놀라 도망갈 것 같다.

고비에 인삼, 계란에 유골이요 기침에 재채기에다 하품에 딸꾹질, 엎친데 덮치기에 잦힌데 뒤치는 격이다. 어장이 안 되려니까 해파리만 들끓는다.

어쩔 수 없이 시체 모두를 방안에다 감추려고 하나씩 고이 안아 동 서편 두 벽 밑에 차례로 앉혀 놓으니 앉은 것은 명부전(冥府殿)에 들어온 염라대왕 모습이다.

사람죽은 초상집이라 상자(喪字)를 써서 대문 앞에 거는데 시체가 여덟이니 팔상전(八喪殿)이다. 재수 없는 년은 재가를 해도 고자서방이요 복 없는 장님은 점을 배워도 고뿔 앓는 놈조차 없다고 한다.

옹녀가 기가 막혀 시체가 있는 방문을 닫고 대문간에 기대서서 대로변을 바라보면서 어거 장 쏟고 보지 덴 년 여기 있다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 하나가 맛있는 궐련 하나를 물고 권생원 비슷하게 지나간다, 이를 본 옹녀는 급하게 그를 부른다.

“이보시오, 가는 손님. 지금이 어느 때요, 하사월(夏四月) 초파일(初八日)에 남쪽제비 펄펄 날아드는데 해 저물어 어둔 산길 따라 어딜 그리 가시오”

나그네가 말이 없자 또 넋두리를 한다.

“천지로 장막(帳幕) 삼고 해와 달로 등촉(燈燭) 삼고 남의 집 내 집 삼고 가는 길 노자(路資)되고 멍석자리 등에 메고 꿰질러 다니다가 달 밝고 바람 찬 밤 광충 다리 홀로 서서 이내 신세 곰곰히 생각하니 팔만장안(八萬長安) 억만가구(億萬家口) 방방곡곡(方方曲曲) 가가호호(家家戶戶) 다 돌아다녔어도 이같이 알 수 없는 귀신 아들 놈 팔자 또 어디 있을꼬. 애고 애고 설운지고”

고비에 인삼, 계란에 유골이요, 기침에 재채기, 하품에 딸꾹질, 엎친데 덮치기에 잦힌데 뒤치는 격이다.

으스러지게 울부짖으면서 방문 앞으로 돌아 들어온다. 인간사 뒤에 오는 호랑이는 속여도 오는 팔자는 못 속이는 법이다.

그때 산 쇠털벙거지를 넓은 끈으로 졸라매고 마가목 채를 등덜미에 꽂고 때 묻은 고의적삼 육승포(六升布 엿새 베)와 온골전대를 허리에 잡아매고 발 감기를 곱게 해서 짚신을 둘러 맨 키는 장승같고 낯은 징 짝 같고 눈은 화등잔(火燈盞)만 하고 코는 메주덩이, 입은 싸전 장되, 발은 동작(銅雀)이 거루선만 한 놈이 오는데 초라니 탈 안 썼어도 천생 말뚝이 모습 그대로다. 마치 말대가리를 설 삶아 놓은 것 같다. 그놈이 여인을 한번 훑어보고는 이거 알 먹고 꿩 먹고 둥지가지고 불 때는 일 생기겠다 하면서 침을 흘린다. 황소 불알 떨어지기 바라고 장작 짐지고 다녔던 모양이다. 남의 씹 크다니까 말뚝 갖고 덤비고 양반 못된 것이 장에 가서 호령한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큰소리로 묻는다.

“이런 지미럴, 당신이 낭군 송장 치워 주면 둘이 같이 살자고 하는 마누라요”

“그러하오”

여인이 간신히 대답한다,

“그 지미럴 , 송장이 어떻게 죽었단 말이오”

이놈이 입만 벌리면 입에 욕이 붙었다. 평소 빌어먹은 놈이 입이라도 조심해야지 이렇게 욕지꺼리 하다가는 어느 시러베 아들놈이 동냥밥이라도 주겠는가. 이놈은 원래 계집타기를 누운 소타듯 하던 놈이다. 이놈이 곧 불끈 일어서서 두 주먹 불끈 쥐고 곧바로 웃으면서

“누구를 콱 치려고 두 다리 벋디디고, 누구를 탁 차려고 두 눈을 딱 부릅떴소. 에게, 그것이 용천병이 들었다면 그도 그렇겠지. 그래도 좋소. 집에 갈퀴 있소”

“예, 있소”

“그 놈의 눈구멍을 내가 안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웃 눈꺼풀을 긁어 덮을 테니 마누라는 밖에 서서 갈퀴가 눈꺼풀에 닿거든 됐다고 말하시오”

미련이 담벼락 뚫는다고 이 놈이 갈퀴 들고 시체방에 들어가서 고개를 푹 숙인채 두 손으로 갈퀴를 들어 강쇠 송장의 눈에 대고

“닿았소?”

여인이 뒤에 서서

“조금 올리시오”

“닿았소?”

“조금 내리시오”

“닿았소?.”

“이젠 됐소”

딱 잡아 긁었는데 반풍수 집안망치고 선무당 사랍잡는다고 손이 조금 미끄러지는 바람에 아래 눈꺼풀을 긁어 버렸다. 그러자 문둥이 죽이고 살인낸다더니 눈알이 툭 불거져 앙하고 호랑이 눈알 같이 튀어 나온다. 가만히 쳐다보던 이 놈이 깜짝 놀라 갈퀴를 내버리고 바로 뛰어 도망가는데 그 모양이 마치 그물에 갇힌 숭어 뛰듯, 선불 맞은 호랑이 내달리 듯, 낮거리 하다 들킨 놈처럼 그냥 들고 째는 것이다.

사람은 급하면 변절을 하고 개는 급하면 담을 뛰어넘는다. 소나기는 쏟아지고, 똥은 마렵고, 허리띠는 옹치고, 꼴짐은 넘어가고, 소가 콩밭으로 뛰는 꼴이다.

옹녀가 깜짝 놀라 황급히 급히 쫓아가며

“여보시오, 저 손님네, 말씀이나 하고 가오”

그 놈이 손을 휘저으며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나 돌아가오, 나 돌아가오.

옛말에 위험한 곳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했소, 잘못하면 억새풀에 좆 벤 꼴 나겠오. 나 돌아가겠오”

염병 앓는데 까마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사내 못난 건 거시기 대가리만 크고 계집 못난 건 젖통만 크다고 했던가 별 볼일도 없는 놈이 설쳐대다가 내빼는 건 도대체 무슨 모양새인가.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기개는 마치 찬물에 좆 줄 듯 오그라졌는가. 그래도 여인이 계속 부른다 이거 산 닭주고 죽은 닭도 못 바꾸겠다.

“송장 치우라고는 안 할테니 말만 잠깐 듣고 가시오”

꽃 같은 저 미인이 옥 같은 목소리로 따라오며 간청하니 오입깨나 한 놈이라 어찌 할 수가 없다 돌아서서 묻는다.

“무슨 말씀 하시려고”

여인이 하는 말이,

“길가에서 남녀가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니 우선 내 집으로 들어가 딴방에서 잠이나 자고 가시오. 내가 이토록 외롭고 쓸쓸하니 밤에 말벗이나 하다 가시오”

뭔 산중에 오가는 사람 있다고, 말을 그렇게 하는지, 원 나 참

그래도 반반한 여인이 사정사정하는데 그냥 갈 놈 어디 있을 까. 그 놈이 그 말을 듣고,

“좋소. 그리 합시다”

허락하고는 여인의 손목 잡고 정담을 나누며 도로 오는데 여인이 자세히 묻는다

“어디 사시고 성함은 누구신데 어디로 가시다가 내 집을 어찌 알고 이렇게 수고스럽게 오셨오”

저 놈이 대답하는데

“예, 나는 서울 사는 뎁득이 김가로 재상댁(宰相宅) 말부리는 마종(馬從)이오. 경상도 쪽에 좋은 말이 있다기에 그리로 가다가 천하일색 마누라의 남편이 험한 꼴로 비명횡사했는데도 초상을 치루지 못하던 차에 치상 치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아준다고 하는 말이 삼남 천지에 떠들썩하고 사람마다 말하기에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왔소”

얼마 전에 이런 말이 있다. 중국 갔다 와서 장군 못된 건 병신이요, 미국 갔다 와서 박사 못된 건 병신이요, 군정청 드나들고 감투 못쓴 건 병신이라 했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 남편 잃고 혼자 있는 여자 건들이지 못하면 그것도 병신이겠지,

여인이 또 묻는다.

“서울 사시고 신수 저리 건장한데도 그만 송장 치룰 것을 염려하여 버리고 가시는 것은 내 얼굴이 너무 못나 당신 눈에 아니 드시기 때문이오. 당신같이 훤출한 장사가 물렁 팥죽 그리 같아서야 어디 쓰겠오”

죽는 년이 보지 감출까. 속으로는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만 하고 있구나 하면서도 은근슬쩍 뎁득이를 떠본다. 뎁득이가 이 말 듣고 여인의 등을 치며 오입쟁이는 인물을 가리지 않고 주객은 청탁을 가리지 않는 법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리오. 천부당 만부당 한 말이오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범을 보면 무섭고, 범 가죽을 보면 탐난다고 당신 같은 미인을 보면 정이 생겼다가도 방안에 있는 저 송장을 보면 있던 정도 떨어지오”

말솜씨 좋은 옹녀가 슬쩍 건드린다,

“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시켰다는 말과 죽은 황진이가 산 임제를 잡았다고 하는 말을 옛글로만 들었더니 저렇게 풍채 좋은 사람이 그래 송장에게 쫓겨 도망간단 말이오, 그래 가지고 어디 남자 행세할 수 있겠소. 요강 뚜껑으로 물을 떠먹은 거 같이 일처리를 그렇게 하면 어쩌란 말이오. 불쌍한 이내 신세 버리고 가신다면 그 고통 못참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릴텐데 당신은 불쌍하지도 않으시오.

날 살려주시오, 날 살려 주시오. 한양 낭군 날 살려 주시오. 만일 꼭 가려고 한다면 나를 먼저 죽이고 가시오”

옹녀가 한말은 원래 사제갈주생중달(死諸葛走生仲達)이란 말이다. 이 말은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는 뜻이다.

후한 말의 일이다. 234년 기산(祁山)에서는 촉나라 제갈공명과 위(魏)의 사마중달의 결전이 벌어졌다. 제갈공명 못지않게 지장이었던 사마중달은 촉의 군대가 원정을 왔기 때문에 보급로가 멀어 지구전으로 끌고 가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끈다. 이에 대해 제갈공명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회를 잡아 위나라 군대를 단번에 쳐부수려고 벼르고 있었다.

제갈공명은 위수 남쪽 오장원(五丈原)에 진지를 옮겨놓고 사마중달을 꾀어 내 격멸해버릴 계획을 세운다. 그때 공명은 중달의 하는 짓이 사내답지 못하다고 비난해 약을 올려 격분한 중달이 싸움을 시작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사자를 보내 공명의 동태를 살피는데 중달의 사신은 뜻밖에도 태연히 공명의 식사와 건강에 대해서만 묻는다. 공명 측에서는 사자에게 공명은 쉬지 않고 일하며 끼니는 아주 조금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말했다.

사자가 돌아온 후 중달은 공명이 그런 격무를 보면서 그렇게 먹는다면 아무래도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해 8월, 가을이 깊어갈 때 중달은 어느 날 큰 별 하나가 꼬리를 길게 끌며 하늘을 달리더니 촉군의 진지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중달은 무릎을 쳤다. 공명이 죽었다거나, 최소한 큰 불행이 닥친 징조가 분명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달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총공세를 감행할 준비를 갖추도록 명했다. 그때 공명은 정말로 임종을 맞이하고 있었다.

공명은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마지막 계책을 지시했다. 그것은 나무를 깎아서 자기와 똑같은 목상(木像)을 만들어 수레에 싣고 마치 자기가 진두지휘를 하는 듯이 보이면서 퇴각하라는 것이었다. 이 지시를 마치고 공명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중달은 대군을 몰아 촉의 진지로 쳐들어갔으나 진지 안이 평온한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척후병을 보내 염탐을 해보니 촉군은 후퇴 준비를 은밀히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때가 왔다고 생각한 중달은 그야말로 질풍같이 군대를 몰고 쳐 들어갔다.

그러나 촉의 진지에 뛰어들어 보니 뜻밖에도 진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퇴각하고 있을 촉군을 뒤쫓기 위해 달렸다. 그런데 순간 불현듯이 앞산 그늘에서 촉군의 깃발이 무수히 흔들리며 나타나더니 천지를 진동하는 북소리와 함께 촉군이 뛰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얼른 보니 번쩍이는 수레 위에서 촉군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공명이 아닌가.

뜻밖에도 사기충천해서 노도같이 덤벼드는 적군과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공명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는 데에 중달은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달은 곧 촉군을 뒤쫓기를 포기하고 달아나고 말았다.

이를 본 당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고 하면서, 사후에도 빛나는 제갈공명의 지혜와 용맹을 찬양하고 겁 많은 중달을 비웃었다.

또 죽은 황진이가 산 임제를 잡았다고 하는 이야기의 연유는 바로 이렇다.

평소 황진이를 존경하고 사모했던 임제가 황진이의 무덤가에 술잔을 올리며 시조한수를 읊는다. 사실 황진이는 임제보다 10 여세가 위였고 살아서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다.

“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쳤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

당시 임제는 조정의 관리였다. 이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관직에 있는 자가 천한 기생의 무덤에 술을 부었다고 해서 관직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죽은 황진이가 산 임제를 잡았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옹녀가 뎁득이의 허리를 질끈 안고 눈물을 흘리며 온갖 어리광에 백만교태(嬌態)를 다 부린다. 과부 년 말 좆 달랜다고, 서방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제 버릇 개 줄까 온통 머리 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하다.

과부년 말 좆 달란다는 말에는 이런 유래가 있다.

어떤 과부가 두부 한 모를 사가지고 오는데 길가에서 암말, 수말 두 마리가 얼러붙어 홀레를 하고 있었다. 얼이 빠져 구경하던 과부는 말이 하는 대로 두부를 쥐었다 놓았다 하다보니 두부가 다 망가져 버렸다. 할 수 없이 다시 두부 집을 찾아간 과부는 어떨 결에 두부 달란다는 말이

“여기 말 좆으로 싱싱한 놈 한 모 주시오”

라고 말해버린다. 두부집 영감이 아니 이게 대관절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묻자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든 과부는

“ 에이고 망칙해라 내가 말 좆 달래는 걸 두부 달라고 했나봐. 어서 말 좆 하나만 퍼뜩 주시오” 하더라나.

이쁜 년 미운 짓 않고 미운 년 이쁜 짓 않는 법. 여인의 속셈을 모르는 뎁득이는 서울사내라 그래도 보고 들은 것은 있어 뒤 허리에 찬 전대 풀어 눈물을 씻어준다. “울지 마오, 울지 말아요. 안 가오, 아니 가오. 죽으면 내가 죽지 당신까지 죽게 하겠소”

사내 놈이라면 모름지기 의리는 태산 같고 죽음은 깃털 같아야 하는 법이다. 뎁득이가 집안으로 들어오며 한참 생각하다가 말하는데

“혹시 집에 떡메 있소”

범 본 여편네 문구멍 틀어막듯 떡메가지고 되겠소 하면서

“떡메는 뭣하게요”

“싸움이라는 건 차라리 지혜로 싸우는 것이지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미쳐 생각을 못 했소”

옹녀가 떡메를 내 주니 뎁득이가 대뜸 둘러메고 집 뒤로 돌아가서 주해(朱亥)가 진비(晉鄙) 치듯, 경포(京布)가 함관(函關) 치듯, 뒷벽을 쾅쾅 치니 벽이 무너지고 이무너진 벽에 강쇠 송장이 치여 덜퍽하고 넘어진다. 뎁득이가 좋아라 하면서 땀을 씻으며 호기스럽게

“제깟 놈이 감히 어디라고”

옹녀는 뎁득이가 땀을 흘리자 부채질을 해준다.

뎁득이가 넘어진 송장을 묶어 내려 하는데 아무리 장사기로 소니 송장 여덟을 간신히 묶기는 했어도 짊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근처 마을에 내려가 삯군을 얻으려고 하는데 마침 각설이패 셋이 몰려온다.

온 머리를 다 둥쳐 메고 옆에 약간 남은 털로 감이상투 엇게 해서 이마에 척 붙인 모양새다. 이놈들은 영남의 장돌림이라 영남장(嶺南場)만 돌아다닌 놈들이다.

“떠르르 돌아왔소, 각설이라 멱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뚤뚤 몰아 장타령(場打令) 안경(眼鏡) 주관(柱管) 경주장(慶州場), 상복 입은 상주장(尙州場), 이 술 잡수 진주장(晋州場), 관민 서로 분수 맞는 성주장(星州場), 이랴 재쳐 마산장(馬山場), 펄쩍 뛰어 노니 노리 골 장, 명태(明太) 옆에 대구장(大邱場), 순시(巡視) 앞에 청도장(淸道場)”

한 놈은 옆에 서서 입장구 낑낑 치고 다른 한 놈은 옆에 서서 살만 남은 헌 부채로 제 뒤 꼭지를 탁탁 치며 두 다리를 비스듬히 하고 허리 짓 고개 짓을 해댄다.

“잘한다, 잘한다. 초당 짓고 한 공부냐, 실수 없이 잘도 한다. 동삼 먹고 한 공부냐, 기운차게 잘도 한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한다. 뱃가죽도 두껍다, 끝이 없이 나온다. 네가 저리 잘할 때에 네 선생은 할 말 있나. 네 선생이 나로구나. 잘한다, 잘도 한다. 대목장에 목 쉴라. 조금 쉬었다 더 하거라, 잘한다. 잘도 한다. 너 못하면 내가 하마”

여인이 묻는 말이

“목소리는 명창이나 우리 집에 송장이 많아 지금 묶어 내려 하니 함께 묶어 내주면 삯을 충분히 줄 테니 어찌 생각 없소”

저 놈들 하는 말이

“송장을 쳐 내면 천상에 선녀 같은 여인하고 살수있다기에 짚신짝 떼 붙이고 불알에서 요령소리 나도록 애써 애써 쫓아 왔더니 벌써 남의 손에 떼였구나. 어짜피 이곳에 왔으니 송장이나 지고 가겠소. 송장 하나에 삯이 닷 냥, 술, 밥, 고기는 별도이니 잘 먹여 주시오”

여인이 허락하니 네 사람이 송장을 치우는데 한 등짐에 두 놈씩 공석으로 곱게 싸서 세 죽마다 태 줄로 단단히 얽은 후에 짚으로 밖을 싸서 새끼로 꽁꽁 묶어 새벽달 지기 전에 네 놈이 짊어지고 길을 나선다.

여인이 뒤를 따라 북망산(北邙山)을 찾아가는데 이놈들이 목소리를 모아 어화성( 상여군들이 상여를 메고 가며 외치는 소리). 어화성 소리친다 목소리 또한 어울러 행색이 처량하다.

“어이 가리, 너허 너허. 연반군은 어디 가고 담뱃불만 밝았으며 행자곡비(行者哭婢장례 때 상제를 모신 사내 하인과 말을 타고 행렬의 앞에 가는 계집 종) 어디 가고 두견이만 슬피 우노. 어허 너허.

명정(銘旌), 공포(功布) 어디 가고 작대기만 짚었으며 앙장(仰帳) 휘장(揮帳) 어디 가고 헌 공석을 덮었는고. 어허 너허. 장강틀은 어디 가고 지게송장 되었으며 상제(喪制) 복인(服人) 어디 가고 미인 혼자 따르는고. 어허 너허.

북망산이 어떻기에 만고영웅 다 가시노. 진 시황의 여산 무덤, 한 무제(武帝)의 무릉(茂陵)이며 초 패왕의 곡성(穀城) 무덤, 위 태조의 장수총(將帥塚 무덤)이 다 모두 북망이니 생각하면 가소롭다. 어허 너허.

너 죽어도 이 길이요, 나 죽어도 이 길이라. 북망산천 돌아들 때 어욱새 더욱새, 떡갈나무 가랑잎, 잔 빗방울, 큰 빗방울, 소소리바람 뒤섞이어 으르렁 시르렁 슬피 불 때 어느 벗님 찾아오리. 어허 너허.

주부도(酒不到) 유령(劉伶) 분상토(墳上土)요, 금인(今人)이 경종(耕種)이라. 신릉(信陵) 분상전(墳上田)도 번화 부귀 죽어지면 어디 있나. 어허 너허.

지고 가는 여덟 분이 모두 다 호걸이라 기주탐색(嗜酒耽色 술을 즐기고 여색에 빠짐.) 풍류가금(風流歌琴) 청누화방(靑樓花房) 어찌 잊고 황천 북망 돌아 가노. 어허 너허”

한참을 지고 가니 무겁기도 해서 길가 언덕을 보니 쉴 자리 아주 좋다.

네 놈이 함께 쉬어가려고 지게머리를 서로 대 일자(一字)로 세우고 어깨를 빼려 하는데 그만 땅하고 송장하고 짐꾼이 서로 꽉 붙어버렸다.

십년과부가 고자 영감 만난 다더니 아니 학질 벼랑밀이다.

이말은 학질은 놀래키면 떨어진다는 말을 누가 듣고 학질 걸린 아이를 벼랑에서 겁을 주는데 잘못해서 떨어뜨려 버렸다. 그래서 학질은커녕 아이까지 죽고 말았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네 사람이 어찌 할 수도 없어 서로 보며 통곡한다.

“애고애고 어찌 할꼬. 억새풀에 자지 베였네. 천개지벽(天地開闢)한 연후에 이런 변괴 또 있을까. 한 번 앉은 후에 다시 일어 설 수 없으니 그림 가운데 사람인가, 법당에 부처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오라는데 없어도 갈 데 많은 우리인데 이를 어찌 하려는가,

뎁득이 자네 역시 그 신세가 말 아니네, 고향에는 언제 가고, 각설이 우리 사정 대목장을 어찌 할꼬. 애고 애고 설운지고.

여보시오 저 여인네, 이게 다 뉘 탓이오. 죄는 내가 지었으나 벼락은 네가 맞아라하고 굿만 보고 앉았으니 그런 인심 있는가. 주인 송장, 손님 송장이 여인 말은 들을 테니 빌기 나 좀 하여 보소”

여인이 빌기 시작한다.

“여보시오 변 서방아, 이것이 웬일인가. 험악하게 죽은 송장 방안에서 썩을 것을 이 네 사람 공덕으로 염습(殮襲)한 후 짊어졌소. 가만히 누웠으면 명당자리 깊이 파서 그 신체를 묻어 줄 건데 아이 밸 때 덧 궂으면 날 때도 덧 궂다고, 갈수록 이 무슨 변괴요. 이래가지고 어찌 사람이 살겠는가. 집에서 하던 변은 우리끼리 봤다해도 이런 대로변 이 우세를 도대체 어찌할꼬. 날이 점점 밝아 오네, 어서 급히 떨어지소. 안장(安葬)을 한 연후에 수절시묘(守節侍墓)하여 줌세”

뎁득이가 다시 한번 간절히 말하는데

“내가 저 여인의 치마 귀 만 만졌어도 가죽 벗긴 송아지 새끼요. 우리가 없었으면 어찌 발상(發喪)이라도 했을 것 같소”

여인이 계속 비는데

“대사(大師), 초라니, 풍각(風角)님 네 다 각기 제 맛에 겨워 이 지경이 됐는데 무슨 원수를 갚는다고 이 우세를 시키는가. 청산에 안장할 때 하관시간 늦어지니 어서 급히 떨어지소”

아무리 애걸(哀乞)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날이 훤히 새자 뎁득이가 네 담 아니면 내 쇠뿔 부러지겠냐 하면서 하는 말이,

“배고파 살 수 없네. 여인은 바가지 들고 동네로 다니면서 밥을 많이 얻어다가 우리들이 먹게 하고 오는 길에 짚 두어 묶음 얻어 오소”

“짚은 뭣하게”

“몇 해가 걸리든지 목숨 끊어지기 전까지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비 오면 상투 덮을 주저리나 틀어 두려고 하네.”

한데 앉아서 응달 걱정한다. 그러나 뒈지는 년이 밑구멍 가리겠냐. 구걸이라고는 한번도 안해 본 옹녀가 그저 뎁득이 말을 따라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옹녀를 보낸 후에 송장 짐 진 놈들이 각각 자신의 설움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들 앉은 곳이 참외 원두(園頭) 막 근처인데 아직 원두막은 짓기 전이다.

밭 임자 움 생원(生員)이 집에서 잠을 자고 밭일 보러 새벽 일찍 나온다.

움생원이 먼지 낀 낡은 관을 돛 단 듯이 높이 쓰고 진동 좁고 된 깃 단 저고리와 소매 좁은 소창의, 굽 다 닳은 나막신에 긴 담뱃대 가운데를 움켜쥐고 논에 물을 트거나 막을 때 쓰는 긴 대살보를 짚고 오다가 자기네 참외 밭머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쫒아 오면서 큰 소리로 악을 쓰면서 소리친다.

“아니 네 이놈들, 웬 놈들이냐”

참외 원두막 3년이면 친정엄마도 몰라본다고 혹시나 공으로 참외 달라는 놈들인가 싶어 화를 내며 묻는다. 그러자 뎁득이가 대답한다.

“우리는 담배 장사요”

“그 담배 맛 좋으냐”

“전북 정주군 상관에서 생산되는 담배로 십상 좋은 상관초(上關草)요”

“한 대 떼어 맛 좀 보자”

“와서 떼어 잡수시오”

움생원은 제 것 아니면 남의 밭머리 개똥도 안 줍던 사람이다.

그런데 까마귀가 오디 싫달까, 사내가 계집 마달까, 망신살이 뻗치면 제아비 함자도 생각이 안난다고 남이 자기를 속이리라 생각하지 않은 움생원이 담배 욕심이 잔뜩 나서 곧바로 달려들어 손을 쑥 넣으니 독한 내가 코 쑤시면서 손이 딱 붙어 버린다.

댓진 묻은 뱀 대가리, 불붙은 개 대가리다. 팔자가 사나우면 결혼식전에 시어미 나이가 아흔 아홉이라더니 재수 더럽다.

원래 궁노루 있으면 향내나고 똥파리 있으면 구린내 나는 법이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움생원이 깜짝 놀라 말하는데

“네 이놈, 이게 웬일인고”

뎁득이가 웃으면서 되묻는데

“왜, 어떻게 된 것이요”

“괘씸한 놈, 못된 버릇이구나, 점잖은 양반 손을 왜 이렇게 붙잡고 안 놓느냐”

도마위에 오른 고기가 칼을 무서워 할까. 뎁득이와 각설이가 손뼉치며 크게 웃으며

“누가 손을 붙들었소”

“네 이놈,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말해 드리지요. 송장 짐이오”

“네 이놈, 송장 짐을 왜 참외밭머리에 놓았느냐”

“새벽길 가는 사람이 외밭인지 콩밭인지 아는 제미럴 놈 어디 있소?”

움 생원이 달래면서

“그렇든지 저렇든지 손이나 떼어다오”

네 놈이 동시에 대답하는데

“내 몸도 처치를 못하는데 당신까지 생각할 여지가 없소”

“내 코가 석자요”

“동병상련(同病相憐)이오”

“사돈네 남 말하네”

움생원이 알아차리고

“너희도 붙었느냐”

“그렇소”

“절이 망하려면 세우 젓 장수만 모인다더니 인근 장에 팔 물건이 푹 쌓였는데 왜 송장장사를 하려고 하느냐. 또 송장이 어디서 나서 저리 많이 받아 지고 어느 장을 가려하느냐. 나 이렇게 살면서 송장 중에 붙는 송장 생전 처음 봤으니 내력이나 조금 알게 자세하게 말해라.”

그러자 뎁득이가 대답하는데

“지리산 속에서 어떤 여인과 함께 살던 남자가 횡사를 했는데 장례를 치러 주는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한다기에 그 집을 찾아 가보니 송장이 여덟이나 있었소.

우여 곡절 끝에 간신히 치상을 치루고 각설이 세 사람과 함께 둘씩 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쉬려고 지게를 내려놓자마자 나도 붙고 저놈도 붙어버려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고 있소. 이제 그 내력을 알겠소”

움생원이 꾀를 내는데,

“그렇다면 좋은 수가 있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대로 불러들여 무수히 붙여 놓으면 시간도 보내고 뗄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니 그 수를 찾아보자.”

“내가 하고자 원하는 것이 아니면 남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니 이 송장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 씌워 붙여서는 안될 것이요. 그래도, 지금 사정이 사정인지라 무슨 일을 못 하겠소 재주껏 해보시요”

이 때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潭陽), 옥천(沃川), 함평(咸平) 월앙산(月仰山) 가리내 패가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密陽), 삼랑(三浪) 근방으로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다니는 가리내 패들이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이 쓴 양반 관을 보고 절을 한다.

“소인 문안이오, 소인 문안이오”

가리내 패 뒤에 계집 아기네들이 낭자를 곱게 하고 고방머리를 얹고 다리가 아픈지 잘쑥잘쑥 하면서 지팡이 막대를 짚고 따라오는데 어떤 년은 두 줄에 다리 넣고 걸사 등에 업혔으며 수건으로 머리 동여 긴 담뱃대를 물고 하 하 하고 크게 웃으면서 소란스레 시끄럽게 왁자지껄 무수히 다가온다. 씨받이나 씨내리나 모두 다 팔자 사나운 상 것들이다. 움생원이 그들을 불러,

“이봐 사당(寺黨)패들아, 너의 장기대로 한 마디씩 잘만 하면 맛 좋은 상관 담배 두 주먹씩 줄 것이니 쉬어 가면 어떠냐”

이 사당패들은 담배라면 밥보다 더 좋아 한다.

“그럽시다”

판놀음 차리러 가는 길인 것처럼 건너편에 일자로 늘어앉은 후에 걸사들이 작은 북을 치는데 사당은 다음 차례다. 연계사당이 먼저 나서서 너름새를 곱게 하고,

“산천초목 무성해져 구경가기 즐겁도다. 이야어.

장송(長松)은 낙낙(落落), 기러기 펄펄, 낙낙장송 다 떨어졌다. 이야어.

성황당(城隍堂) 궁벅궁 새야 이리 가며 궁벅궁 저 산으로 가며 궁벅궁 아무래도 네로구나”

움생원이 그들을 추켜 주면서

“잘한다, 잘해, 내 옆에 와서 앉거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월(初月)이오”

또 하나 나서며 노래한다.

“녹양방초(綠楊芳草) 저문 날에 해는 어이 더디 가고, 오동야우(梧桐夜雨) 성긴 비에 밤은 어이 길었는고. 얼싸절싸 말 들어 보아라, 해당화 그늘 속에 비 맞은 제비같이 이리 흐늘 저리 흐늘, 흐늘흐늘 잘도 논다. 이리 보아도 일색이요, 저리 보아도 일색이요, 아무래도 네로구나”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구강선(具江仙)이오”

한 년이 또 나서며 읊으는데

“오돌또기 춘향(春香) 춘향, 유월 달이 밝고도 명랑한데, 여기 저기 연 저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만첩청산(萬疊靑山)을 쑥쑥 들어가서 늘어진 버드나무 들입다 덤뻑 휘어잡고 손으로 주르르 훑어다가 물에다 둥둥 띄워 두고 둥덩 둥실 둥덩 둥실 여기 저기 연 저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일점홍(一點紅)이오”

또 한년 나서며

“갈까보다 갈까보다, 임을 따라 갈까보다. 찰진 밥 못 다 먹고 임을 따라 갈까보다. 경방산성(傾方山城) 경사진 길로 알배기 처자(處子) 앙금앙금 살살 돌아간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설중매(雪中梅)요”

한 년이 나서며 방아타령을 하는데,

“사신(使臣) 행차(行次) 바쁜 길에 마중 참(站)이 중화(中和)이고 산도 첩첩 물도 중중(重重) 기자왕성(箕子王城) 평양이요, 모닥불에 묻은 콩이 튀어나니 태천(太川)이라, 청천(靑天)에 뜬 까마귀 울고가니 곽산(郭山)이요, 차던 칼을 빼어 내니 하릴없는 용천(龍川)이며 청총마(靑聰馬)를 둘러 탄 후 돌아보니 의주(義州)로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월하선(月下仙)이오”

한 년은 자진방아 타령을 하는데

“누각(樓閣)골 처녀는 쌈지장사 처녀, 어라뒤야 방아로다.

왕십리 처자는 미나리장사 처자, 순 담양 처자는 바구니장사 처자, 영암(靈岩) 처자는 참빗 장사 처자. 어라뒤야 방아로구나”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금옥(金玉)이오”

한참 이리 농탕(弄蕩)치고 있는데 현직 향소(鄕所) 옹좌수(雍座首)가 휴가차 집에 갔다 임지로 돌아오고 있었다.

도포를 잘 차려 입고 안장 채운 말을 탄 옹좌수가 향청(鄕廳) 하인(下人)을 거느리고 달래달래 향소로 돌아가는데 이를 본 움생원이 지옥에서 부처님 만난 양 소리를 쳐 부른다.

“여보소, 옹좌수. 자네가 아관(亞官)으로 있으면서 기구가 좋다하여 시골에서 못된 무리가 못된 짓을 꾀할 때 밖에 나가 일 꾸미는 사람이나 무서워하지, 그래 나 같이 돈 없는 친구는 보고도 못 본체 하고 지나가긴가.

돈 있는 사람 교만하다는 말 자네 두고 한 말일세. 그려. 그래 촌년이 아전서방 얻으면 걸음도 갈지 자 걸음에 밥도 육개장이 아니면 안 먹는다더니 자네가 그 모양 일세 ”

그런 말을 듣고 좌수라도 별수 있나, 말에서 내려 걸어오니 움생원이 제 옆에 앉힌다. 좌수가 물어 본다,

“노형이 평생 동안 살아온 길 내가 대강 알고 있는데 이런 큰길가에서 창기와 함께 놀고 있다니 참으로 의외로세”

움생원이 따라 웃으며,

“꿈같은 우리 인생 육십이 가까우니 남은 날이 며칠인가, 이제는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남은 여생 즐기면서 놀아 보세. 얘야, 옥천 집, 좌수님 들으시게 시조(時調)나 하나 하여라”

이런 저런 장난을 한 참 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나자 좌수가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향청(鄕廳)에 일 많아서 급히 돌아가야겠으니 노형(老兄)은 사당패하고 행락을 계속 하시오”

움생원이 웃어,

“자네 소견대로”

좌수 불끈 일어서니 밑구멍이 안 떨어진다. 날 샌 올빼미 신세다.

“아이고, 이게 웬일인고”

움생원은 아닌 보살 차리고 자빠졌다가 좋아라고 허허 하고 웃어 재낀다.

“허허, 내 말 들어 보소. 노형은 내게 비하면 식자(識字)도 들었고 서울 출입도 하고 읍내에 오래 있으면서 관장(官長)도 모셔 보고 지사(知事)하는 아전(衙前) 친구 응당 많을 텐데 혹시 송장이 붙는다는 말을 자네 언제 들은 적 없는가.”

좌수 귀가 매우 밝아 깜짝 놀라 급히 물어,

“이것이 송장인가”

좌수가 급히 서두르는데 움생원이 또 훨씬 느릿느릿 천천히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장차 알겠지만 송장이 붙는다는 말 사기(史記)나 경서(經書)에서 혹시 읽은 적 없는가”

옆에 있던 사당패들이 깜짝 놀라 일어나 보지만 모두 다 붙어 꿈쩍도 않는다. 이젠 아재비 장가 보내기는 커녕 제 좆도 대롱에 넣게 생겼다. 요망(妖妄)스런 사당패 이것들이 화가 나서 가지 각각으로 재변(才辯)을 떤다.

“ 아이고, 내 팔자야, 어쩌다 남의 칠자 만도 못하단 말인가. 전국을 굴러다니며 눈치보며 사는 내가 무슨 죄를 짓고 나서 이 모양 이 꼴인가”

조지는 건 조조군사라더니, 애고 애고 우는 년, 먼 산보고 기막힌 년, 움생원 바라보며 더럭더럭 욕하는 년, 제 화에 제 머리를 으등으등 찧는 년, 살풍경(殺風景)이 일어나니 좌수가 어이없어 아무 말도 못 하고 굿 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았다가

“여보소, 저 짐이 다 모두 송장인가”

움생원 대답하는데

“하나면 좋게”

“둘이란 말인가”

“비슷하이”

“어느 고을에서 올해 같은 시절에 송장 풍년 그리 들어 보기 싫게 이렇게 많이 지고 왔는가.”

“저기 저사람 말이 지리산 속에서 어떤 여인과 함께 살던 남자가 횡사를 했는데 그남자의 부인이 장례를 치러 주는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한다기에 그 집을 찾아 갔더니 송장이 여덟이나 있었다네.

우여 곡절 끝에 간신히 치상을 치루고 각설이 세 사람과 둘씩 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쉬려고 지게를 내려놓자마자 저도 붙고 저놈도 붙어버렸다고 하네.

나는 아침 일찍 참외 밭 보려고 나서는데 어떤 사람들이 내 밭 근처에 있어 웬 놈들이냐고 물으니 상관초 담배 장수라 해서 한대 얻어 피우려고 손을 집어넣었다가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고 있네. 이제 그 내력을 알겠는가.”

뎁득이가 한 말을 움생원이 똑같이 그대로 전달하니, 좌수와 사당패들이 서로 보고 걱정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굿 보느라고 아니 가고, 먼 데 마을, 근처 마을 구경하자 모여드니 그리 저리 모인 사람이 마치 전주장날 같다.

구경꾼 모인 데는 호도(胡桃) 엿장수가 먼저 아는 법이다. 엿장수가 칡넝쿨로 역은 갈삿갓을 쓰고 엿판을 메고 가위를 치며 소리치며 외고 온다.

“호도 엿 사시오, 호도 엿 사시오. 계피(桂皮) 건강(乾薑)에 호도 엿 사시오. 가락이 굵고 부드러워 양념 맛으로 댓 푼이요. 콩엿을 사려우, 깨엿을 사려우. 늙은이 해소에는 수수엿이 제일 좋소.”

여러 사람들이 호도 엿 사먹으면서 하는 말이,

“이것이 원혼이라, 삼현(三弦)을 흐드러지게 두드리고 넋두리를 하면 귀신이 감동하여 응당 떨어질 듯도 합니다.”

목 좋은 곳에서 큰 굿을 하는데 풍악을 하는 풍악장이를 급하게 불러다가 좌수가 자기 비용으로 굿상을 차려 놓고 멋있는 고인들이 굿거리를 걸게 치고 목소리 좋은 제대 네가 넋두리 춤을 춘다.

“어라 만수(萬壽) 저라 만수. 넋이야 넋이로다. 백양청산(白楊靑山) 넋이로다.

옛 사람 누구누구 만고원혼(萬古寃魂) 되었는고.

공산야월(空山夜月) 불여귀(不如歸)는 촉 망제(望帝)의 넋이던가.

무관춘풍(武關春風 초 패왕이 진왕과 회견하기 위해 굴원의 연지를 듣지 않고 가서 잡혀 피살된 곳) 우는 새는 초 회왕(懷王)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청청향초나군색(靑靑向楚羅裙色 푸릇푸릇 고운 우희의 고운 치마 빛은 그대 초패왕을 맞으려 함이로다 라는 뜻)은 우미인의 넋일런가.

환패공귀월야혼(環패空歸月夜魂 두보의 시구절.)은 왕소군(王昭軍)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넋일랑은 넋 반에 담고, 시체는 꽃으로 싸 밥 파는 식당, 넋이 많이 모이는 곳,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저자거리에 온필 무명, 오색 번에 넋을 불러 청좌(請座)하자.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열 대왕님 부리는 사자(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금강야차(金剛夜叉) 강림도령(降臨道令) 이 생 망자 잡아갈 때 뉘가 감히 거역할까.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만승천자(萬乘天子), 삼공(三公) 육경(六卿) 기구로도 할 수 없고 천석(千石) 노적(露積) 만금부자 값을 주고 면했는가. 멀고 먼 황천길을 가자하면 따라가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지장보살(地藏菩薩) 장한 공덕, 중생 구해 피안에 이르게 하고 지옥문(地獄門) 닫아 놓고 석양 길을 가르킬 때 불쌍한 여덟 목숨 비명에 죽었으니 어느 대왕께 매였으며 어느 사자 따라갈까.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지하에 멘 데 없고 인간에 주인 없어 원통히 죽은 혼이 신체에 붙은 것을 무지한 인생들이 조심스레 대할 줄 모르고 손으로 만져 보고 걸터앉아 괘씸쿠나. 괘씸토다.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옹좌수 자네는 일읍(一邑)의 아관(亞官)이요, 움생원 자네는 양반의 도리로서 멀리서 온 귀신대접 어이 그리 모르던가.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사당, 걸사, 명창, 가객, 오입쟁이 너의 행세 취실(取實)할 수 왜 있으리. 비옵니다,비옵니다. 여덟 혼령 무지한 저 인생들 허물도 과도 나무라지 말고, 갖가지 흥겨운 놀이 잔치. 진사면(陳謝免)에 제대 춤 놀고 가세. 놀고 가세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우두커니 서 있는 짐꾼 넷만 남겨 놓고 위에 붙은 사람들은 모두 다 송장이 떨어진다. 이들이 제대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고 뎁득이와 각설이에게 각각 하직한다.

이것들이 식구 많이 있을 때는 시간보내기가 좋았는데 비 오는 날 파장같이 경각간(頃刻間)에 흩어지니 심심해 살 수가 있나.

뎁득이가 그래도 서울 사람이라 간절하게 사정하면서 송장에게 비는 걸 들어본다.

“천고에 의기남자 원통히 죽은 혼이 지기지우(知己之友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 못 만나면 위로해줄 이 뉘 있으리.

역수상(易水上) 찬 바람에 연태자(燕太子)를 하직하고 함양 땅에서 죽었으니 협객 형경(荊卿) 불쌍하다. 계명산(鷄鳴山) 밝은 달에 우미인을 이별하고 오강(烏江)에 자문(自刎)하니 패왕 항적(項籍) 가련하다.

이 세상에 변서방은 협기 있는 남자로서 술 먹기는 접장(接長)이요 화방에 패두(牌頭)시니 간 데마다 이름 있고 사람마다 무서워한다.

꽃 같은 저 미인과 백년을 살자더니 이슬 같은 이 목숨이 하루아침에 돌아갔다. 원통하고 분한 마음, 눈조차 감을 수가 없어 뻣뻣한 장승처럼 서버린 송장됐네.

주 동지, 자네 신세 부처님의 제자로 선공부(禪工夫) 경문(經文) 외어 계행을 닦았다면 흰 구름 푸른 뫼에 간 데마다 도방이요, 비단 가사(袈裟) 연화탑(蓮花塔)에 열반(涅槃)후엔 부처 곧 될 것인데 잠시 음욕 못 참아서 비명횡사(非命橫死) 거적송장 도대체 이 무엇인가.

초라니 자네 직업 동냥 고사 천업(賤業)이라. 얼굴에는 탈을 쓰고 목에는 장고 메고 돈푼 쌀 한줌 얻자고 이집 저집 다닐 적에 따르는 것이 아이들, 짖는 것이 개 소리라, 타고난 복이 이러한데 가량(可量) 없는 미인 생각에 빠져 제 명대로 못 다 살고 남의 집에 붙은 송장. 풍객(風客) 한량(閑良) 다섯 분은 오입 맛이 한 통속이네.

왕별목장 춘향가 가객이 앞을 서고 가야금 심방곡(心方曲)에 퉁소소리 봉장취, 연풍대(燕風臺)의 칼춤이며, 서서 치는 북 장단이 주막(酒幕)거리 장판이요,

큰 동네 파시평에 떼를 지어 다니면서 풍류로 먹고 사니 눈치도 훤하고 경계(經界)도 알 터인데 송장을 쳐 낸대도 계집은 하나 뿐, 누구 혼자 좋은 꼴 볼라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한날한시 뭇태 송장 여덟 송장됐는가 ,

모두가 각기 설움 다 원통한 송장이라. 살았을 때 집이 없고 죽은 후에 자식 없어 높은 뫼 깊은 구렁 이리 저리 구르는 뼈 묻어줄 이 뉘 있으며 슬픈 바람 지는 달에 애고애고 우는 혼 조상할 이 뉘 있으리. 생각하면 허사로다,

심사 부려 쓸 데 있나. 이 생 원통 다 버리고 저승사자 찾아가서 절절이 원정해 후생 복을 다시 타서 부귀가에 다시 생겨 평생행락하게 하기 위해 당신네 신체들은 청산에 터를 잡아 각각 후하게 장례지낼 것이오. 그런 연후에 매년 기일 돌아오면 내가 제사 모실테니 제발 덕분 떨어지오.”

간절히 빈 후 네 놈이 불끈 일어서니 모두 다 땅에서 떨어진다. 북망산 급히 가서 송장 짐을 부리니 석 짐은 다 부려진다. 그러나 뎁득이가 지고 있는 강쇠와 초라니 송장은 등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각설이 세 사람은 여섯 송장을 묻어 준 후 아이고 뜨거워라 하면서 하직인사를 마치자 마자 불알에서 방울소리 나도록 좆 빠지게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 가버리는데 아직도 송장이 붙어 있는 뎁득이만 안절부절이다.

지금 꼴이 차라리 땡벌 구멍에 좆 박고 견디는 게 더 낫겠다는 심정이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른 뎁득이가 용을 쓰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큰 소나무 두 그루 사이로 사람 하나정도 지나 갈수 있을 것 같은 틈이 보인다.

이를 본 뎁득이가 옳다꾸나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있는 힘을 다해 달려 소나무 사이로 쑥 지나가니 짊어진 송장이 우두둑 세토막이 나는데 위, 아래 두 토막은 땅에 철퍽 떨어지고 가운데 한 도막은 북통같이 등에 붙어 아무리 해도 뗄 수가 없다. 하는 수없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높은 폭포 절벽 밑으로 찾아 들어가 등에 붙은 송장을 바위에 갈아 없애는데 읊는 사설이 들을 만 하다.

“어기여라 갈이질. 광산(匡山 당나라 이백이 숨어 책을 읽던 곳)에 쇠 절구대 문장공부 갈이질. 십년을 칼을 갈아 어기어차 갈이질.

춘풍에 저 나비는 향내 찾다 거미줄을 못 봤으며 산중 저 장끼놈은 까투리 소리 듣고 나는데 아뿔사 그 소리는 포수가 꿩 사냥할 때 내는 소리, 나 이걸 몰랐구나. 어기여라 가리질. 먼저 죽은 여덟 송장 전례도 있었는데 철모르는 이 인생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어기여라 갈이질. 네 번 째 죽을 목숨 간신히 살았으니 오호라 좋을씨고 허망한 이 세상, 이 세상 남자들아 오입 좋아하지 말고 진실되게 살아가세.

조강지처 걱정시키면 늙은 후에 버림받네. 어기여라 갈이질.”

조강지처의 조(糟)는 술지게미란 말이고 강(糠)은 쌀겨라는 뜻으로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함께 고생하며 살아온 본처(本妻)를 이르는 말이다.

처녀로 시집와서 여러 해를 같이 살아온 아내라면 모두 조강지처라 할 수 있다.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후한 광무제(光武帝)의 누님이 일찍 과부가 돼 쓸쓸히 지내고 있자 이를 본 동생 광무제가 마땅한 사람이 있다면 다시 시집을 갈 생각이 있는지 의향을 떠본다. 그러자 그녀는 송홍 같은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다고 말한다. 마침 송홍이 편전에 들어오자 광무제는 누님을 병풍 뒤에 숨기고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 했는데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말하자 송홍은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신은 가난할 때 친했던 친구는 잊어서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臣聞貧賤之交不可忘 신이빈천지교불가망 糟糠之妻不下堂 조강지처불하당 )"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는 누님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조용한 말로

"일이 틀린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슬바람이 고목 꺾고 모기다리가 쇠 씹한다고 한참 땀을 뻘뻘 흘리던 뎁득이는 골난 년 보리방아 찧듯 열심히 움직여 등에 붙은 송장이 다 갈아 없어지자 옹녀에게 이제 다 그만두고 돌아가겠노라 면서

“앞으로 오입쟁이나 바람꾼은 가려서 사귀시고 좋은 신랑 만나 오래도록 백년해로 하시오. 나도 이제는 아랫도리 하자는 대로 하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소. 이제는 헛된 미련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처자식과 함께 분수에 맞게 오순도순 살아갈 생각이오.”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떨치며 내달린다. 소나기는 오려하고, 똥은 마렵고, 꼴짐은 넘어지고, 소는 뛰쳐 나갔다. 급하기도 엄청 급하다.

옹녀는 옹녀대로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 색에는 상하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이제사 고질 떨거지들을 다 떨쳐내고 제법 남자다운 놈 하나 만나 남은여생 의지하고 살아 보는가 했더니 아니 이게 뭔가. 또 혼자가 되다니, 임 없이 먹는 밥은 돌이 반, 뉘가 반이라는데 어찌 혼자 살아간다는 말인가.

소한, 대한 다 지났는데 얼어 죽을 잡놈 있을까마는 이제는 됐다하고 모처럼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아웅다웅 새롭게 한번 살아 보려는데 어찌 이리도 복이 없단 말인가.

옹녀는 멀어지는 뎁득이 김가를 쫓아가면서 소리친다.

“서시오. 서란 말이요. 제발. 같이 가요. 같이 살아요. 이렇게 억울 한 세상 살아온 나를 버리고 그렇게 가버리면 나는 어쩌란 말이요”

하면서 뒤를 쫒는데 그만 돌부리에 덜컥 걸려 넘어지고 만다. 돌부리에 채인 발이 어찌나 아픈지 눈이 번쩍 뜨인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지리산 나무숲은 어디 간데없고 옥탑 방 한쪽에 엎드려 자고 있는 처량한 나 자신의 모습뿐이다. 발등이 너무 아파 내려다보니 잠꼬대를 하다가 얼마나 세게 책상모서리를 걷어찼던지 발등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같이 술 마시던 늙은이는 어디갔단 말인가.

모든게 꿈이었다. 정말 이상한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꿈에 겪은 일들이 모두 생시 같이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때 뭔가 눈에 확 들어온다. 집어 보니 신문지 조각이다. 엊저녁에 가게 집에서 술안주로 마른 오징어를 사올 때 싸준 신문지 조각이다. 거기에는 내가 평소 즐겨 읽던 가루지기전이 연재되고 있었다.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욕심 그 욕심만 버릴 수 있다면 어느 곳에든 살지 못하랴.

행복과 불행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다만 생각이 만들어낸 느낌일뿐이다. 거기에다 행복은 찾아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행복을 찾아가는 길인 것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신문을 자세히 보니 작은 귀절 뿐이다. 가만히 읽어본다.

‘.......월나라 망한 후에 서시가 소식 없고 동탁(董卓)이 죽은 후에 초선이 간 데 없다. 이 세상 오입쟁이 미감(美感)에 빠져 허적이다 삼계(三界)는 전혀 생각없고 음탕한 계집의 유혹에 넘어간 몇 사람, 평생을 그르쳤다. 이 사설 들었으면 세상살이 징계가 될 듯도 하니 좌상에 모인 손님, 노인은 무병장수하시고 소년(少年)은 청춘불로 수부귀다남자(靑春不老 壽富貴多男子)에 성세태평(盛世泰平) 하옵소서’ 라는 마지막 구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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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인간의 괴로움은 탐(貪), 진(瞋), 치(瞋), 삼독(三毒)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탐, 진, 치 삼독이란 세 가지의 번뇌를 말하는데 이를 삼도(三道)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범부(凡夫)의 탐(貪)이란 탐욕(貪慾), 즉 사물을 지나치게 원하는 욕심을 말하고 진(瞋)이란 노여움이란 뜻으로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치(癡)란 어리석다는 뜻이며 자기 마음대로 매사를 판단하고 만심(慢心)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이 세 가지의 번뇌(煩惱)는 번뇌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모든 번뇌의 근본이다. 그래서 중생의 마음과 몸을 금세(今世)와 후세(後世)에 걸쳐서 해치고 독(毒)을 주기 때문에 삼독(三毒)이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고통의 원인은 스스로의 집착이다. 집착은 탐애심(貪愛心)에서 나오는 것인데 오욕(五欲)인 색욕(色欲), 성욕(聲欲), 향욕(香欲), 미욕(味欲), 촉욕(觸欲)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색욕은 좋은 것만을 보고자 하는 눈의 욕심이고 성욕은 좋은 소리만 듣고자 하는 귀의 욕심이며 향욕은 좋은 향기만을 맡고자 하는 코의 욕심이다. 그리고 미욕은 맛있는 음식만 먹고자 하는 혀의 욕심이며 촉욕은 좋은 감촉으로 접촉하고자 하는 몸(身)의 욕심이다. 이것이 중생의 대표적인 다섯 가지 욕심(欲心)이다. 그 외에도 음식욕, 명예욕, 재물욕, 수면욕 등이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몸뚱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건사하려고, 별것도 아닌 쓸데없는 조그만 자존심을 지키려고 여러 가지 욕심을 부리면서 살생, 모함, 망언 등을 일삼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아야 한다. 나를 감싸고 있는 얇은 막 그 욕심과 집착의 막을 벗어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과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있는 글귀가 새롭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고 태어난다. 그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Abrax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을 부리는 악마)이다’

아프락사스가 부리는 마술이 바로 우리의 욕심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법구경(法句經)에 나오는 삼계(三戒)를 설명하고자 한다.

삼계란 욕계(欲界)와 색계(色界) 그리고 무색계(無色界) 세 가지를 말한다.

욕계는 맨 아래에 있으며 오관(五官)의 욕망이 존재하는 세계로 지옥, 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의 5가지와 육욕천(사천왕,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이 있다. 욕계의 중생들은 삼독. 三毒 [탐욕(貪慾 욕심을 부림),진에(瞋恚:화냄),우치(愚癡 어리석음)를 말하며 줄여서 탐.진.치라고 한다. 이는 불도를 수행하는 자가 닦아야 할 세가지 근본수행인 계(戒), 정(定), 혜(慧) 라는 삼학(三學)의 상대가 되는 것으로 삼혹(三惑)이라고도 한다. 또 불도 수행에 장애가 되므로 독이라고도 한다] 에 찌들렸기에 욕심이 꽉 차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한다.

사왕천(四王天)은 사대천왕이 있어 사주(四柱)를 수호하며 그 권속들과 살고 있다고 한다. 사대천왕이란 동주를 수호하는 지국천왕, 남주를 수호하는 증장천왕, 서주를 수호하는 광목천왕, 북주를 수호하는 다문천왕의 넷을 말한다. 이곳에도 남녀의 구별은 있어 혼인하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몸과 몸을 가까이 해 그 기운으로 음양을 이루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1~ 2세와 같고 키는 반유순(2Km)이라고 한다. 큰 절에 가면 입구에 천왕문(天王門)이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은 사대천왕을 모신 곳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밖에서 오는 마귀를 방어하는 뜻에서 세워져 있는 것이다.

도리천(利天)은 33천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중앙에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왕이 있는 선견성(善見城 희견성이라고도 함)을 중심으로 해 사방에 각기 8성씩 32성이 있어 도합 33성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2-3세 같으며 자연히 화현해 하늘에 앉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의 왕인 제석천왕은 사천왕과 삼십이천을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한다. 일찍이 부처님께서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해 석달동안 올라가 설법하고 내려오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하는 하늘이다. 육욕천 중에서 사왕천과 도리천 둘은 수미산을 의지해 있기 때문에 지거천(地居天)이라고 하는데 사왕천은 중턱에, 도리천은 정상에 있다고 한다.

야마천(夜摩天)은 사왕천과 도리천이 지거천(地居天)임에 반해 야마천부터는 공중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공거천(空居天)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때에 따라 오욕락(五欲樂)을 받는다고 한다. 도리천 보다 더 높은 하늘로, 남녀가 음양을 이룰 때에는 서로 가까이만 해도 되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3-4세와 같다고 한다.

도솔천(兜率天)은 지족천(知足天), 희족천(喜足天), 묘족천(妙足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자기가 받는 오욕락에 스스로 만족한 마음을 내어 안정돼 있다고 하며 남녀가 서로 손을 잡는 것으로도 음양을 이룬다고 하는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4-5세와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외원은 천인들의 욕락처가 되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미륵보살은 이곳에 있으면서 남염부주에 하강해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도솔천 내원궁에서 호명보살로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셨다고 한다.

화락천(化樂天)은 오욕의 경계를 스스로 변화해 즐기기 때문에 화락천이라고 한다. 남녀가 바라다보고 있으면 음양을 이룬다고 하며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의 5-6세와 같다고 한다.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하늘은 남의 즐거운 일들을 자유롭게 자기의 락으로 삼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곳에선 잠시 바라만 보아도 음양을 이룬다고 하며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인간의 6-7세와 같다고 한다. 욕계는 이 타화자재천에서 끝나게 된다. 그리고 경에 의하면 남녀의 구별이 있는 것도 혼인하는 일이 있는 것도 여기까지라고 한다. 이 이상의 하늘엔 남녀의 구별도 없다고 하니 혼인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육욕천(六欲天)이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서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등을 욕계의 선(禪)이라고 한다.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색계사선(色界四禪 - 初禪, 二禪, 三禪, 四禪)이 행해지는 세계로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色)은 있어도 감각기관의 욕망이 없는 청정(淸淨) 세계이다. 무색계는 물질적인 것도 없는 순수한 정신만의 세계인데 무념무상의 정(定: 三昧 samadhi )이라는 말은 명상의 깊은 단계, 즉 진아(眞我)를 분명한 의식 하에 체험하거나 또는 명상의 대상에 강렬한 집중으로 몰입해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사무색정 [공무변처정 (空無邊處定: 허공처럼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식무변처정 (識無邊處定: 아는 것은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무소유처정 (無所有處定: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경지), 비상비비상처정 (非想非非想處定: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을 닦은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다. 그러나 무색계는 색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계는 세간(世間)이라고도 하는데 중생이 육도(六道)에 생사유전하는 범부계(凡夫界)를 말한다. 이에 반해 출세간(出世間)은 생사윤회(輪廻)를 초월한 성자(聖子)의 무루계(無漏界)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삼계와 출세간이 구별됐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무루계도 삼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생사 즉 열반(生死卽涅槃) 살고 죽는 것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버려 일체의 번뇌와 고뇌가 소멸된 상태다. 그때 비로소 적정(寂靜)한 최상의 안락(安樂)이 실현된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영원한 평안, 완전한 평화가 이뤄진다는 것이요,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이 없으면 타오르는 번뇌의 불이 자연히 사라져 지금까지 얻은 깨달음의 지혜도 없다)라는 것이다. 즉 살고 죽는 것이 열반이요. 고통과 번뇌가 곧바로 보리라는 것이다.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니 마음이 최상의 것이고 마음에서 모든 것이 이뤄진다. 사람이 만약 오염된 마음으로 말하고 행한다면 그에게는 괴로움이 따른다.

마치 수레바퀴가 말과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니 마음이 최상의 것이고 마음에서 모든 것이 이뤄진다. 사람이 만약 청정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한다면 그에게는 즐거움이 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니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보이는 것은 모두가 허상이요. 그 허상 속에 진정한 실체가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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