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수행하던 시절이다.
원효는 신라의 품계 중 최상위인 성골은 아니지만 그 다음 계급인 육두품 출신이다. 그래서 천민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했다.
원효는 젊어서 화랑으로 전장에서 수많은 적군을 물리친 바 있었다. 그러던 중 전장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애통해 한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애통해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이 내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의 친구들은 얼마나 비통해 하고 있을 것인가?
원효는 크게 깨닫는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원효는 결국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부처님 법에 귀의하게 된다.
수많은 경전과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했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있어 절친한 도반 의상과 함께 중국으로 가기로 뜻을 모은다.
몇 차례의 월경(越境)에 실패하고 당시 백제 땅인 한강 유역에 머문다.
이곳은 당나라와 교류가 왕성했던 곳이라 중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린다.
어느 날, 비가 많이 와 동굴 안에서 쉬고 있는데 원효는 갈증이 매우 심했다.
동굴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더듬거리는데 우연찮게 물이 가득 든 바가지 하나가 손에 잡힌다.
원효는 아무 생각없이 바가지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게 웬일인가 어제 마신 물바가지가 사람의 해골이었고 그 시원했던 물은 해골바가지에 담겨있던 빗물이었던 것이다.
순간 원효는 구역질이 나서 뱃속 찌꺼기까지 전부 토하고 말았다.
원효는 생각했다. 어젯밤 물을 마실 때는 그렇게 달콤하고 시원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뱃속의 물을 전부 토하도록 구역질이 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럼, 어제 내가 마신 물이 아침에 본 해골 안의 물과 다른 물인가?
어제 밤 내가 바가지라고 생각했던 그릇이 지금 본 해골과 다른 것인가?
바가지가 밤에 사라지고 해골이 어디에선가 나타나 지금 여기 있는 것인가?
아니다. 어제 밤의 물과 바가지는 아침에 본 해골바가지와 물 그대로였다.
물을 마신 사람도 분명 자기였고 아침에 토한 사람도 자기였다.
모든 것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왜 어제 밤의 나와 아침의 내가 이렇게 다른가.
무엇이 문제인가?
답은 원효 자신에게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만든 결과였다.
생각이란 과거의 본인 경험이나 남들로부터 들은 사실을 스스로 각색하고 조립하여 만든 것이다. 특히 나쁜 생각은 크기가 훨씬 빠르고 커진다.
원효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
‘더럽고 깨끗함은 모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구나. 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온갖 법이 사라지는 구나‘
원효는 중국에 가는 것을 포기한다.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차려준 밥을 기분 좋게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간다.
나의 행복은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애들 때문인 것만 같다. 하루종일 일하다가 집에 간다는 즐거움에 퇴근을 했다.
반갑게 인사하는 아내와 애들을 보며 다시한번 생각한다.
그래 이들 때문에 내가 살아있구나. 그리고 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구나.
그때 부엌에 있는 아내가 통화를 하는 것 같다. 자주 듣던 전화 컬러링이 가늘게 들리는 것도 같다.
그 순간, 아내가 내 눈치를 보면서 칸막이 뒤로 들어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
‘아니 저 여자가 나 몰래 만나는 사람이 있나. 그러니까 숨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지.’
그걸 보는 순간 그 간의 즐거웠던 기분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몹시 기분 나쁜 순간에 아내가 밖으로 나온다.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누구 전화야?”
아내가 대답한다.
“누구 전화라니? 전화 오지 않았어요.”
“그럼 갑자기 벽 뒤에 숨어 말을 했어?”
“뭐요? 칼에 손가락을 베어서 반창고 찾으러 갔다가 괜히 신경질이 나 혼자 중얼거렸어“
얼굴이 화끈해진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방금 그것도 1분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나빴는데 순간 지금 미안하다.
그럼 이런 상황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혼자 상상하고 생각해 미리 짐작한 것을 사실로 믿어 버린 데 원인이 있다.
혼자서 집을 지었다 부쉈다 오락가락한 것이다.
전과 후의 원인과 결과는 생각이란 놈이 범인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매일 생각이란 사고의 원흉에게 먹이를 주면서 키우고 있다.
키워 봤자 쓸모가 없는데도 살을 찌우며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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