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나이 들어 가는귀가 먹은 재상(宰相)이 있었다. 어느 달 밝은 여름밤, 잠이 오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후원에 이르러 한 동비(童婢)가 평상 위에서 발가벗은 몸으로 혼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조용히 그 용모와 하문(下門)을 살피니 천하일색이었다. 이 여종은 손자며느리의 교전비(轎前婢)였다.
이튿날부터 노재상은 그 여종을 보기만 하여도 흠모하고 사랑하는 정이 샘솟아 누가 봐도 그 좋아하는 정도를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아들 내외가 이를 알고,
"부친께서 그 여종만 보면 그와 같이 귀여워하고 사랑하시니, 그 아이로 하여금 하룻밤 수청을 들게 하여 위로해 드리는 것도 효성을 다하는 길이 아니겠소 ?"
하고 상의한 뒤 그 여종에게 분부하여,
"너는 오늘 저녁에 대감마님을 모시고 수청들라."
하고 깨끗이 목욕시켜 방안에 들게 하였다.
그 날 밤 아들과 손자들이 늙고 혼미한 노재상을 걱정하여 창밖에 줄을 지어 방안 동정을 살피고 있었더니 재상이,
"들어갔느냐 ?"
하고 물었다. 이에 여종이,
"들어가지 않았사옵니다."
라고 대답하니, 또 계속해서,
"들어가느냐 ?"
라고 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들어가지 않사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아들과 손자들이 그 신고(辛苦) 하시는 것을 답답히 여겨서 소리를 낮추어 분부하기를,
"이번에 물으시면 들어갔다고 하라."
고 소곤거린 직후 또 재상이,
"들어가느냐 ?"
라고 물었다. 이에 여종이,
"들어갑니다."
하고 대답하자 재상은 지레 반가워,
"좋고 좋도다 !"
하고 즐거워하였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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