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묘소를 찾다
영월 땅 산모롱이 그늘진 구석자리
시들은 뗏장아래 초라한 무덤하나
인재(人才)는 사라졌어도 흔적은 남겼더라.
생각 속 김삿갓이 행여 거기 있을까
사방을 둘러보니 반쯤 묻힌 조각상뿐
골짜기 흐르는 물만 무심하게 흐르더라.
조부(祖父)를 욕한 죄로 방랑삿갓 삼천리
그날의 평생 한(恨)인 장원시(壯元詩) 생각하며
싯구로 남긴 자존(自尊)을 예서 보고 있노라.
--------------
김병연(삿갓) 장원시
시제: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 보라.
一爾世臣金益淳(일이세신김익순)
鄭公不過卿大夫(정공불과경대부)
將軍挑李隴西落(장군도리농서락)
列士功名圖末高(열사공명도말고)
대대로 성은을 입은 신하 김익순은 들어라
정공(가산군수 정시(鄭蓍)은 경대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당신은 이릉이 오랑캐에게 항복한 꼴이 되었구나
정공의 공명은 충신열사 중에서도 서열이 으뜸이 되었느니라.
詩人到此亦慷慨(시인도차역강개)
撫劍悲歌秋水溪(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선천자고대장읍)
比諸嘉山先守義(비저가산선수의)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기에
칼을 어루만지며 가을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宣川)은 자고로 대장이 지켜온 큰 고을이었는데
가산 보다 앞서 의(義)로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던가
淸朝共作一王臣(청조공작일왕신)
死地寧爲二心子(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승평일월세신미)
風雨西關何變有(풍우서관하면유)
두 사람 모두 한 조정의 신하로서
죽어야 할 곳에서는 어찌 두마음을 품은 것이요
태평성대와 다름없던 신미년 그 해에
관서 지방에서 풍운이 일었으니 이 무슨 변고인가
尊周孰非魯仲蓮(존주숙비노중련)
輔漢人多諸葛亮(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동조구신정충신)
抵掌風塵立節死(저장풍진입절사)
주나라를 받든 건 노중련 뿐이 아니었고
한나라를 돕는 데는 제갈량같은 명장이 많았도다.
우리 조정에도 충성스런 신하 정공이 있어
풍진을 맨손으로 막으려다 죽지 않았느냐
駕陵老吏揚名旌(가릉노리양명정)
生色秋天白日下(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혼귀남무반악비)
骨埋西山傍伯夷(골매서산방백이)
늙은 관리로서 정공의 명성은 높이 오르고
가을 하늘 밝은 해아래 길이 빛날 것이오
그 혼백은 남묘로 돌아가 악비와 같이 벗 할 것이요
뼈는 서산에 묻혀도 백이와 이웃하게 될 것이오
西來消息槪然多(서래소식개연다)
問是誰家食祿臣(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가성장동갑족김)
名字長安行列淳(명자장안항열순)
서쪽으로부터 매우 개탄 할 소식이 들려오니
어느 가문에서 나온 벼슬아치냐 물어 보았더니
이르기를 명성이 드높은 장동 김씨요
항열은 장안에서 소문난 순자 항렬 아니더냐
家門如許聖恩重(가문여허성은중)
百萬兵前義不下(백만병전의불하)
淸泉江水洗兵波(청천강수세병파)
鐵甕山樹掛弓枝(철옹산수괘궁지)
가문이 휼륭하여 성은도 두터 웠을터
백만 대적 앞에서도 의를 굽히지 않았어야 하였고
청천 강물이 병마는 씻어 가기라도 한거요
철옹산에 간직했던 궁시는 어디에 걸어 두었소
吾王庭下進退膝(오왕정하진퇴슬)
背向西城凶敵脆(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혼비막향구천거)
地下猶存先大王(지하유존선대왕)
임금님 앞에 드나들며 꿇어 엎드리던 그 무릎으로
서북 흉적에게 무릎을 굻고 항복했으니
당신은 죽어 황천에도 못 갈 것이요
저승에는 선대왕이 계실 것이니 말이요
忘君是日又忘親(망군시일우망친)
一死猶輕萬死宜(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춘추필법이지부)
此事流傳東國史(차사유전동국사)
임금을 저버린 당신은 또 조상도 잊은 자요
한번 죽음은 너무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오
춘추의 필법을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치욕적인 이 일은 역사에 담겨 길이 전해 질 것이요
-----------
이 시로 김병연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고 만다.
후에, 김병연(김삿갓)은 자신이 시로써 욕을 한 김익순이 친조부인 걸 알고 천하에 불효막심한 자요, 살아 있을 가치도 없다며 미치광이가 되어 죽을 각오까지 했다.
김병연 자신은 죽은 친 할아버지를 무참하게 난도질 해 놓았으니,
글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는 글로 망하는 법.
죽지 못해 사는 인생,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이라.
그는 조부를 욕한 죄가 너무 중해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다면서 삿갓을 쓰고 구름처럼 정처없이 전국을 떠돌다 전남 화순에서 죽는다. 영월의 묘지는 훗날 이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