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소 그림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당시 이 시를 본 이중섭의 조카가 "삼촌 시도 써요?" 하니까
이중섭 왈 "그냥 소가 말한 걸 옮겨적었지.." 한다.
조카가 웃으며 "소가 조선말을 참 잘 하네요" 하니까
이중섭은 "조선 소니까.."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근데 소눈이 예전 같지가 않아 전쟁을 겪어서 그런지 흐려졌어..
소는 이중섭에게 운명적인 오브제였던 것이다.
길 떠나는 가족 / 종이에 유채(10.5×25.7cm), 1954년
말과 소를 부리는 사람들 /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9×14cm), 1941년 3월 30일
소와 여인
흰 소
이중섭은 소를 그리기 위해 하루종일 들에 나가 소를 관찰했다고 한다.
고향인 오산에서 시작된 소에 대한 탐구는,
사업을 하는 형을 따라 생활하게 된 원산에서도 이어진다.
"원산 송도원 부근의 농부들이 날마다 나타나서 하루 해가 저물도록
소를 보고 있던 중섭을 처음에는 소 도둑인 줄 알고 고발한 일도 있었대요."
"어떤 농부는 그를 미친놈이라고 쫓기도 하고 아마도 소 도둑이나 소 백정에 미쳐서
소 옆에만 나와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대요."
이렇게 그 당시의 이중섭에 대한 체험을 말하는 원산의 증인도 있다.
사물은 그것을 객체로 대하는 동안 곧 혐오감이 생기거나 싫증이 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사물과 사물 관계자는 절연되기도 한다.
그 절연을 어떤 인식이나 사랑, 지혜를 통해서 극복하고 사물을 자기화하는 것이
가장 깊은 철학이며 가장 좋은 문학이고 예술인 것이다.
이중섭은 그런 일을 해낸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되기란 불가능하다.
- 이중섭 평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