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 7.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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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春香) - 김영랑(金永郞)

 

큰 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 일편 단심(一片丹心)

 

({문장}18, 19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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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먹감나무 문갑 / 최길하

 

물 한 모금 자아올려 홍시 등불이 되기까지

까막까치가 그 등불아래 둥지를 틀기까지

그 불빛 엄동 설한에 별이 되어 여물기까지

 

몇 해째 눈을 못 뜨던 뜰 앞 먹감나무를

아버님이 베시더니 문갑을 짜셨다.

일월도(日月圖) 산수화 화첩을 종이 뜨듯 떠 내셨다.

 

돌에도 길이 있듯 나무도 잘 열어야

그 속에 산 하나를 온전히 찾을 수 있다.

집 한 채 환히 밝히던 홍시 같은 일월(日月).

 

잘 익은 속을 떠서 문갑 하나 지어 두면

대대로 자손에게 법당 한 칸쯤 된다시며

빛나는 경첩을 골라 풍경 달듯 다셨다.

 

등불 같은 아버님도 한세월을 건너가면

저렇게 속이 타서 일월도(日月圖)로 속이 타서

머리맡 열두 폭 산수, 문갑으로 놓이 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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