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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 김영랑(金永郞)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이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伴奏)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 만갑 : 조선 시대의 이름난 명창 송만갑을 뜻함.
* 컨덕터 : 지휘자(conductor).
(시집 {영랑 시집},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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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겨울 판화 / 나홍련
바다 빛이 뚝뚝 떨어지는 어물전 좌판대 위
비릿한 냄새 풍기며 하얗게 뒤집힌 고등어들
얼음꽃 차디찬 살갗, 지느러미만 파닥인다.
시퍼런 파도소리 등줄기에 서럽게 실려
아가미를 벌리다가 하얀 소금알 몇 개 문
썰렁한 아침 너머로 먼 바다가 출렁이고.
겨울의 상처들이 찢긴 비늘 속으로 숨는다.
소금물에 절인 살점, 반란의 흔적이 얼핏 보이고
그들은 꿈꾸고 있다. 푸르게 닿는 바다새 울음
회색빛 물감을 풀어 희미해진 어물전 저녁
부서진 상자 속에 주검들이 줄줄이 꿰어져
눈발이 서럽게 내린 삭막한 풍경도 그려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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