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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書) - 유치환(柳致環)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여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死滅)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동아일보}, 193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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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시간/황 능 곤
이제는 절로 달로 매 월말 무렵이면
설레는 처방전에 답신을 기다리며
길고 먼 수림의 꿈을 가만가만 삼는다.
오늘도 나 중심의 미지의 시간들이
돌다리 놓아주는 어제를 그려가며
미래의 날개 속 품에 긴긴 한숨 돌리고.
이래서 저물어도 아직은 옛 멋 남아
젊음을 불태웠던 청복을 가려감고
푸르른 하늘 멀리에 다진 마음 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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