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7. 2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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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밝은 날에 - 서정주 -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 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훠 ― 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노을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 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서정주 시선>(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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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 이호우 -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 <문장>(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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