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7. 26.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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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 - 김춘수 -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 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만이

익어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면은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꽃의 소묘>(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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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앓이 백수 정 완 영

 

진실로 외로운 자에겐 병도 또한 정이러뇨

세상살이 시들한 날은 자질자질 몸이 아프다

매화도 한 그루 곡조, 봄을 두고 앓는걸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다 잃은 것만 같은

허랑히 보낸 세월이 돌아 돌아 뵈는 밤은

어디메 비에 젖어서 내 낙엽은 춥겠고나,

 

그 누가 주어 준대도 영화(榮華)는 힘에 겨워

시인이면 족한 영위(營爲)의 또 내일을 소망하여

한밤 내 적막한 꿈이 먼 들녘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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