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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 - 김춘수 -
Ⅰ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 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Ⅱ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만이
익어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Ⅲ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면은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꽃의 소묘>(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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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앓이 백수 정 완 영
진실로 외로운 자에겐 병도 또한 정이러뇨
세상살이 시들한 날은 자질자질 몸이 아프다
매화도 한 그루 곡조, 봄을 두고 앓는걸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다 잃은 것만 같은
허랑히 보낸 세월이 돌아 돌아 뵈는 밤은
어디메 비에 젖어서 내 낙엽은 춥겠고나,
그 누가 주어 준대도 영화(榮華)는 힘에 겨워
시인이면 족한 영위(營爲)의 또 내일을 소망하여
한밤 내 적막한 꿈이 먼 들녘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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