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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지도 - 윤동주 -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 버린 역사처럼 훌훌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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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무렵의 詩 / 鄭 一 根(1986년 : 서울신문)
굴뚝새 내려앉는 저물 무렵 첨탑尖塔 근처.
천애天涯를 더듬다가 회한으로 깊은 노을
하늘로 가는 길들이 붉게 타며 부서진다.
神의 빈 아궁이 자작나무 지펴본다.
비로소 빗장 풀며 마음門 여는 속죄贖罪
저 일몰 깊은 곳으로 불씨 하나 눈뜨다.
기억하라, 예감으로 풀어지는 바람들을
바람이 모든 탄생과 죽음 또한 호명呼名할 때
살과 뼈 뜨겁게 비비는 아픔이며 뉘우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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