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 고 은 -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시집 <피안 감성>(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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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지담無味之談 趙 眞 愚(1980년 : 불교신문)
결제 結制
사자산 철우鐵牛 스님께 객문안客門安을 드렸더니
반만 벌린 입술 사이로 덧니 하나 보이시고
운하정 뒤뜰을 돌아 올라 오라 하시더라.
인정 人定
동지冬地 불공이 끝나자 절간이 꽁꽁 얼었다.
법당 부처님은 문을 안으로 잠그셨고
염화실 조실祖室 스님의 간간한 기침소리.
무제 無題
진눈깨비 오다말다한 지난 달 초이렛날
황악산 직지사를 찾아 합장하여 삼배 올리고
차마 그 대불大佛 앞에는 촛불도 켜지 못하고 왔다.
방선 放禪
점심 공양을 하고 퇴설당 뜰로 가니
어느 콩밭에 내려와 앉았던 산비둘기 한 마리가
잡힐 듯 잡힐 듯 하기에 한참동안 같이 놀았다.
공덕 功德
달 같은 동불童佛을 업고 동지冬地 불공佛供온 것 우바새
한 종지 참기름과 창호지 심지도 곱지만
풀어논 무명 보자기 그 백진이 너무 희다.
세월 歲月
인사동 골목을 지나다 얼핏본 한 점 연적
老스님 방, 주렴 밖으로 내다본 날빛이더니
손길이 가 닿을 때마다 고운 때만 묻더라.
화제 話題
아침 예불禮佛을 하고 산책길 나섰더니
어제 삭발을 한 노행자老行者가 따라오면서
부처가 뭐냐 묻기에 걸음 멈춰 돌아섰다.
해제 解制
절은 청산에 짓되 주춧돌은 비그듬히 놓자
범종은 달아만 놓고 아무도 울리지 말자
만첩골 깊어만 가는 여명 먼 울림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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