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왕고모 -고은-
들길로 시오리 길 대기 마을에서
왕고모 올 때는 길 가득합니다
그 왕고모가 할머니 죽은 날
오자마자 큰 몸뚱이 들썩이며 울부짖었습니다.
땅도 치고 허벅 치고 울부짖더니
성님 이게 웬일이여
나하고 회현장에서 만나
국수가 오래 불어터져서 우동된 놈 사먹고
또 언젠가는 막걸리 한 사발에
국 뜨거운 국말이 밥도 사먹던 일 엊그제 같은데
하마 5년 6년 썸뻑 지나갔구려
작년 가을 왔을 때
성님 하는 말이 몇 달만 있으면
이놈의 병 썩 물러가서
내 사대삭신 훨훨 날아다닐 것이라고 하더니
어디로 날아가셨소그려 아이고 성님 아이고 성님
인제 가면 언제 오려오
개똥밭 쇠똥밭에 살아도 이 세상이 좋은데
성님 저승 가서
그 큰 저승 가서
어느 회상에 찡겨 사시려오
아이고 대고 아이고 아이고
이렇게 사설깨나 늘어놓으며 애통해 하다가
저기에 송말에서 시집 온 재종동생의 댁 보고는
이제까지의 청승 다 어디갔나 싶게
아이고 송말사람
자네 얼굴 한번 환하네 그려
애들 잘 크지
논 한 배미 또 사들였다며
그 우물 새로 앉히고 자네 운이 돌아왔네 그려
슬픔이란 것이 하나도 슬픈 것이 아니라
다음 고개 넘어가면
안 보이는 골짜기 개울 아닌가 한 판 판소리 아닌가
참 초상집 이런 아낙 들어서야 그나마
술맛 있고 사잣밥 밥맛 있지
안 그런가
-<만인보>(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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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일경(來蘇寺一景) /석초 홍오선(石艸 洪五善 )
전나무 숲 진입로에 줄 이은 파일축등(八日祝燈)
능가산 병풍 자락 신록(新綠)은 윤기 띠고
대웅전 창건 유래에 발길 멈춘 나그네.
내 시선 사로잡은 승방(僧房) 문의 글귀 하나
옳으니 그르거니 상관을 하지 말고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어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천왕문(天王門) 앞 느티나무
천년 나이도 수유던가.
*내소사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에 있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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