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8. 14.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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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

 

제 손으로 만들지 않아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 <대장간의 유혹>(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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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扁柏)나무 숲에서는 최 광 림



편백(扁柏)나무 숲에서는 두 눈이 멀어도 좋다

질 고운 햇살의 입자(粒子) 문간채에 걸어두고

달빛도 잘게 썰어서 연등(燃燈)으로 내어 걸고,



사방 백 리 향불 사뤄 눈 감아도 부신 노을

산란(山蘭)이 포란(抱卵)하는 청태(靑苔)낀 돌틈에서

갈바람 속살거리는 언어들을 줍는다.


태청산(太淸山) 한 자락을 울안에 들여놓고

화선지에 먹물 지펴 한 점 획()을 지었더니

편백향 취기(臭氣)에 젖어 문풍지도 우는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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