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
제 손으로 만들지 않아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 <대장간의 유혹>(1999) -
-----------------------------------
편백(扁柏)나무 숲에서는 최 광 림
편백(扁柏)나무 숲에서는 두 눈이 멀어도 좋다
질 고운 햇살의 입자(粒子) 문간채에 걸어두고
달빛도 잘게 썰어서 연등(燃燈)으로 내어 걸고,
사방 백 리 향불 사뤄 눈 감아도 부신 노을
산란(山蘭)이 포란(抱卵)하는 청태(靑苔)낀 돌틈에서
갈바람 속살거리는 언어들을 줍는다.
태청산(太淸山) 한 자락을 울안에 들여놓고
화선지에 먹물 지펴 한 점 획(劃)을 지었더니
편백향 취기(臭氣)에 젖어 문풍지도 우는 밤은.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7.08.18 |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7.08.17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7.08.11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7.08.10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7.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