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激憤)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刹那)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님의 침묵>(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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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시간 황 능 곤
이제는 절로 달로 매 월말 무렵이면
설레는 처방전에 답신을 기다리며
길고 먼 수림의 꿈을 가만가만 삼는다.
오늘도 나 중심의 미지의 시간들이
돌다리 놓아주는 어제를 그려가며
미래의 날개 속 품에 긴긴 한숨 돌리고.
이래서 저물어도 아직은 옛 멋 남아
젊음을 불태웠던 청복을 가려감고
푸르른 하늘 멀리에 다진 마음 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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