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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 김광규 -
바위가 그럴 수 있을까.
쇠나 플라스틱이 그럴 수 있을까.
수많은 손과 수많은 팔
모두 높다랗게 치켜든 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마음 벌거벗은 몸으로
겨우내 하늘을 향하여
꼼짝 않고 서 있을 수 있을까.
나무가 아니라면 정말
무엇이 그럴 수 있을까.
겨울이 지쳐서 피해간 뒤
온 세상 새싹과 꽃망울들
다투어 울긋불긋 돋아날 때도
변함없이 그대로 서 있다가
초여름 되어서야 갑자기 생각난 듯
윤나는 연록색 이파리들 돋아내고
벌보다 작은 꽃들 무수히 피워내고
앙징스런 열매들 가을내 빨갛게 익혀서
돌아가신 조상들 제사상에 올리고
늙어 병든 몸 낫게 할 수 있을까.
대추나무가 아니라면 정말
무엇이 그럴 수 있을까.
-<좀팽이처럼>(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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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집 두 채 채 윤 병
미루나무 꼭대기에 한가롭게 튼 둥지
바람도 친구 되고 구름도 친구 되고
이따금 명주실 같은 햇살 한 올 불러오네.
흩날리는 봄빛 한 잎 요리조리 베어 먹고
살림살이 옹색해도 하루 종일 신이 난다
한 이웃 까치집 두 채 아기 새도 춤추는 날.
가는 잎 푸른 물색 날개 짓에 묻혔다가
깍깍 깍 멋진 화음, 멋진 울림 그 소리도
마침내 하늘로 올라가 반짝이는 별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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