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잠언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11. 2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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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지 않은 일들

-작자미상 레오 버스카글리아 제공

 

 

내가 당신의 새 차를 몰고 나가 망가뜨린 날을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날 때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비가 올 거라도 말했는데도 내가 억지로 해변에 끌고 가 비를 맞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비가 올 거라고 했잖아!"하고 욕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당신을 질투나게 하려고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당신이 화가 났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떠나리라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내가 오렌지 주스를 당신 차의 시트에 엎질렀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내게 소릴 지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내가 깜박 잊고 당신에게 그 댄스 파티가 정식 무도회라는 걸 말해 주지 않아서

당신이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났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내게 절교를 선언할 줄 알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래요. 내 생각과는 달리 당신이 하지 않은 일이 참 많았어요.

당신은 나에 대해 인내했고 나를 사랑했으며 보호해 주었어요.

당신이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올 때 당신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이 참 많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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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耳鳴)의 시 권 갑 하

 

어쩌면 눈이 부신 형광 같은 속삭임인가

전생에 못다 삭힌 그리움의 다발다발

슬픔을 무두질하듯 밤낮 잉잉거린다.

 

어디쯤 바람이 드나 귀를 후벼 보지만

역광으로 쏟아지는 꼬물대는 헛발질만

투명한 직벽의 유리창 팅팅 몸을 부딪는다.

 

사랑도 눈물도 다 사룬 새벽 머리맡

노래를 부등켜안고 혼을 놓친 음절 하나

부서진 자모(子母)들만이 끊긴 현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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