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철학우화 5

임기종 2014. 6. 3. 07:33
728x90

규율

  트라피스트 수도승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은 정도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한다.

  한 사람이 수도승이 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원장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의 규율은 이렇다. 7년동안 한마디의 말도 해선 안된다그러나 7년이 지나면 필요한 한마디의 말을 할 수 있다. 그 후에 다시  7년동안 침묵을 지켜야 한다>

  그 사람은 규율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고 수도승의 계를 받고 자기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안으로 들어간 그는 창문의 유리창이 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말은 해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7년 동안 그는 추위와 비바람에 시달리면서 생활해야 했다. 깨진 유리창으로는 빗줄기가 몰아쳤지만 그 말을 하기 위해선 7년을 기다려야 했다.   7년을 기다린 끝에, 그는 수도원장을 찾아가서 말했다.

  <제 방의 유리창이 깨졌습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알았다. 다시 돌아가서 7년 동안 침묵을 지키도록 해라. 유리창은 우리가 수리해 주겠다>

  유리창이 수리되었다. 그러나 7년 동안 끊임없는 비바람과 눈보라에 의해 매트리스가 완전히 낡아 버렸다. 문득 자신이 매트리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 하느님! 다시 7년을 기다려야 하다니!>

  매트리스 밑에는 바퀴벌레와 거미와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들끓었고, 밤이면 그의 잠을 방해했다. 유리창이 깨져 있었기 때문에 매트리스  밑이 벌레들에겐 좋은 안식처였던 것이다.

  벌레들에게 매일 밤 시달리면서 다시 7년을 보냈고, 다시  수도원장을 찾아가 말했다.

  <유리창은 수리해 주셨지만, 매트리스가 완전히 썩었습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방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새 매트리스가 도착할 것이다>

  인부들이 와서 낡은 매트리스를 꺼내고 방은 깨끗이 청소했다. 그런데 새 매트리스가 너무 커서 방 안으로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인부들이 억지로 매트리스를 방안으로 넣으려 하다가 그만 유리창을 깨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똑같은 상황이 시작되었다.

  14년이 흘렀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첫날 그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 그는  또다시 7년을 기다려야 했다. 또다시 비바람이 몰아치고, 그러는 사이 그는 늙고 병들었으며, 고열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서약한 것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다.

  7년 후 그가 수도원장을 찾아가서, 유리창을 수리해 달라고 부탁하자 수도원장이 말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된 사람이 21년 동안 불평만  늘어놓는단 말이오? 끝없이 불평, 불평, 불평뿐이라면 당신같은 사람은 이 수도원에  있을 수 없소. 어서 여기서 나가시오!>

  그리하여 그 친구는 늙고 병들고 지친 몸이 되어 쫓겨 났다. 21년 동안의 끝없는 고문 끝에...

  그들의 행로는 매저키즘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금욕을 통한 삶의 길이라는 미명 하에 자기자신을 학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다. 그것은 점진적인 자살행위, 점진적인 독약 투입 행위이다.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우화 6  (0) 2014.06.05
仁에 관한 小考  (0) 2014.06.03
철학우화 4  (0) 2014.06.02
숭늉  (0) 2014.05.30
라즈니쉬 철학우화 3  (0) 2014.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