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관리 이 서방이 임지 평양에 처가 집에서 많은 노자를 마련해줘 화려한 옷을 입고 부임했다. 마침 근처에 살던 기생이 이 서방에게 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뺏으려고 이 서방에게 와서 일부러 놀라면서 말하기를
"높으신 어른께서 오신 줄 몰랐습니다."
하며 곧 돌아간다. 이서방이 보니 천하절색이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러던 중 저녁에 그 기생이 또 이서방을 찾아와 위로하면서 이야기 한다.
"꽃다운 나이에 객지에 나서시면 적적하지 않으십니까. 첩의 지아비가 멀리 싸움터에 나가 여러 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홀아비 속은 마땅히 과부가 안다 했습니다. 제가 온 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하면서 교태 어린 말로 덤비니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이서방은 가진 돈을 다 기생에게 쓰면서 함께 사는데 기생은 매일 아침, 식모를 불러 귀에다 대고 "밥 반찬을 맛있게 하라."고 말한다.
이서방은 이소리를 듣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구나하고 스스로 만족해 노자가 들어 있는 통의 자물쇠 꾸러미를 다 기생에게 맡긴다. 하루는 기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기쁜 낯이 아니다. 이를 본 이서방이 위로하면서 말하는데
"정분이 점점 식어 가느냐? 의식이 모자라느냐"
"어느 관리는 아무 기생을 사랑해 금비녀와 비단 옷을 해 줬다 하니 그 사람이야말로 참말로 기생서방 자격이 있다 하겠소이다."
" 과히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의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리라."
하고 패물을 사주니 기생이 말한다.
"이렇게 함께 사는 처지에 돈을 그리 함부로 낭비하시오."
"재물은 내 것인데 무슨 관계냐"
하며 이 서방이 화를 낸다. 그때 장사꾼이 값진 비단을 팔러 왔다. 이서방이 나머지 재물로 비단을 사려 하자 기생이 일부러 제지하면서 말한다.
"곱기는 곱지만 입는 데 완급이 있으니, 어쩌지요."
이서방이 벌컥 꾸짖으면서
"내가 있으니 걱정 없느니라."
그날 기생은 일하는 계집과 함께 비단을 가지고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이서방이 등불을 켜고 홀로 앉아 잠 못 이루며 기다린다. 기생은 새벽이 지나 해가 높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궤짝을 열어보니 쌀 한톨도 없다. 이서방이 홧김에 스스로 죽으려고 하자 이웃 노파가 와서 말하기를
"이런 일은 기생집에서 보통 있는 일인데 그대는 정말 몰랐습니까? 매일 아침, 부엌데기에게 한 말은 가만히 재물을 뺏고자 한 것이고 다른 사람을 칭찬한 것은 낭군으로 하여금 격분케 해서 효과를 보고자 함이었으며 전에 비단팔러 온 장사꾼은 밀통한 간부인데 그와 함께 남은 재물을 뺏고자 함이었오."
한즉, 이서방이 심히 분해하면서 말한다.
"만약 그 요귀를 만나기만 하면 몽둥이로 때려죽여 거꾸러뜨린 다음 옷과 버선을 벗기리라."
그후 교방(敎坊) 길가를 엿보던 중 그 기생이 동무 수십 명과 함께 떠들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이서방이 막대기를 들고 앞으로 뛰어나가면서
"요귀 요귀여, 네가 비록 창녀이긴 하나 어찌 차마 이와 같으냐? 나의 금비녀와 비단 등속을 돌려보내라"
하자 기생이 박장대소하면서 말한다.
"모두들 와서 이 어리석은 놈을 보라. 이 시러배 아들놈이 기생에게 준 물건을 돌려달란다."
여러 기생들이 앞 다퉈 모여들자 이서방은 부끄러워 군중 가운데로 숨어 피해 버렸다. 빈털터리 이서방은 의지할 데 없어 길가에서 얻어먹다가 결국 처가에 도착하니 장모 역시 화를 내며 문을 닫고 쫓아낸다. 이서방은 마침내 동네 걸식을 하며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지 않은 자 없었다. -촌담해이(村談解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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