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내의 물건은 다 같지 않다. 홀랑까진 게 있는가 하면 머리가 감춰진 우성거지란 것도 있다. 어느 때 강원도에 감사가 새로 부임해 오게 됐다. 그 때 관의 기생들이 모여앉아
"이번에 오시는 신관사또께서는 그 물건이 벗겨졌을까, 아니면 우성거지일까?"
하고 재잘거렸다. 사또의 수청을 제일 먼저 들 기생이 큰소리를 쳤다.
"사또의 그게 까졌는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먼저 알 수 있을텐데 뭘 그래."
이번에는 읍내 기생이 들고 나섰다.
"탈(脫벗고)과 갑(匣쓰고)을 아는 사람이 나 외에 또 누가 있을라구."
그 말에 군기(郡妓)가 큰소리로 꾸짖었다.
"네 행실이 지극히 나쁘구나"
그 때 관노 한 놈이 나서면서 묻기를
"내가 만일 그 사실을 먼저 알아내면 어떻게 할 셈인가"
군기들이 즉시 대답하길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가 사또를 맞는 연석에서 그대한테 크게 상을 내리지."
관노는 즉시 말을 달려 사또가 오는 길을 마중 가다가 한 갈림길 앞에서 사또 행차를 만나게 됐다. 관노는 즉시 땅바닥에 엎드려 공손히 절한 다음 아뢴다.
"저희 고을에서는 옛부터 한 풍습이 있사옵니다."
"흐음, 무슨 풍습이더냐?"
"여기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사온바, 사또께서 양도가 벗겨지셨으면 윗길로 가셔야 하옵고 우성거지시면 아랫길로 가셔야 될 줄 아옵니다."
"흠."
"만일 어기시오면 성황신이 크게 노해 성황당 안팎의 사령이나 관노들이 말을 듣지 않고 불충할 것이오며 온갖 이속들이 영민치 못하고 바보가 될 것이옵니다. 소인은 다만 사또를 위하는 일편단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오니 재량하시기 바라옵니다."
사또는 어이가 없었으나 꾹 참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참을 생각하더니 처음 부임이라 태도를 바꿔 대답하는데
"나는 윗길로 가야 할 것이니라."
그런 다음 사또는 혼자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사람의 양도는 비록 형제지간이라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며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서로 숨기는 법이거늘 이제 저 관노 놈이 알아 이제 온 고을이 다 알게 될 것이니 어쩐단 말인가. 나 또한 다른 방법으로 그 수모를 씻어야 되겠다 생각하고 이튿날 아침에 영을 내렸다.
"너희 대소이원(大小吏員)들은 듣거라. 오늘 나를 뵈러 오는 자들 중 양도가 벗겨진 자는 섬돌 위에 서고 우성거지인 자들은 섬돌 아래 서도록 하라."
영이 내리자 신하들은 모두 그렇게 했다. 자신의 물건이 까진 놈은 섬돌위에 안까진 놈은 섬돌아래에 내려선다. 그런데 유독 한 신하가 한발은 섬돌 위에 다른 발은 섬돌아래에 놓고 어중간하게 서 있었다.
"너는 어떻게 된 일이냐?"
사또가 묻자 그 신하 솔직히 대답하기를
"소인의 것은 벗겨지지도 우성거지도 아닙니다."
"그럼 뭐란 말이냐?"
"세상에서 이르기를 별양이라는 자라자지이옵니다."
"별양이라?"
"예. 하오니 어느 쪽에도 설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하더냐."
사또는 웃으며
"너희 들은 모두 그만두고 물러가도록 하라."
고 영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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