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염소가 된 서방

임기종 2025. 3. 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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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장가를 들었는데, 아내가 여간 미련해 도무지 함께 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똑똑하고 애교있는 첩을 하나 구해 두고 날마다 그 집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아내는 비록 미련하기는 하나 여자는 여자인지라 어떻게 해서든 남편이첩네 집에 가지 못하도록 궁리했다. 하루는 남편의 팔에 끈을 묶어서 그 끈을 제 허리에 동여매고는 멀리 가지 못하게 단단히 조치를 취해 놓았다. 남편은 첩 생각이 간절해서 우선 뒷간에 간다는 핑계로 빠져 나와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했다. 그렇게 뒷간에 앉아서 한참 궁리하는데 마침 염소 한마리가 쑥 들어왔다. 남편은 앞뒤 잴 것 없이 자기 팔의 끈을 풀어서 염소 앞다리에다 묶어 두고는 첩의 집으로 쏜살같이 내뺐다.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의심이 되어서 이따금씩 끈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런데 끈을 당길 때마다 '오호호~~'하는 식으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그저 남편이겠거니 안심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오지 않자 아내는 뒷간으로 가 보았다. 남편은 간 곳이 없고 염소 한마리가 매어 있지 않은가. 이 미련퉁이 아내는 금세 사태를 간파하고 울면서 말했다.

"서방님, 서방님,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되었어요?"

졸지에 뒷간에 갇힌 염소가 무슨 대꾸를 할 수 있으랴. 그저 눈만 꿈벅거리며 '오호호'소리만 연발할 뿐이었다.

" 서방님 첩네 집에 못 가게 해서 애가 타서 이리 되었나요?"

염소는 여전히 눈만 꿈벅거리며 '오호호'만 불러댔다. 아내는 눈물을 떨구면서 염소의 다리에서 끈을 풀어 주며 잘못을 빌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갑갑하게 갇혀 있던 염소는 꼬리를 치면서 달아났다. 한편 첩네 집에서 며칠을 잘 지낸 남편은 본처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어서 잠깐 동정을 살피러 본집에 살그머니 모습을 나타냈다. 아내가 미련하든 말든 제가 지은 죄가 있으니까 잔뜩 긴장하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문에 들어섰는데, 아내는 뜻밖에 반갑게 맞으며 도리어 애걸복걸했다.

"아이고 서방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 얼마나 애가 탔으면 염소가 다 되셨겠어요? 다음부터는 첩네를 가든 어디를 다든 맘대로 하시고 다시는 염소가 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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