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고을의 사또가 어찌나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스리는지 이속(吏屬)과 백성들이 견디어 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사또를 몰아낼 계획을 의논하고 있던 중, 마침 사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기생하나가 이를 듣고
" 내 능히 사또를 쫒아 버릴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내게 무슨 상을 주겠소? "
그리하여 기생은 이속들과 굳게 약속하고 그날 밤으로 곧 사또의 방으로 찾아갔다.
" 사또, 진정 소녀를 사랑하시옵니까? "
:그 무슨 소리냐, 내가 너를 사랑치 않는다니 웬말이냐?'
" 그러시다면 오늘밤 소녀의 처소로 사또를 모실까 하는데, 비록 누추한 방이지만 한번 찾아 주십시오. "
" 그게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이냐. "
하고 사또는 그 밤으로 기생을 껴안고 기생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기생은 미리 몸종을 시켜 방안에 방장을 치게 하여 빛이 조금도 방에 새어 들지 않게 한 다음,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히고 갖가지의 교태와 아양으로 사또의 혼과 넋을 빼어버렸다. 미친 듯한 격정이 끝나자 사또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이튿날 날이 밝았으나 방안은 컴컴하였으므로 사도는 아직 밤인 줄 알고 동헌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벌거벗은 채로 기생을 끌어안고 희롱을 하고 있을 때, 여러 이속들이 문 앞에 모여들어 떠들었으므로 사또는 그제서야 비로소 해가 중천에 떠올랐음을 알고 아나가 정사를 보려 하였다. 그러나 이대로 동헌으로 돌아가다가 이속들에게 들키면 큰 창피인지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기생이
" 소첩에게 너울이 있으니 이것을 쓰시고 첩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으신 다음 동헌으로 드시면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
하고 말하자 사또는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곧 그렇게 차리고 문을 나서자 검은 초립들이 앞길을 인도하여 크게 떠들고 바라를 치벼 법석대거늘, 사또는 동헌에 올라서 너울을 벗어버리고,
" 내 학질을 앓은 지 오랜지라, 이를 떼 버릴려고 이렇게 꾸민 걸 그대들은 모르겠는가? "
하고 말하니 이속들은 속으로 쿡쿡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얼마 후에 감사가 이 사실을 알고 사또를 파면하였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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