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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소중한 명예

임기종 2015. 10. 2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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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소중한 명예

  겡헤이 야시마의 싸움에서 헤이가의 대장 가케키요와 모리츠구  등은 어떻게든 미나모토노 구로 요시츠네를 치고 싶어서 기회를 엿보았다.그런데 어느 날 어찌된 일인지 요시츠네는 손에 들고 있던 활을 놓쳐 버렸다. 활은 물결을 따라 휩쓸려 내려갔다. 요시츠네는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손이 닿지 않자 물결을 따라  쫓아갔다. 그런데 그 모습을 헤이 가의 사람들이 발견하고 이때다 하고 요시츠네를 향해 배를 저어 왔다.

  그들은 갈퀴로 요시츠네의 갑옷을 거머잡고  끌어당겼다. 요시츠네는 칼을 빼어 들고 그것을 막으면서 겨우 활을 주워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돌아왔다. 혼비백산한 시종들이 그가 무모한 짓을 했다며 탓했다.

  "공께 활 하나쯤이 뭐가 중요합니까. 쓸데없는 것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가볍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요시츠네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활이 아까웠던 게 아니야. 이름을 아꼈던 거지. 그 활이 강도가 강한 활이었다면 그대로 흘려 보내도 상관없겠지만 보통 활보다 강도가 약한 활이라 주웠던 것이다. 이 요시츠네가  그렇게 형편없는 활을 가지고 있었다고 후세에까지 전해져 영원히 웃음거리가  되는 걸 견딜 수 있겠는가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한사코 주우려고 했던 거다."

  요컨대 요시츠네는 물결에 휩쓸린 활이 약한 활이었기에  후세에까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두려워 위험을  무릅쓰고 끝끝내 그것을 주웠던  것이다. 이 일화의 초점은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라는 것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미 쉰 살을 넘긴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큰 감동과 함께 이 일화를 가슴 깊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는 세대가 떨어진 젊은이들이 과연 이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이름을 아낀다'고 하는 것이 봉건 사회에서 이른바 무사도의 골격을 이루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봉건제도의 붕괴와 더불어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행위도  귀중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어리석은 봉건적 잔재로 매도당했다. 그러나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행위가 앞에서 예로든 요시츠네의 일화와 같은 형태를 취할 때는 오히려  그것이 자기 존재에 대한 차원 높은 책임감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시원한  감동을 안겨 준다. 그런 뜻에서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행위는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에서나 새로운 생명을 갖는 덕목이 된다.

  그런 덕목까지 그릇된 봉건적 잔재와 더불어 한데 몰아 버려서는  안 된다. 특히 세상이 요즘처럼 혼란할  때는 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세상이 이토록 혼란한 까닭은 그렇게 차원 높은 책임감이  각자의 마음에서 너무나 쉽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름을 아낀다'는 신념처럼 언제까지라도 새로운 빛을 발하는 중요한 덕목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