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 2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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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 석(白石)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마가리 : 오막살이.

 ({여성}, 19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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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여행

 

한재인(매일신문)

 

숨가쁜 골짜기도 허허벌판 돌밭도

냇물은 희희낙락 자질 않는 처세술에

한겨울 굳은 표정 가슴에도 노랠 품고

 

이 물 저 물 어우러진 물의 숲 속 돛배 한 척

순풍에 닻 내리고 나침눈에 매달림은

한바다 갈 길 태고서 어스름마저 꿰뚫는가

 

가을바람 경작한 새털구름 채마밭에

풍향 잊은 새 몇 마리 고즈넉이 선회한다

한세상 고뇌의 텃밭 잡초떨기 쪼으면서

 

들숨에 달빛 머금고 날숨에 어둠 토하며

파도뿌리 깨물고는 살 부비는 조가비 되어

한밤중 자맥질하며 샛별 따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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