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5. 1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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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城北洞) 비둘기      - 김광섭(金珖燮)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 문학}, 196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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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김 은 숙(연강)

 

타 버린 재가 되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우리네 사랑도 이쯤에서 놓아 주자

하얗게 타 버린 후에야

너를 태울 수 있다니

 

살아오는 동안

아픔도 기다림도 있지만

우리가 언제

저토록 뜨거운 가슴 나누어 보았니

산다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잖아

 

산은 외로워 강에 눕고

강도 외로워 소리 내어 흘러 가는데

하얗게 타 버린 후에야

너에게 가는 길이 보인다면

오늘 뜨겁게 타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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