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 김광림(金光林)
나이 예순이면
살 만큼은 살았다 아니다
살아야 할 만큼은 살았다
이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더 살면 덤이 된다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종삼(宗三)*은 덤을 좀만 누리다 떠나갔지만
피카소가 가로챈 많은 덤 때문에
중섭(仲燮)*은 진작 가버렸다
가래 끓는 소리로
버티던 지훈(芝薰)도
쉰의 고개턱에 걸려 그만 주저앉았다
덤을 역산(逆算)한 천재들의 밥상에는
빵 부스러기 생선 찌꺼기 초친 것 등
지친 것이 많다
그들은 일찌감치 숟갈을 놓았다
소월(素月)의 죽사발이나
이상(李箱)의 심줄구이 앞에는
늘 아류들이 득실거린다
누군가 들이키다 만
하다 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 종삼 : 시인 김종삼(金宗三).
* 중섭 : 화가 이중섭(李仲燮).
(시집 {말의 사막에서},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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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환생/전 학 춘
돈이란 놈은 죽어서도 특별한 삶을 사네
우리네는 죽으면 굴뚝에 불태우던지
손과 팔 구두에 밟혀
지하 처박힐 텐데
강물에 몸 던지려 소주병 끌어안고
몸 떠난 연인 찾아
밤거리 헤맨 일도 없이
깊숙한 안주머니 품
늘어져 잠자던 생
보통 팔자로는 구경 못할 장엄한 지하
언 손 요모조모 용안(龍顔)을 다듬어서
마른땅 바닥 짓는데 원료로 환생한다지
오작교 해후하는 별똥별들의 희열
길 떠난 마누라 거웃 그리운 광대에
논자락 참새 허수아비마냥
저녁놀 조롱하고
닭 쫓아 지붕 날다
어둔 독방 갇히고
얼마나 많은 하늘이 그대에게 비굴한가
황폐한 가을 들녘에
그놈 한번 때려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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