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 신경림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창작과 비평>(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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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종 이 근 배(1962년 : 동아일보)
1
어둠에 녹슨 일월 조국의 깊은 밤을
입 깨문 열원으로 눈멀어서 지키다가
새날 빛 밝아온 날엔 몸부림쳐 울었으리.
2.
하늘도 돌아섰던 상잔의 포성 속에
균열진 가슴이며 외로웁던 모국어를
상기도 품에 안고서 울먹이는 증언이여!
3.
자유! 정의! 진리! 외치던 젊은 지성
순열(純烈)한 꽃잎들이 달려간 광장에서
피 묻어 지던 그 슬픔을 마음 깊이 사렸겠지.
4.
새로 열린 하늘 밝아온 태양 앞에
청사의 가슴 열어 꽃보라를 피우는가
구, 구, 구, 평화를 사려 날아드는 비둘기떼.
5.
산하며 겨레며 새옷 단장, 하는 그날
종이여! 너 조국을 못 견디게 울리거라.
벽마저 무너뜨리고 왼 강토에 넘치거라.
(이희승 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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