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9. 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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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밀이 수건 - 최승호 -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무명(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

돌비누 같은 경()으로 문질러도

무명(無明)에 거품 일지 않는다.

 

주일(主日)이면

꿍쳐 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

속죄하러 몰려가는 양().

 

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

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떼에게

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

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

 

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者)들이 불쌍하다.

그들이 때 묻은 성의(聖衣)는 누가 빠는지.

 

죽음이 우리들 때를 밀러 온다.

발 빠지는 진흙 수렁 늪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진탕 놀다온 탕아를

씻어 주는 밤의 어머니,

죽음이 눈썹 없이, 아무 말 없이

우리들 알몸을 기다리신다.

 

때 한 점 없을 때까지

몸이 뭉그러져도 말끔하게 때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는 죽음,

죽음은 때를 미워해

청정한 중의 해골도 씻고 또 씻고

샅샅이 씻어 몸을 깨끗이 없애 버린다.

그렇다면 죽음의 눈엔 온몸이 다 때란 말인가?

 

- <얼음의 자서전>(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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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이 하 영

 

사랑한다 그 한 마디 잎새 마다 새겨두고

아무도 모르라고 몸살로 앓았는데

가을 산 저도 타는지 붉은 울음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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