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잠언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8. 1. 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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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 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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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의 은유 박 재 곤

 

기인 긴 세월자락 달무리 흩날리다

밀물 때 썰물 때 삶의 여지 餘技 즐기다가

결삭은 굴곡을 넘어 함초로이 피어 있다.

 

울다가 웃다가 속앓이하다가

소리 없는 아우성 달맞이꽃 피우고

천 년의 굴곡 숨쉬다 빈 달빛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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