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세게명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8. 2. 20. 08:16
728x90



브론테 - 추억

 

흙 속은 차갑고, 네 위에는 깊은 눈이 쌓여 있다.

저 먼 곳 쓸쓸한 무덤 속에 차갑게 묻힌 그대

하나뿐인 사람아, 모든 것을 삼키는 시간의 물결로

떼어져 나는 사랑을 잊고 만 것일까?

 

홀로 남게 된 내 생각은

산봉우리들을 날고, 앙고라의 기슭을 방황한다.

지금 날개 접고 쉬는 곳은 히드풀과 양치기 잎이

네 고고한 마음을 항시 덮고 있는 근방이다.

 

흙 속은 차가운데 열 다섯 차례의 어두운 섣달이

이 갈색 언덕에서 어느새 봄날의 물이 되었다.

변모와 고뇌의 세월을 겪어 왔으나

아직 잊지 못할 마음은 너를 배반하지 않았다.

 

젊은 날의 그리운 사람아, 혹시 세파에 시달려

너를 잊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거센 욕망과 어두운 소망이 나를 괴롭히나

그 소망은 너 생각하는 마음을 해치지는 않았다.

 

너 말고 달리 내 하늘에 빛나는 태양은 없었다.

나를 비추는 별도 역시 달리 없었다.

내 생애의 행복은 모두 네 생명에서 비롯되었고

그 행복은 너와 함께 무덤에 깊이 묻혀 있다.

 

그러나 황금의 꿈꾸던 나날은 사라지고

절망조차 힘이 빠져 파괴력을 잃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기쁨의 도움이 없이는

생명을 이루고 강해지고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정열의 눈물을 억제하고

네 영혼을 사모하는 내 어린 영혼을 일깨워

나와는 관계 없는 무덤에

서둘러 가려 하는 열망을 호되게 물리쳤다.

 

때문에 지금 내 영혼을 시들게 하려 하지 않고

추억의 달콤한 아픔에 잠기려 하지 않는다.

깨끗한 고뇌의 잔을 모두 마신 지금에

왜 다시 헛된 세계의 일을 추구하리오.

 

*소설 '폭풍의 언덕'의 작자인 브론테(Emily Jans Bronte:1818__48)는 무척 격정적이고 정열적인 시인이었다.

브론테의 세자매(나이 순으로 샤롯트, 에밀리, )는 서로 협력하여 자비로 한 권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그런데 그 작자는 세 명의 남자 이름으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아무도 천재적인 이 세자매가 간행한 시집이라는 사실을 안 사람은 없었다.

브론테의 집 어린이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일찍 요절하는 데, 에밀리도 결핵에 걸려 30세의 나이로 죽는다.

언니인 샤롯트에 의하면 '남자보다 강했고, 어린이보다 단순했다'고 한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왕진을 받을 때도 반드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단정히 입고 의사를 맞이했다고 한다.

불타는 듯한 열정이 있는 한편 이런 금욕적인 결벽성의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추억'과 같은 시가 창작되었을 것이다.

  -----------------------------------


소금 조주환

 

살아 푸르게 끓던 피와 살은 다 빠지고

깨진 유리조각 같은 저 투명한 물의 뼈가

마지막 지상에 남아 혼의 불로 타고 있다.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명시와 시조 1수  (0) 2018.02.22
세계명시와 시조 1수  (0) 2018.02.21
세계명시와 시조 1수  (0) 2018.02.19
세계명시와 시조 1수  (0) 2018.02.14
세계명시와 시조 1수  (0) 201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