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카테고리/내가 좋아 하는 시. 시조

북천(北天)이 맑다 해서

임기종 2023. 8. 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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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는 기생 한우(寒雨)를 좋아했다. 한우는 재색겸비하고 시와 글에 능했다. 거문고와 가야금이 뛰어났고 노래 또한 절창이었다. 임제와 한우는 술자리에서 몇 번 만났다. 시를 논하고 술잔을 나누다가 임제가 노래를 부른다.

 

북천(北天)이 맑다 해서 우장없이 나섰더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寒雨)가 내린다.

오늘은 찬비를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 임제(寒雨)

 

북쪽하늘이 맑아서 비옷 없이 길을 나섰더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가 내리는구나. 오늘 찬비를 맞았으니 매우 춥다. 이대로 자야 하나.

찬비는 기생 한우(寒雨 찬비)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우가 이 노래를 듣고 즉시 화답한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디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 한우

 

왜 얼어 잡니까, 무슨 일로 떨면서 혼자 주무십니까,

원앙요, 비취 이불 여기에 다 있는데 얼은 몸 그대로 어찌 잡니까.

말도 안되는 말씀 마세요 오늘은 나와 함께 몸을 녹이시지요

 

라고 답한 것이다. 임제는 한량이요, 풍류를 아는 남자였다.

찬비(寒雨)를 맞았는데 얼은 채로 자야하나 하고 넘겨짚은 것은 네가 맞아주지 않으면 혼자 고독하게 잘 수밖에 없구나 하는 확신에 찬 응큼한 복선(伏線)이었다.

그러자 한우는 오늘 나(찬비 寒雨)를 만났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소. 함께 정열을 불태워 언 몸을 녹이면 될 것을 하고 호방하고 정겹게 마음을 열어준다.

과연 어느 여자가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서로의 뜻을 확인한 남녀의 밤은 진정 뜨거웠을 것이다.

말을 알아 듣는 꽃, 해어화(解語花). 우리조상들은 직설 화법보다는 은유적 화법에 통달한 언어의 달인(達人) 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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