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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상이 항상 말하되,
"내가 영남 도백으로 있을 때 집 아이가 한 기생첩을 사랑했는데 내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데리고 왔더니 수년이 지난 뒤에 스스로 꾸짖음을 얻은 줄 알고 창기를 두는 자는 이 어찌 사부(士夫)의 행실일가 보냐 하면서 쫓아 보냈다. 이미 쫓아낸 후여서 내가 '그 여인이 떠날 때에 뭐라고 말하더냐?'물으니,
'별로 다른 말이 없삽고 다 못 말하되 이렇듯 수년 동안 건즐(巾櫛)을 받들어 오다가 문득 이렇게 이별하니 유유한 나의 회포를 무엇으로써 형언하리오.' 하면서
운자를 불러 별장(別章)을 짓겠다기에 곧 군(君)자를 부르자 여인이 말하기를 어찌 반드시 군자(君字)만 부르는고 하고 이에 읊어 가로되
낙동강상초봉군(洙東江上初逢君)터니 (낙동강 위에서 님을 만나고)
보제원두우별군(普濟院頭又別君)이라 (보제 원두에서 님과 여위니)
도화낙지홍무적(桃花落地紅無跡)하니( 복사꽃도 지며는 자취를 감추는데)
연월하시불억군(烟月何時不憶君)가( 어느 세월 어느 땐들 내님 잊으랴)
이렇게 읊고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다고 하기에 내 그 시를 듣고 그녀가 결연히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불러오게 했더니 이미 누암강(樓岩江)에 투신자살한지라 내 아들이 이로 인해 병을 얻어 두어 달 만에 죽었도다. 내 또한 이 일이 있은 후로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장차 늙어가니 부자의 사이에 오히려 이러하거든 하물며 다른 이에게 가히 적원(積怨)할 수 있으랴. " 하더라.
-파수록(破睡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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