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그네가 산협 속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촌가에 투숙했다. 그 집 주인 늙은 여편네가 그의 투숙을 허락하면서 말하기를
"이웃마을에 푸닥거리가 있어 나를 청해 와서 보라 하나 집안에 남정이 없는 고로 갈 생각이 있어도 가지 못했더니 손님이 오셨으니 잠간 저의 집을 보살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객이 이를 허락하자 늙은 할미가 갔는데 그 집의 늙은 개가 곧 웃 방에 들어와서 빈 그릇을 이끌어다 놓고 겹쳐 디디기 좋도록 한 다음, 그 위에 뛰어올라 실겅 위의 떡을 핥아먹어 버렸다. 밤이 깊은 뒤에 할미가 돌아와 손으로 실겅 위를 만지며 괴상하다고 하는데 객이 그 연고를 물었더니 할미가 가로되
"어제 내가 시루떡을 쪄서 이 실겅 위에다 얹어 두었소. 결단코 손님이 잡수실리가 없고 찾아봐도 없으니 어찌 괴이치 않으리오. "
하니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 일을 밝혀 말하기 거북하나 자기가 훔쳐 먹지 않았나 하는 허물을 면키 위해 이에 그 자초지종의 본 바를 말하니 할미가 가로되
"물건이 오래되면 반드시 신(神)이 붙는다더니 진실한 지고 그 말씀이어. 이 개가 이미 수십년을 지낸 연고로 이렇게 흉측한 일을 하니 내일 마땅히 개백정을 불러다가 처치해야겠소. "
한즉 개가 이 말을 듣고 나그네를 흘겨보며 독을 품는 눈치였다. 객이 마음에 몹시 두려워 다른 곳에 은신하여 옷과 이불을 그대로 깔아놓고 동정을 살피니 얼마 후에 개가 방 가운데 들어와 사납게 옷을 깨물며 몸을 흔들어 독을 풍기며 오래 있다가 나가는지라, 객이 모골이 송연하여 주인 할미를 깨워 일으킨 후에 개를 찾게 하였더니, 개는 이미 기진해 죽어 넘어진지라, 객이 만나는 사람마다 매양 그 이야기를 일러 가로되,
"짐승도 오히려 그 허물을 듣기 싫어하거든, 하물며 남이 모자라는 것을 털어 얘기할 수 있을까 보냐. "
하였다.
-파수록(破睡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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