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한윤(韓閏)은 자기가 거처할 집을 한 채 짓고 친분이 두터운 조(趙) 선생에게 그 건물에 붙일 이름인 당호(堂號)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조 선생은 웃으면서,
"그러지. 내 평소 자네를 살펴보니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그러니 자네 새집의 당호는 '삼외(三畏: 세 가지 두려움)'로 하면 좋겠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되물었다.
"아니, 나에게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니 그게 무언가? 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에 조 선생은 크게 웃고 그 세 가지 두려움을 설명했다.
"그래? 내 설명하지. 아내가 늙고 병들어 때가 낀 얼굴에 주름진 손, 그리고 너풀너풀한 해진 옷을 입고 머리에 무명 수건을 두른 채, 멀리 또는 가까이에서 자네 있는 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이 첫째 두려움이 아닌가?"
“아 그건 맞는 말이야, 잘도 관찰했네."
"그리고 다음은, 여름철 긴 장마에 양식과 땔나무가 모두 떨어졌을 때,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도 하지 않고 토라져 있고... 여종은 머리를 긁으면서 들락거리며 거북 등에 털을 깎듯 애를 태울 때가.. 둘째 두려움이지 그렇지 않은가?"
이 말에 한윤은 고개를 떨구고 말이 없었다.
" 이 사람 갑자기 우울해지네 그려.. 마지막 세 번째는 무엇인고 하니, 달 없는 밤 기회를 보아 가만가만 걸어서 여종이 자는 방으로 가 채 옷도 다 벗기기 전에 아내가 달려와 호통치며 자네를 끌어낼 때가 세 번째 두려움일세. 어때? 내 말이 맞지.그러니 자네는 '삼외 선생'이 되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한바탕 웃었다.
-조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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