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두려워해 꼼짝 못하는 장군이 있었다. 하루는 자신이 거느리는 병사들 중에서도 자기처럼 아내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 곧 교외 넓은 마당 양편에 붉은 깃발과 푸른 깃발을 세워 놓고 부하 병사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호령했다.
"병사들은 들어라! 너희들 중에서 아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붉은 깃발 아래에 갓 서고, 아내가 두렵지 않은 사람은 푸른 깃발 아래에 가서 서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몰려가 모두 붉은 깃발 아래에 가서 서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병사만 푸른 깃발 아래에 가서 외로이 서 있었다.
"저것 봐라. 아내가 두렵지 않은 사람도 있긴 있단 말이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장군은 푸른 깃발 아래 홀로 서 있는 병사 앞으로 나아갔다.
"이 사람아, 자네는 대단한 사람이로다. 남자들이란 안방의 이불 속에서 부부의 깊은 사랑으로 인해 부인에게 제압당하고 모두들 부인을 받들어 모시며 두렵게 여기는데, 자네는 무슨 재주로 아내가 두렵지 않아 이 푸른 깃발 아래에 홀로 서 있는가? 정말 기특한 사람이로다."
허나, 이 병사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다음과 같았다.
"장군님! 그게 아니옵니다. 저는 아내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가 항상 주의시키기를 ‘ 남자들이란 세 사람만 모이면 여자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되니, 남자 세 사람 이상이 모인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 살펴보니 붉은 깃발 아래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가 있으므로, 아내의 명령에 따라 거기로 가지 않고 아무도 없는 여기에 와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군은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척 기뻐하더라.
-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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