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삼외(三畏) 선생

임기종 2025. 1. 17.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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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한윤(韓閏)은 자기가 거처할 집을 한 채 짓고 친분이 두터운 조() 선생에게 그 건물에 붙일 이름인 당호(堂號)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조 선생은 웃으면서,

"그러지. 내 평소 자네를 살펴보니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그러니 자네 새집의 당호는 '삼외(三畏: 세 가지 두려움)'로 하면 좋겠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되물었다.

"아니, 나에게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니 그게 무언가? 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에 조 선생은 크게 웃고 그 세 가지 두려움을 설명했다.

"그래? 내 설명하지. 아내가 늙고 병들어 때가 낀 얼굴에 주름진 손, 그리고 너풀너풀한 해진 옷을 입고 머리에 무명 수건을 두른 채, 멀리 또는 가까이에서 자네 있는 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이 첫째 두려움이 아닌가?"

아 그건 맞는 말이야, 잘도 관찰했네."

"그리고 다음은, 여름철 긴 장마에 양식과 땔나무가 모두 떨어졌을 때,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도 하지 않고 토라져 있고... 여종은 머리를 긁으면서 들락거리며 거북 등에 털을 깎듯 애를 태울 때가.. 둘째 두려움이지 그렇지 않은가?"

이 말에 한윤은 고개를 떨구고 말이 없었다.

" 이 사람 갑자기 우울해지네 그려.. 마지막 세 번째는 무엇인고 하니, 달 없는 밤 기회를 보아 가만가만 걸어서 여종이 자는 방으로 가 채 옷도 다 벗기기 전에 아내가 달려와 호통치며 자네를 끌어낼 때가 세 번째 두려움일세. 어때? 내 말이 맞지.그러니 자네는 '삼외 선생'이 되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한바탕 웃었다.

 

-조선 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