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천치같은 사내의 짝사랑

임기종 2025. 5. 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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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경주에 용모가 매우 아름다운 관기가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한 젊은이가 그 관기를 유달리 사랑했는데 그녀는 슬그머니 거짓말을 하여 젊은이의 연정에 불을 붙였다.

"소첩은 본래 양반집 딸이 온데 관기가 된지 오래지 않아 아직 남자를 겪은 일이 한 번도 없사옵니다."

젊은이는 이 말에 더욱 매료되어 그녀에게 완전히 푹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와 헤어질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젊은이는 행낭을 몽땅 털어 주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받지 않고 은근히 다른 것을 청하였다.

"소첩은 당신의  몸에 붙은 그 무엇을 얻기가 소원입니다. 이 따위 돈이나 물건은 징표가 되지 않사옵니다.“

젊은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의 양모를 뽑아서 그녀에게 주며 말했다.

"그럼 이에 어떠냐, 사내의 소중한 징표가 아니겠느나?"

"그것도 소중하지만 몸 바깥에 붙은 것이니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을 주시옵소서. “

그럼 몸 안에 붙은 것이라면.......?"

한참을  골몰히 생각하던 젊은이는 곧 자기의 이빨 하나를 쾌히 뽑아 주었다. 젊은이는 이빨을 징표로 뽑아주고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녀 생각으로 쓸쓸하기만 하였다그럴 즈음 경주에서 올라 온 사람이 있기에 그녀의 소식을 묻자, 그녀는 작별한 뒤에 바로 다른 사내의 품속으로 옮겼다고 했다. 젊은이는 그녀의 배신에 크게 노하여 종을 경주로 다시 내려 보내 기생에게서 이빨을 찾아오도록 분부하였다. 그런데 그 소리를 종에게서 전해들은 그녀는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웃으면서 베주머니 하나를 하인에게 전해 주는 것이 아닌가

"이 어리석은 놈아, 백정에게 도살하지 말라 하고 창녀에게서 예법을 찾으려는 것이야말로 바보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원한다면 너의 집 주인의 이빨을 이 속에서 찾아 가거라.“

그 주머니 속엔 지금까지 얻은 뭇 사내들의 이빨이 서너말이나 차 있어 종은 주인의 이빨을 찾을 수가 없었다. 종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젊은이는 억울 분통하고 기가 막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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