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5. 12. 1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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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 - 윤동주(尹東柱)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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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밟기 / 민병도

 

봄바람에 뿌리가 들린 보리를 밟는다

문신처럼 드러나는 온 몸의 신발자국,

때로는 혼절의 아픔도 사랑이라 일러주며.

 

밟으면 꺾어지고 일으키면 누워버리는,

차마 작은 돌 하나도 밀어내지 못하지만

그 속에 물결 드높고 함성 또한 뜨거워라.

 

꼿꼿이 일어서서 아침해를 겨누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이 땅의 슬픔을 이긴

보리밥, 민초(民草)의 힘이여! 사투리의 절개여.

 

정녕 무서운 힘은 창칼도 붓도 아닌

한 근()도 못 미치는 마음 안에 있는 것

날마다 속을 비우는 저 초록, 꿈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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