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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 - 윤동주(尹東柱)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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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밟기 / 민병도
봄바람에 뿌리가 들린 보리를 밟는다
문신처럼 드러나는 온 몸의 신발자국,
때로는 혼절의 아픔도 사랑이라 일러주며.
밟으면 꺾어지고 일으키면 누워버리는,
차마 작은 돌 하나도 밀어내지 못하지만
그 속에 물결 드높고 함성 또한 뜨거워라.
꼿꼿이 일어서서 아침해를 겨누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이 땅의 슬픔을 이긴
보리밥, 민초(民草)의 힘이여! 사투리의 절개여.
정녕 무서운 힘은 창칼도 붓도 아닌
한 근(斤)도 못 미치는 마음 안에 있는 것
날마다 속을 비우는 저 초록, 꿈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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