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 윤동주(尹東柱)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
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
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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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당선작
왕피천, 가을 / 김미정
돌아오는 길은 되레 멀고도 낯설었다
북위 삼십 칠도, 이정표 하나 없고
피멍든 망막 너머로 구절초 곱게 지는데.
귀익은 사투리에 팔다리가 풀리면
단풍보다 곱게 와서 산통은 기다리고
한 세상 헤매던 꿈이 붉게붉게 고였다.
숨겨 온 아픔들은 뜯겨나간 은빛 비늘,
먼 바다를 풀어서 목숨마저 풀어서
물살을 차고 오르는 연어들의 옥쇄(玉碎)행렬.
건 듯 부는 바람에도 산 하나가 사라지듯
끝없이 저를 비우는 강물과 가을사이
달빛에 길 하나 건져 온몸으로 감는다.
*왕피천 : 연어가 회귀하는 하천으로는 위도 상 최남단에 있는 하천(울진군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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