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길 - 윤동주(尹東柱)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2004 조선일보 신춘문예당선작/시조]
겨울, 연포에서 황성진
이 겨울 연포에서 파도 한 뿌리 캐어 본다
뜨겁던 여름 사내 온 몸으로 심은 그것
남겨진 잔물결 속에 밀려왔다 밀려가고
저 파도 뿌리는 늘 흰색 아니면 청색이다
사납게 일어나서 시퍼렇게 울다가도
가끔씩 잇몸 드러내 웃고 있는 것 보면.
어느 누가 있어 쓰라린 이 상처 위에
간간한 바람 주고 쓴 포말 보내었나
시퍼런 해안선마다 눈물자국 번득인다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5.12.23 |
---|---|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5.12.22 |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5.12.18 |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5.12.17 |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