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4. 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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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無等)을 보며        - 서정주(徐廷柱)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 남루 : 헌 누더기.

* 지란 : 영지와 난초.

* 눙울쳐 : 기운을 잃고 풀이 꺾이어.

* 쑥구렁 : 쑥이 자라는 험하고 깊은 구렁. 무덤.

 

({현대 공론}, 19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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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게 드리는 노래 /조 성 국

 

경칩 머리 꽃물 닮아 미쁘고 미쁜 이여

베옷 한 깃 걸치고 저 하늘에 바친 영가(靈歌)

짝 잃은 흰 뻐꾸기가

청산을 잡고 울다

 

저 하늘 손모으기 불꽃보다 뜨거워라

피를 토해 율을 풀어 또 한 산을 세우려

달 도는 정화수 곁에

학을 접기 몇몇 해

 

솔바람 가꿔 가는 좁은 가슴 물든 백발

숱한 말 삼켜 버린 진주조개 같은 님

저 북안 기어 오른 해

님의 뜰에 넘치리.

 

벗한 달빛 곁에 서면 천리가 지척이라

비 내리는 밤이면 우수로 물든 둘레

쌍촛불 밝힌 자리에

영생의 길 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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