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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수 저 - 김광균(金光均)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문학}, 1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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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白紙) /우 홍 순
뉘 작은 지문(指紋) 한 올 찍히기를 거부했다
잔꾀 묻은 발자국이 몰래 찍혀 있을 게다
백지는 본디 흰빛이라
그냥 시샘 받았다.
태초 강물 지나간 흔적 어딘가 남아 있으리
한 점 티 안 묻어서 질투에 시달렸지만
하늘이 함께 내려앉아
더 순결 할 수 있었다.
천진한 첫 돌나기 재롱이 그려져 있다
깔깔대는 아기들의 웃음소리 들려온다
보인다 잠든 모습이
모두 아기 빛깔이다.
매미*에도 날아가지 않을 백지 한 장 품었지만
불어대는 흙바람에 걸레처럼 더렵혀졌다
세태가 그런 걸 어쩌나
변명하며 살았다.
*매미 : 2002년 휩쓸고 간 태풍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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