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3. 3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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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수 저   - 김광균(金光均)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문학}, 1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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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白紙) /우 홍 순

 

뉘 작은 지문(指紋) 한 올 찍히기를 거부했다

잔꾀 묻은 발자국이 몰래 찍혀 있을 게다

백지는 본디 흰빛이라

그냥 시샘 받았다.

 

태초 강물 지나간 흔적 어딘가 남아 있으리

한 점 티 안 묻어서 질투에 시달렸지만

하늘이 함께 내려앉아

더 순결 할 수 있었다.

 

천진한 첫 돌나기 재롱이 그려져 있다

깔깔대는 아기들의 웃음소리 들려온다

보인다 잠든 모습이

모두 아기 빛깔이다.

 

매미*에도 날아가지 않을 백지 한 장 품었지만

불어대는 흙바람에 걸레처럼 더렵혀졌다

세태가 그런 걸 어쩌나

변명하며 살았다.

 

*매미 : 2002년 휩쓸고 간 태풍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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