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4. 14.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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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柳致環)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동아일보}, 19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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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무정 어느 廢家에서/김 선 영

 

오지 조각 널려 있는 돌담 옆 묵정밭엔

못다 한 이야기가 설움으로 들려오고

문 없는 빈 방 안에는

한숨소리 가득하다.

 

추억은 세월 속에서 이끼로 돋아나고

덕지 진 가난을 피해 모두 다 떠나갔지만

인정은 아직 남아서

박꽃으로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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