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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 - 조지훈(趙芝薰)
까닭 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 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시집 {풀잎 단장},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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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풍기(擧風記) /장 지 성
참으로 오랜만에 도배를 하기 위해
온 집 안 가구(家具)들을 꺼내어 거풍을 한다.
장롱 뒤 먼지만큼이나 쌓인 세월이 풍화된다.
켜켜이 배가 부른 앨범 속 추억이며
설합에 유배당한 한 시절 옷가지들
이제는 한 치쯤 작아진 육신을 걸어 본다.
어디 말릴 것은 땀이며 눈물이랴
어디 젖은 것은 꿈이며 이상뿐이랴
간밤에 시달린 악몽도 빨랫줄에 널어 본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중량을 가늠하며
밀쳐둔 한 생애도 바람결에 나부낀다.
다시금 곧추세우는 바지랑대 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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